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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미 Nov 02. 2020

사람의 어깨를 저녁이 어루만진다

[시 읽기] 심재휘 '건너편 가을'



건너편 가을


                    심재휘     


비가 그치고 늦가을 바람이 분다

어제보다 조금 더 눈이 맑고

주머니가 많은 바람이

분다     


집 앞 오래된 은행나무 숲을 쓰다듬으며 가을이

동쪽으로 기울어진 소리를 내며 가을이

지나가고 있다     


오전에 나갔던 길을 되짚어

은행나무 숲길로 돌아오는 사람     


오늘은 바람이 불고

우 우 바람이 불고

사람의 어깨를 저녁이 어루만진다     


- 시집 『중국인 맹인 안마사』 (문예중앙, 2014)     




[단상]

가을비가 그치고 나면 한층 매서워진 바람에 나무들은 잎을 떨군다. 온통 노랗게 물들었던 은행나무 숲도 그 빛깔을 잃어간다. 치장을 벗고 본래의 고독한 존재로 돌아가는 것이다. 가을은 벌써 절정을 지나 기울고 있다. 

    

오늘 하루도 저물어 간다. 숲을 거닐던 사람은 길을 되짚어 돌아온다. 저녁은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는 시간이니까. 어쩐지 그의 생의 계절도 늦가을인 듯하다. 가을바람이 살포시 그의 어깨를 어루만지며 위로를 전하는 것을 보니.



*사진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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