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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미 Oct 11. 2022

안중근의 길은 끝나도
말은 이어진다

김훈 <하얼빈>(문학동네, 2022)을 읽고

본 독후감에는 책의 내용 일부와 개인적인 관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나는 첫 페이지로 돌아와 지도를 들여다본다.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의 이동 경로가 날짜와 함께 기입되어 있는 철도 지도다. 이 간략한 그림 안에 무수한 상념과 비장한 결심이, 절망감과 복받침이, 죽음과 죽임이 내포되어 있음을 떠올리니 몸이 떨려온다. 대련항에서 하얼빈으로 오는 철로에는 이토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주를 가로질러 하얼빈으로 가는 철로엔 안중근이 서로 다른 대의를 품고 몸을 실었다. ‘철로는 하얼빈에서 만나고 있었다.’(p.114)    

 

   자칫 어긋날 수도 있었던 이 겹쳐짐을 후에 안중근은 자신의 ‘모자람’이자 ‘복’(p.268)이라며 하느님께 감사한다. 하얼빈역 플랫폼은 안중근이 ‘이토를 쏘기에 알맞은 자리고, 이토가 죽기에 알맞은 자리’(p.194)였다. 안중근의 오른손 검지손가락 둘째 마디가 방아쇠 위에서 저절로 움직였고, 안중근의 입은 ‘코레아 후라(만세)’(p.167)를 외쳤다. 안중근의 몸과 말이 마지막 자유를 내뿜었다. 제 갈 길을 끝까지 간 안중근이 당도한 곳이 하얼빈이다. 거사 이후의 살길은 애초에 모색조차 하지 않았다. 안중근은 총의 반동은 총 쏜 이의 몸안에서 삭여내야 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안중근의 행보는 당대 황실과 대신들의 선택과 대비된다. 일본은 식민주의를 문명개화와 동양 평화라는 ‘선의’(p.122)로 포장했고 조선의 지배층은 이에 공모했다. 순종은 이토의 죽음에 재빨리 슬픔을 표명해 위기를 모면하고자 했고, 대신들은 안위를 보장받기 위해 국권을 포기하는 문서에 순순히 도장을 찍었다. 안중근과 우덕순을 비롯한 민중들이 목숨을 바쳐가며 국권 회복의 길을 찾고 있을 때, 지배층은 제 살길만 도모하고 있었다. 포수, 무직, 담배팔이인 ‘일개의 국민’(p.232)이 영웅이 될 수밖에 없었던 현실엔 이 같은 시대의 그림자가 있었다.     


   소설의 끝에 김훈 작가는 소설이 감당하지 못한 일들이라며 후기를 적었다. 안중근 직계가족과 문중의 인물들이 겪어야 했던 비참은 후세의 독자가 읽기에도 감당하기 버거웠다. 기록되지 않고 생략된 부분들에 더 큰 아픔과 슬픔이 숨어있을 것이었다. 조선총독부의 기획과 연출로 이루어진 안준생(안중근의 차남)과 안현생(안중근의 장녀)의 박문사 참배, 안준생을 교수형에 처해달라는 김구의 청, 뮈텔 천주교 주교의 ‘조선인들의 음모’ 제보, 그리고 여전히 비어있는 효창공원의 안중근 가묘…. ‘빛나는 영웅 안중근’으로 끝나지 않고 그 뒤로도 쓰라린 역사가 길게 이어졌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후손인 우리는 제 할 일을 다 했는가.     


   김훈은 소설에서 대한매일신보 신문의 문장을 가리켜 ‘곧고 단단해서 읽는 사람을 찌르고 들어왔다’(p.55)고 썼는데 작가의 문장이 정확히 그렇다. 그래서 간결하고 냉철하기까지 한 소설의 문장이 유일하게 길게 이어지는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이토를 죽여야만 하는 동기에 관한 안중근의 생각이다.   

   

   ‘이토를 죽여야 한다면 그 죽임의 목적은 살殺에 있지 않고, 이토의 작동을 멈추게 하려는 까닭을 말하려는 것에 있는데, 살하지 않고 말을 한다면 세상은 말에 귀 기울이지 않을 것이고, 세상에 들리게 말을 하려면 살하고 나서 말하는 수밖에 없을 터인데, 말은 혼자서 주절거리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대고 알아들으라고 하는 것일진대, 그렇게 살하고 나서 말했다 해서 말하려는 바가 이토의 세상에 들릴 것인지는 알기가 어려웠다.’(p.89)     


   안중근의 긴 고뇌와 복잡한 심경, 그럼에도 확고한 신념이 이 한 줄에 담겨있다. 안중근은 말하기 위해 살殺했다. 살인이 목적이 아니라 더 거대한 규모로 벌어지는 살인을 세상에 폭로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는 ‘안중근의 총은 그의 말과 다르지 않다.’(p.307)는 작가의 마지막 말과도 연결되며 소설의 존재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안중근의 길은 하얼빈에서 멈췄지만 안중근의 말은 <하얼빈>으로 이어진다.         


      

김훈 장편소설 <하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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