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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벌거벗은 왕’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가?

침묵의 문화가 만든 ‘비정상적 정상성’을 돌아보다

누구도 말하지 못한 그 진실: 왕은 벌거벗었다

오래된 이솝우화, ‘벌거벗은 임금님’ 이야기를 떠올린다. 사기꾼이 짠 옷을 입었다며 왕은 거리로 나서고, 아무 옷도 걸치지 않은 채 환호를 받는다. 아무도 진실을 말하지 못한다. 옷이 보이지 않으면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그 기묘한 프레임에 갇혀서다.

이야기는 단순한 우화지만, 오늘의 조직에서도 놀랍도록 비슷한 장면이 재현된다. 권위가 앞선 자리에서, 지도자의 결정에 반기를 들기란 쉽지 않다. 조직의 수장이 선호하는 방식, 입맛에 맞는 의견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조용히 밀려난다. 리더와 ‘말이 잘 통하는’ 이들은 능력 있는 인재로 중용되고, 그렇지 않은 목소리는 점점 조직 안에서 자취를 감춘다.


보여주기와 줄 세우기: 권력이 중심이 되면 조직은 흔들린다

조직이 성과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 성과가 진정 조직과 사회에 기여하는 결과인지, 아니면 권력자에게 잘 보이기 위한 ‘연출된 실적’인지를 분별하는 감각은 중요하다. 조직이 선거나 평가, 외부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게 되면, 사업은 실질적 개선보다 ‘표에 잘 보일 만한 것들’에 집중된다.

이 과정에서 가장 흔한 왜곡이 생긴다. 당장의 성과를 만들기 위한 이벤트성 행정, 보여주기식 캠페인, 과장된 수치와 미사여구. 그 어떤 내부 회의에서도 ‘이게 진짜 필요한가’라고 질문하는 목소리는 점차 사라진다. 혹여라도 반대 의견을 내면, 그는 조직의 기류를 흐리는 사람, 분위기를 해치는 이로 낙인찍히기 쉽다.


민주적으로 뽑힌 리더가 권위적으로 변하는 이유

우리는 ‘민주적 선출’이라는 절차에 큰 기대를 건다. 투표, 선거, 회의—형식은 민주적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뽑힌 리더가 가장 먼저 포기하는 것도 민주성이다. 결정의 무게가 커질수록 리더는 속도와 통제를 중시하게 되고, 비판과 견제를 ‘비생산적 소음’으로 간주한다.

민주적 조직은 단순한 절차가 아니라 문화를 의미한다. 말이 통하고, 비판이 허용되며, 누구든 안전하게 자신의 의견을 펼 수 있는 분위기. 그러나 실제 조직 운영에서는 비공식적이고 묵시적인 분위기가 훨씬 더 강한 영향을 미친다. ‘이 조직은 이런 말 하면 안 돼’, ‘저 사람 눈 밖에 나면 불이익이 있어’—이런 인식이 자리잡은 조직은 형식이 아무리 민주적이라도, 실질은 권위주의에 가깝다.


직언이 어려운 조직의 그림자

직언은 조직을 건강하게 만드는 필수 요소지만, 현실에서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어떤 사업이든 빛만 있는 건 아니다. 예상치 못한 문제나 구조적 부작용이 언제든 나타날 수 있다. 그럴수록 사업 구상 초기부터 전방위적으로 다양한 의견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리더가 사업의 방향과 운영 방식을 먼저 정해버리면, 이후의 논의는 형식적인 절차에 그치기 쉽다. 회의는 생기를 잃고, 구성원들은 좋은 점만 부각하기에 바빠진다. 이런 분위기에서 문제를 지적하는 일은 곧 ‘내 편이 아니다’라는 오해를 부르고, 중요한 의사결정에서 배제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권력자의 판단에만 의존한 결정은 매우 위험하다. 현장의 목소리는 걸러지고, 실제 상황과 괴리된 판단은 사업의 효과마저 왜곡하게 만든다. 아무리 좋은 사업이라 해도, 일방적으로 지정된 방향과 위에서 내려온 방식대로 운영된다면 현장에서는 혼선과 부작용만 낳게 된다.


조직을 살리는 힘: 경청, 포용, 그리고 잠재된 문화의 변화

조직 관리에서 가장 강력한 힘은 사실 ‘성과’가 아니라 문화다. 특히 비공식적 문화—사람들이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가, 의견이 존중받는가, 실패가 용납되는가—이 세 가지는 조직이 건강한지 여부를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다.

교육학에는 잠재적 교육과정이라는 개념이 있다. 이는 교사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수업 외의 분위기나 행동을 통해 학생에게 전달되는 메시지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겉으로는 협력과 존중을 외치지만, 실제로는 줄 세우기와 불신, 복종을 강요한다면 구성원은 결국 말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조직은 서서히 생기를 잃는다.


진짜 리더는 누가 무엇을 했느냐보다, 누가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를 본다

탁월한 리더는 사업의 숫자보다 조직원의 눈빛을 본다. 리더가 자주 하는 질문이 ‘성과가 얼마나 나왔나?’가 아니라, ‘지금 우리 조직은 어떤 공기를 품고 있나?’라면 그 조직은 이미 절반은 성공한 셈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리더십은 단호함과 통제보다, 포용과 경청이다. 직언을 허용하고, 구성원의 의견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을 키우는 일. 이것이 조직의 지속가능성을 좌우하는 진짜 능력이다.


우리는 지금, ‘벌거벗은 왕’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가?

아무도 입지 않은 옷을 입었다고 말하며 박수치는 그 우화는, 단지 동화 속 이야기만은 아니다.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 명백한 문제에도 침묵하는 것, 보여주기 행정에 박수를 치는 것—이 모두가 현대 조직의 익숙한 장면이다.

하지만 한 명의 아이가 진실을 외쳤을 때, 이야기는 바뀌기 시작했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작은 용기, 작지만 진심 어린 비판, 사소하지만 중요한 질문—그것들이 쌓일 때 비로소 조직은 조금씩 바뀐다.

진짜 강한 조직은 권력자에게 아첨하는 곳이 아니라, 불편한 말도 함께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이 있는 조직이다. 지금, 우리 조직은 그럴 준비가 되어 있는가?


2025. 8. 20. 별의별 교육연구소 김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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