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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대문 Nov 19. 2023

독일에서도 당근을 흔듭니다! 당근 당근!

가끔 양아치 토끼들도 찾아옵니다

살다보면 취향은 변하기 마련, 필요한 것들도 달라지기 마련.


이 단순하고도 당연한 인생의 진리 앞에서 인간은 또다시 수익 창출을 위해 두 팔을 걷어부쳤다. 한국의 당근 흔들기 마켓처럼, 독일도 예로부터 kleinanzeigen(클라이네안짜이게) 나 marketplace(마켓플레이스) 같은 것들이 성행한다. 길 가다 보면 '중고물품 판매접-세컨핸드 숍'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사실 유학길에 올라 독일 생활에 안착되기까지, 중고물품을 사고 파는 것에 한번도 도전해본 적이 없었다. 따라서 나의 중고 거래기는 독일에서 시작 된 것인데, 흔히 말하는 그 당근 온도가 0도 인 사람들이 아주 차고 넘친다. 차가운 감자의 땅, 이 독일에서 효과적으로 당근 흔드는 방법, 오늘 한번 나눠보자.



혼자 사는 기숙사에서 하우스를 셰어하는 WG로 이사를 가니 필요 없는 것들이 한가득이었다.  예를 들어 청소기가 그랬고, 88건반 키보드가 그랬고, 이런저런 생활 공구들이 그러했다. 이미 집 안에 다 구비 되어 있어서 이사 들어간 작은 방에 이렇게 저렇게 테트리스처럼 끼워넣기보다는 차라리 필요한 사람들에게 팔아보기로 결정한 것이다. 겸사겸사 입지 않는 옷들 중에 상태 좋은 옷을 추려서 정리도 쫘악 했다.


그 전에 중고물품 올리는 법, 효과적으로 펀매하는 법, 중고가 시세 등 열심히 연구도 했다. 아하- 이정도면 그래도 사려는 사람들이 있겠군. 하는 가격도 산정하고. 게다가 중고 마켓에 글을 올릴 때는, 사진부터 부티나야 한다는 이야기도 주워듣고 햇빛이 촤악 내리쬐는 시간에 사진도 열심히 찍었다. 성심 성의껏, 내가 이 물건을 언제 어디서 얼마에 구매했고, 현재 새로살라면 얼마고, 나는 이것을 얼마에 판다. 하고 설명 글을 쭈루룩 써 내렸다.


그렇게 첫 글을 올리고 떨리는 마음으로 몇명이 내 글을 조회했는지, 몇명이나 저장했는지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또롱- 하며 메세지 안내음이 울렸다.


"20"


밑도 끝도 없이, 내가 80유로에 올려놓은 물품에 연락이 온 것이다.


"오 안녕, 관심 가져줘서 고마워. 이거 가격은 80유로야."


혹시나 잘못 보고 연락한 것일까 싶어서 열심히 답장을 써서 보냈다.

잠시 뒤, 또 한번의 띠링- 하는 메세지 알람음이 울렸다.


"25"

"..."


아하, 여기는 이런세계구나. 조용히 혼자 깨닫고 그를 차단했다. 이 사람이 아주 좋은 가격에 내 물건을 사가려고 하는군! 하고 생각하며.


그리고 그 뒤로도 정말 10통 이상의 말도 안되는 헐값 제시 연락을 받았다. 처음에는 내가 올린 물건에 하자가 있나? 아니면 뭔가 실수를 해서 가격이 잘못보이나? 하면서 골똘히 고민도 했었지만, 연달아 연락이 오는 것을 보자 그냥 말도 안되는 가격이 제안으로 오면 쿨하게 '차단'으로 바꿔버리게 되었다.


혹은 구구절절형도 있었다.

'나는 언제 태어났고, 우리 애는 몇살인데, 내가 회사에서 어제 짤려서 너무 우울한데...... 돈이 없으니 그냥 나에게 기부하는건 어때?'


