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 박준 '비'
그는 비가 내리는 것이라 했고
나는 비가 날고 있는 것이라 했고
너는 다만 슬프다고 했다.
- 박준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난다, 2017)
[단상]
같은 대상을 보아도 어떤 순간을 포착하는지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다.
구름에서 생성되어 대지에 닿기까지 일련의 과정을 겪는 비도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하늘의 관점으로 보면 비는 내리는 것일 테고 허공의 관점에선 비는 다만 날고 있는 것일 수 있다. 바닥에 닿아 동그란 파문만을 남긴 채 소멸하는 빗방울에 초점을 맞추면 슬프다는 말도 이해가 된다. 시인은 ‘비’ 하나도 이렇게 ‘그’와 ‘나’, ‘너’의 관점을 모두 수용하여 전체를 보려고 노력한다.
김경미 시인도 <봄에 꽃들은 세 번씩 핀다>라는 시에서 ‘필 때 한 번 / 흩날릴 때 한 번 / 떨어져서 한 번’ ‘봄 한 번에 나무들은 세 번씩 꽃 핀다’라고 말한다. 그중 떨어져서 길을 물들이는 바닥의 꽃들이 제일 아름답고 힘이 된다고 고백한다.
바닥의 빗방울과 꽃들이 슬픔과 기쁨과 같은 우리의 감정을 건드리는 건, 우리와 물리적으로 가장 가까워서일까? 중력의 법칙에 따라 바닥을 딛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의 숙명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