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왜 변하지 못하는가?

교육의 주인 없는 공간, 그 침묵의 구조

“가르칠 수 없는 교사, 배울 수 없는 학생.”

요즘 교실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하면 지나친 과장일까. 하지만 교실을 실제로 들여다보면, 이 문장이 결코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나 체감할 수 있다.

정서위기 학생이 해마다 늘고 있고, 수업을 방해하거나 수업 중 자리를 이탈하는 학생들도 더는 특별한 사례가 아니다. 반면, 교사는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이다. 수업을 중단하고 대응해야 하는 순간이 잦고, 민원이나 오해를 걱정해 훈육도 조심스럽다. 수업을 온전히 ‘가르치는 일’에만 집중할 수 없다는 점에서 교사의 생존권조차 위협받는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나온다.

학부모도 불만이 쌓여간다. 공교육에 대한 신뢰는 점점 약화되고 있고, 그 공백을 메우려는 듯 사교육비는 매년 신기록을 갈아치운다. 결국 학교에서 충족되지 못한 교육에 대한 욕구가 사교육으로 옮겨가면서, ‘공교육의 한계’라는 말은 이제 교육 담론의 상투어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이 모든 문제의 출발점이 단순히 '학생이 문제다', '교사가 책임이다', 혹은 '학부모의 욕심 때문이다'라는 식으로 단정 지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진짜 문제는 학교라는 구조 자체가 변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구조의 중심에 ‘주인’이 없다는 점이다.

학교는 왜 변하지 못할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질문이다. 이토록 많은 변화와 위기가 닥쳐왔음에도 불구하고, 학교는 왜 여전히 과거의 모습 그대로인가?

그 이유는 학교가 스스로 변화를 결정할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학교의 모든 규칙은 위로부터 내려온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교육청 지침, 각종 매뉴얼과 매해 갱신되는 공문들. 학교는 그것을 이행하는 곳이지, 창조하거나 조정하는 공간이 아니다.

학생도, 교사도, 학부모도 학교 운영의 실질적 결정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 ‘교육 주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제도의 객체, 즉 그저 제도를 ‘수행’해야 할 위치에 머무른다. 그러니 ‘학교 자율성’이라는 말은 현실에선 거의 허상이다.

학교는 교육기관이 아니라 ‘선발기관’이 되었다

교육의 본질은 성장이다. 그러나 지금의 학교는 성장보다는 선별에 집중되어 있다.

초등학교는 영재학급, 중학교는 특목고·자사고 대비, 고등학교는 수능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국어 시간은 독서보다는 문항 풀이로 채워지고, 수학 시간은 개념 이해보다 선행 진도 확인이 중요하다. 학교가 학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시험을 위해 학교를 이용하는 구조가 되어 버렸다.

더 이상 학교는 ‘배움의 공간’이라기보다, ‘서열화의 출발점’에 가깝다. 교육은 점점 더 입시의 하위 시스템으로 전락하고 있고, 학생은 배움을 즐기기보단 생존을 위한 문제풀이에 익숙해진다.

주인 없는 학교 – 모두가 객체인 구조

이쯤에서 물어야 한다. 그렇다면 학교의 ‘주인’은 누구인가?

학생은 학교의 중심이어야 하지만, 자신이 배우는 내용을 결정할 수 없다. 교사는 교육과정의 일부를 재구성할 권한은 있지만, 그것조차 제도적으로 통제된다. 학부모는 의견을 개진할 수 있지만, 실제 결정은 학교 밖에서 이루어진다.

결국 학교라는 공간에는 실질적인 주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자리를 채운 것은 법령, 지침, 매뉴얼, 기준표, 평가지표들이다. 이런 체계 속에서 모든 구성원은 수동적일 수밖에 없다.

이반 일리치는 『탈학교의 사회』에서 학교를 "사회가 필요한 인간을 기계적으로 양산하는 시스템"이라 비판했고, 보울스와 진티스는 학교를 자본주의 사회의 복제를 위한 도구라 지적했다. 지금의 우리 학교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사회를 여는 인재를 기르기보단, 기존 사회가 원하는 틀에 맞는 인간형을 양산하는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책임은 없고, 회피만 있는 구조

더 심각한 문제는 학교 안에는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학생의 문제행동이 발생해도, 교사는 훈육이 어렵고, 학부모는 학교의 대응이 미흡하다고 생각한다. 교장은 교사의 권한 부족을 말하고, 교육청은 "학교 자율성"을 내세운다. 그러는 사이, 누구도 실질적인 결정을 내리지 않고,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이런 구조 안에서 학교는 점점 더 소극적이 된다. 새로운 시도는 리스크로 간주되고, 기존 매뉴얼을 따르는 것이 가장 안전한 선택이 된다. 교사도, 관리자도, 학생도 위축된다. 이 구조가 변화하지 않는 이상, 학교는 제자리걸음을 반복할 것이다.

학교, 다시 '교육의 공간'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들

그렇다면 학교는 어떻게 다시 ‘교육의 공간’이 될 수 있을까?



첫째, 자율성을 회복해야 한다.

교사, 학생, 학부모가 학교 운영의 실질적 주체가 되어야 한다. 규칙을 함께 만들고, 교육과정을 함께 설계하며, 결정에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학생자치회’나 ‘교사학습공동체’가 이름뿐인 형식이 아니라, 학교의 문화를 이끄는 실질적 주체가 되어야 한다.



둘째, 평가 중심 문화를 전환해야 한다.

입시를 위한 교육이 아닌, 삶을 위한 교육이 되어야 한다. 어떤 직업을 가질지,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은지, 그 질문에 답을 찾는 과정이 교육의 본질이어야 한다.



셋째, 구성원 모두가 ‘주인’이라는 문화가 필요하다.

학교의 주인은 누구인가? 이제는 모두가 "내가 주인이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책임을 공유하고, 자율적으로 운영되며, 실질적인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학교는 살아 있는 조직이 된다.

에필로그

오늘의 학교는 모두가 피로하다.

학생도, 교사도, 학부모도, 누구도 학교 안에서 만족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 이유는, 학교 안에 아무도 진짜 주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학교를 바꾸는 일은 제도를 바꾸는 것만이 아니다. 문화를 바꾸고, 권한을 나누며, 책임을 나눌 수 있는 ‘사람 중심의 학교’로 다시 세우는 일이다.

그 첫걸음은 아주 단순한 질문에서 시작할 수 있다.

“학교에서 진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 물음에 우리가 지금, 진심으로 답해야 할 시간이다.

2025. 6. 20. (금)
별의별 교육연구소 김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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