라는, 나의 혈압 온도를 상승시키는 사람들. 통장에 돈이 없다는 이야기부터 물건을 산 후에 천천히 주겠다는 신박한 제안까지. 모두 차단!


혹은 다짜고자 데이트 신청 유형도 있다.

"오 안녕, 나는 너가 판매하는 물건과 너에게 관심이 있어."

"나는 너의 시간을 사고 싶어"

"내가 그 물건을 살테니 나와 커피 한잔 할래?"


"......"

처음에는 무시하다가 나중에는 친절하게 경찰서 주소를 건네주었다. '여기에 너의 제안에 도움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을거 같아, 어때?' 그럼 죄다 미안하다 하며 사과하고는 빛의 속도로 사라졌다.


마지막으로는 '미저리는 만드는 유형'이다.

"좋아, 내가 그럼 16시까지 물건 가지러 갈게."

16시 10분..

"어디니? 나 기다리고 있어"

"어미안, 나 가는 길에 사고가 나서.. 내일 볼 수있을까?"


다음날-

"16시에 만나! 어제 거기에서!"

"그래!"

16:30분

"어디니? 나 여기에 있어"

"어미안, 나 갑자기 애가 아파서.. 내일 시간 되니?"


이렇게 일주일동안 나를 미저리로 만든 불량토끼도 있었다. 어쩜 그렇게 매일매일 새로운  일이 일어나는지, 짱구의 하루보다도 바쁜 인생을 사는 사람이었다.


이렇게 눈에 보이는 불량토끼들은 쉽사리 걸러낼 수 있지만, 좀 더 음흉한 유형들이 있다.

지금도 종종 유학생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글인데 'UPS를 통해서 대리인이 구매한대요. 이거 사기인가요?' , '배달원에게 돈을 주면 물건을 전달해준대요. 이거 사기일까요?' 네. 그건 사기입니다. UPS가 왜 아직까지 고소를 안 하는 지 모를 정도로 심각하게 명의 도용되고 있는 사기이다.


심지어 독일은 은행이 돈 입출금 내역을 바로바로 업데이트 하지 않는 다는 점을 이용해서 '나 너에게 돈 보냈어 한 2-3일 걸려' 하면서 문서를 위조하는 경우도 왕왕 일어나는 사기이다.


돈을 나중에 준다는 것, 돈을 누구를 통해서 준다는 것 전부 다 사기다. Paypal로 거래하는것이 가장 안전하고, 중고물건 판매하는 사이트에서 제시하는 가장 안전한 방법을 통해 판매하고 구매하는 것이 자그마한 우리의 통장을 지키는 방법이다.


그리고 판매 글에 꼭 작성하면 좋은 문장이 하나 있다.

Ich bin privatverkäufer, keine garantie keine Rücknahme

(나는 개인 판매자입니다. 보상과 환불은 불가능합니다.)


이 문장이 있으면, 나중에 물건으로 인한 시시비가 붙어도 큰 일 없이 넘어갈 수 있다. (물론 멀쩡한 물건을 팔았을 경우에 한해서) 전자기기 같은 것은 판매 하기 전, 충분히 잘 작동되는지 동영상으로 기록해놓는 것도 방법이다. 나중에 구매자가 고장내놓고 안된다고 잡아떼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거기다가 절대, 결단코 집 주소를 알려주지 않는 것도 아주 현명한 거래 방법이다. 보통 근처 버스역이나, 커다랑 마트 앞에서 물건을 주고 돈을 받아 오는 것이 일반적이다.


즉, 적당히 긴장하고 어딘가 찜찜한 사람들을 거르면 좋은 토끼들을 만날 수 있다.

차가운 독일 땅에서 열심히 당근 흔드는 모두에게 모범 토끼를 만나는 행운이 있기를!



오늘의 독일 생활 팁!

1. 중고물품 팔 때 신상정보 유출에 유의하기

2. 판매 사이트에서 벗어나 따로 연락하는 것은 보호받지 못한다는 것 인지하기

3.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차단하고 미련가지지 말기

4. 왠만하면 집 안에 들이지 말기

5. 힘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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