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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인 집단은 왜 존재하지 않는가?

공직사회의 유연한 진화를 꿈꾸며

(프롤로그) "나는 도덕적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교육청에서 보낸 6년.

작은 교실을 벗어나 교육행정의 중심에 서보고자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한 명의 공직자’라기보다,

‘부서의 대변인’이 되어 있었다.

공익보다는 부서의 이익,

정의보다는 생존의 언어로 살아가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나는 과연 도덕적인가?’

개인으로는 양심을 지키려 했으나,

집단에 속한 순간 나는 그 집단의 논리로 살아가고 있었다.


1. 우리는 도덕적인 개인이지만, 동시에 비도덕적인 집단의 일원이다.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Philip Zimbardo)는 말한다.

“나쁜 사과보다, 썩은 바구니가 문제다.”

그는 스탠퍼드 감옥 실험에서

정상적인 개인들이 비도덕적 행위자가 되어가는 과정을 통해

“시스템의 힘이 인간의 도덕성을 어떻게 왜곡시키는가”를 증명했다.


공직사회 또한 다르지 않다.

정직한 개인이 모여 만든 조직이,

왜 비윤리적 관행과 부서 이기주의에 함몰되는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살아남기 위해서’다.

‘기존 사업 유지’

‘부서 간 업무 떠넘기기’

‘예산 따기 위한 포장과 생색’

‘의미 없는 실적 보고’


이 모든 관행은 성과 중심이 아닌, 평가 중심의 조직문화에서 비롯된다.

공익은 희생되고, 조직 논리에만 충실한 사람이 ‘성과자’가 된다.


2. 보여주기 행정의 역설 – 가짜 노동과 진짜 무력감

얼마 전 문화체육관광부의 한 서기관이 퇴직을 하면서 출판한 책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이 화제가 됐다.

그는 책에서 “가짜 노동을 멈춰야 한다”. 고 말한다.


“성과는 사라지고, 생색만 남았다.”

“짧은 보직, 쪼개진 책임, 그럴듯한 보고자료가

진짜 일을 덮는다.”


이 글은 2030 공무원들 사이에서 폭발적 반응을 일으켰다.

기획 보고서 하나에 몇 날 며칠 밤샘을 하고,

실행은 되지 않는 ‘결정된 듯 결정되지 않은’ 사업들.

기껏해야 성과 자료 한 줄로 남고,

그 성과는 다음 후임자의 과제가 된다.

정작, 학교는 무엇이 바뀌었는지 느끼지 못한다.


3. 도덕성을 잃는 사회, 인간을 도구화하는 행정

독일 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을 말하며

비도덕적인 체계에 순응하는 ‘평범한 인간’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그냥 지시를 따를 뿐인 관료가

가장 위험한 존재가 된다.”


한국의 공직사회도 마찬가지다.

도덕성은 시스템 안에서 무력화된다.

‘나 하나쯤 어쩌겠어.’

‘이렇게 안 하면 욕먹어.’

‘다른 부서보다 못하면 안 돼.’


이런 생각들이 쌓여 공익은 뒷전이 되고,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문화가 자리잡는다.

정직이 두려워지고,

개인은 도구화된다.


4. 왜 젊은 공무원들은 공직을 떠나는가?

2024년 인사혁신처 보고서에 따르면,

2030 공무원의 퇴직률은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이들은 “처우보다도 자율성 결여와 조직문화의 경직성”을 퇴직 이유로 꼽았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 구조,

말할 기회조차 없는 회의,

성과는 조직이 가져가고, 책임만 개인이 지는 시스템.”


공직은 더 이상 안전한 직장이 아니라,

변화를 허용하지 않는 거대한 벽이 되어가고 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개인의 성장과 의미,

자율과 책임이 함께 주어지는 조직,

명확한 권한과 열린 소통이 필요하다.


5. 조직이 나를 잡아먹는다. - 사라지는 자율과 인간성

나는 매번 회의 때마다,

나를 잊는다. 나의 목소리도, 생각도,

조금씩 지워진다.

학교에서 아이들과 고민을 나누고,

소소한 변화에 감동하던 나.

이제는 회의용 자료, 행사 체크리스트,

업무계획표에 둘러싸여 있다.

나는 교육청의 '부품'일 뿐이다.

그리고 그 톱니바퀴는 '너 아니어도 돌아간다'고 말한다.


6. 조직은 왜 바뀌어야 하는가? – 공직사회의 ‘리셋’을 상상하며

공직사회에 오래 있다 보면 어느새 익숙해지는 것들이 있다.

보고는 수시로 해야 안전하다는 믿음,

성과는 포장이 화려할수록 인정받는다는 착각,

‘많이 했다’는 인상만 남기면 된다는 자기기만.

하지만 우리는 안다.

그런 것들은 교육을 위한 일이 아니라

조직을 위한 ‘안전장치’일 뿐이라는 것을.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조직은 단순하고 민첩해져야 하고,

담당자에게는 자율과 책임이 함께 주어져야 하며,

성과는 정직하게 평가받아야 한다.

의사결정은 공감으로 이뤄져야 한다.


조직은 사람 위에 군림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이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비로소

‘좋은 일’을 한다는 자부심을 되찾을 수 있다.


(에필로그) 나는 어떤 공무원이 되었는가?

교육청에서의 6년은 나를 단련시켰지만,

한편으로 나를 마모시켰다.


이제 나는 묻는다.

"도덕적인 개인으로 남을 수 있는 공직사회는 가능한가?"

조직이 나를 함몰시키기 전에,

나는 나 자신을 지키고 싶다.


더는 부서의 생색과 숫자에 갇히지 않고,

작더라도 의미 있는 일,

누군가의 삶에 온기를 주는 행정을 하고 싶다.


이 글이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거나,

변화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작은 불씨가 되기를 바란다.


2025. 7. 2.(수) 별의별 교육연구소 김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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