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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대문 Nov 01. 2023

잠깐! 문 닫기 전, 확인 하셨나요?

덜렁거리는 이들은 살아남을 수 없는 땅, 독일.

"어디갔지?"

오늘도 어김없이 더듬더듬 주머니를 툭툭 쳐 본다. 묵직한 열쇠의 감각이 느껴지면 그제서야 안심하고 할일을 마저 한다. 독일에 온 뒤로 생긴 독특한 습관이다. 잘 걸어가다가도 열쇠!! 하면서 주머니를 더듬고, 가방을 열어본다. 그리고 묵직한 열쇠를 발견하면 그제서야 안심하는 것이다.



나는 사실 어릴적 모두가 인정하는 '덜렁이'였다. 우산을 들고 나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오는 것은 일쑤요, 더 어릴적에는 가방도 두고 오고, 신발주머니도 두고 오고. 여기저기 물건들을 흩뿌리며 다녔다.그리고 세상 가볍에 집에 도착해서 '다녀왔습니다!'를 외치자 마자, 엄마와 손을 잡고 흩뿌려놓은 물건을 찾는 시간을 가졌다. 이제 와 생각해 보니, 빈손으로 달랑 집에 들어오는 날 보는 엄마는 얼마나 황당하셨을까 싶다.


천만다행으로 내가 무럭무럭 자라날 무렵에 우리나라는 '번호키'가 상용화 되는 중이었다. 종종 친구들중에는 집 열쇠와 자전거 열쇠 같은 것을 길게 목걸이로 만들어서 매고다는 애들도 있었는데, 나는 그저 비밀번호만 외우면 되는, 이것저것 잃어버려도 비밀번호 하나만 알면 그래도 집에는 들어갈 수 있는 다행인 시절을 살았다.


그렇게 덜렁이의 면모를 가진 사람이 독일에 와서 접한 최대의 문제점은 '열쇠'였다. 여전히 모든 문이 열쇠로 통용되는 아날로그의 나라. 생전 처음으로 손에 들고 다녀야 하는 실물 열쇠는 마음을 참 무겁게 만들었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열쇠를 잃어버리는 상상을 하곤 했다. 게다가 독일의 문들은 대부분 집 안에서는 열고 닫을 수 있지만, 열쇠가 없으면 밖에서는 문을 열 수가 없다. 그러니까 '아차!'하고서 열쇠를 집 안에 두고 대문을 쿵 닫는다면, 열쇠는 있지만 문을 못여는, 세상에서 제일 슬픈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이다.


만약 혼자사는 집인데 열쇠는 집 안에, 나는 문 밖에 있는 경우가 생기면, 어쩔 수 없이 열쇠공을 불러야 한다. 이 인건비가 비싼 나라는 그렇게 출장 온 사람이 100유로 이상을 받아간다. 만약 저녁에 산책이라도 슬쩍 해볼까 하는 상황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심야 출장은 할증이 붙는 다는 더 슬픈 사실. 그래서 종종 유학생 커뮤니티에 '제가 열쇠를 집 안에 두고 문을 닫았는데요, 도와주세요.'하는 눈물겨운 글 들이 올라온다. 카드를 문 사이에 넣어서 밀어보세요- 라는 다소 거친 방법의 해결책이 제시되기도 하지만, 어쨌든 쉬운 일은 아니니 열쇠는 무슨 일이 있어도 챙겨야 하는 필수품이 되는 것이다.


만약에 열쇠를 잃어버렸다면, 그거야 말로 비상이다.

가끔 독일에서 '열쇠를 하나밖에 안 받았는데 이거로 건물 대문도 열리고, 쓰레기장 문도 열려요. 그럼 다른 이웃들이 우리 집 문도 열 수 있는건가요?' 라는 질문이 올라오곤 한다. 대답부터 하자면 당연히 No!

하지만 공용 문도 다 열리면서 개인의 집만 열리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그래서 열쇠를 함부로 복사 할 수 없어서 집 열쇠 같은 것은 '복사를 위한 문서'를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만약 세입자가 열쇠를 잃어버렸다면, 공용으로 사용하는 모든 문을 바꿔야 함과 동시에, 같은 건물에 사는 이들의 열쇠도 다 교체되어야 한다. 그러니 들어가는 비용이 상상이상이다.

'집 열쇠를 잃어버렸더니 1000유로(약 120만원가량)을 내라고 해요. 이게 맞는 말인가요?'

너무 한탄스럽고 슬프겠지만, 그게 맞는 말이다. 그래서 '열쇠 보험'은 꼭 필요하다. 그리고 절대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애쓰는 마음가짐도.


지금도 집 문을 닫기 전에 열쇠가 내 손에 있는지 꼭 확인하고 문을 닫는다. 그러고는 가방이나, 바지 주머니에 기억할 수 있도록 천천히 열쇠를 넣어놓는다. 세상만사 헐랭하던 덜렁이도 뇌에 힘주고 다닌 덕분인지 아직 열쇠를 잃어버려서 구슬프게 울어본 적은 없다. 앞으로도 없기를 간절히는 바라는 중이다.


오늘의 독일 생활 팁

1. 열쇠 문화에 익숙하지 않다면 집 보험을 꼭 들자

2. 문을 닫기 전 내 손에 열쇠가 있는지 반드시 확인하고 문을 닫아야 한다.

3. 열쇠는 집 안에, 나는 문 밖에 있어서 문을 열 수 없는 상황이라면- 문따주는 사람을 불러야 한다. 해가 지고 난 뒤의 출장은 비싸니까 가능하면 친구네 등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해가 떠 있을 때 사람을 부르자.



* 혹사 알아차리셨나요? 오늘 표지 사진에는 열쇠가 숨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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