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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미 May 15. 2023

망각은 치유인가, 저주인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파묻힌 거인>을 읽고

본 독후감에는 책의 내용 일부와 개인적인 관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파묻힌 거인>(시공사, 2015)을 읽는 동안, 나는 방향도 잃고 기억도 잃은 채 안갯속을 헤매는 느낌이었다. 안개가 자욱한 고대 잉글랜드는 어딘가 으스스했고 인물들은 하나같이 모호하고 수상쩍었으며 심지어 용과 도깨비같이 신비한 존재들이 곳곳에서 출몰했다. 작가는 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어서 지금의 우리를 이처럼 낯설고 미스터리한 세계에 데려다 놓은 것일까? 이 이야기의 종착지는 대체 어디일까? 의문을 품은 채 작가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한 겹 베일에 싸여 있던 서늘한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파묻힌 거인이 깨어나듯 떠오르는 묵직한 질문. 망각은 과연 치유인가, 저주인가?     



   

   소설은 짙은 안개가 사람들의 기억을 앗아간 어느 브리튼족 마을에서 시작한다. 아마도 이 마을에 정착해 긴 세월을 살아온 듯한 노부부 액슬과 비어트리스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서로를 무척 아끼는 이들은 어느 날 갑자기 아들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고 아들의 마을을 찾아 나선다.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지 잘 알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p.44)라며 호기롭게 출발했지만, 이들의 여정엔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이 감돈다. 아들에 대한 흐릿한 기억, 정확하지 않은 목적지, 상실에 대한 두려움. “지금도 거기 있나요, 액슬?” “지금도 여기 있어요, 공주”(p.48) 비어트리스와 액슬은 길 위에서 거듭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다.    

 

   두 사람은 우연히 색슨족 마을에 들어섰다가 외지의 전사 위스턴과 색슨족 소년 에드윈을 만나 동행하고, 수도원으로 향하는 길에서 아서왕의 기사 가웨인 경을 만난다. 그리고 수도사들의 비밀스러운 임무, 암용 케리그가 내뿜는 안개의 진실을 알게 된다. 안개가 이 지역 사람들의 기억을,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을 모두 덮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안개는 집단의 기억을 조작해서 지역을 평화롭게 통치하려는 하나의 수단이었다는 것도 말이다.     


   안개의 정체를 안 이상, 케리그를 제거하고 기억을 되찾는 것이 옳은 수순일 것이다. 하지만 안개가 브리튼족과 색슨족 사이의 비극적인 역사를 가려 이 지역이 평화를 유지하고 있는 거라면, 살육의 악순환을 끊은 것이 망각이라면, “당신은 이 안개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고 확신하시나요? 우리가 알지 못하게 감춰져 있는 편이 더 좋은 것도 있지 않을까요?”(p.234) 쉽사리 대답하기 힘든 질문이 독자에게 던져진다. 당신은 망각의 평화를 선택하겠는가, 아니면 어두운 기억을 끌어안더라도 진실을 파헤치겠는가?     


   이 물음은 역사라는 거대 서사뿐만 아니라 개인의 차원에서도 중요하다. 지금까지 사랑으로 단단히 결속된 듯했던 액슬과 비어트리스 사이에도 불길한 기운이 드리우기 때문이다. 케리그를 처치하고 안개가 서서히 걷히며, 이들에게도 지난날의 아픈 상처가 돌아온다. 서로를 배반하고 떠났던 일, 아들의 가출과 죽음, 어리석고 옹졸한 복수. 어쩌면 안개가(망각이) 이들의 오랜 상처를 아물게 했고 용서를 가능하게 했고 사랑을 강하게 만들었으리라는 액슬의 성찰은 독자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소설 속 짙은 안개처럼 슬픈 예감이 퍼진다.   

   

   ‘함께 나눈 과거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당신과 당신 남편은 서로를 향한 사랑을 어떻게 증명해 보일 거예요?’(p.71)라던 어느 여인의 질문은 여정의 끝에서 뱃사공의 테스트가 되어 돌아온다. 두 사람 사이에 대단히 강한 사랑의 유대가 있어야만 함께 배에 태워 섬으로 데려다준다는 뱃사공. 각자에게 주어진 질문과 답변의 시간. 그리고 홀로 배에 오르는 비어트리스와 뒤돌아 육지 쪽으로 걸어가는 액슬. 과거가 어떤 모습이었더라도 지금의 사랑하는 마음은 절대 잊지 않겠다던 이들의 약속은 드러난 진실 앞에서 이토록 나약한 것이었던가. 이들은 이대로 헤어져 영원히 함께할 수 없는 것일까? 그렇다면, (다시금 떠오르는 질문) 잊힌 기억을, 파묻힌 역사를 들추는 게 좋은 일일까?     



    

   작가는 하나의 질문을 사회와 개인이라는 다양한 차원에서 묻고 또 묻는다. 망각과 기억 중 무엇을 선택할지는 독자의 몫이다. 하지만 어쩌면 소설 속에 작가의 희망이 숨겨져 있는지도 모른다. 다음 세대를 상징하는 색슨족 소년 에드윈에게 전하는 메시지에 말이다. 위스턴은 에드윈에게 색슨족의 비극을 기억하라고 당부하고, 액슬과 비어트리스는 브리튼족의 우정을 잊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다. 상충하는 주문 같지만 사실은 둘 다 ‘기억하라’는 말이다. 좋은 기억뿐만 아니라 나쁜 기억까지도.      


   그러니 묻게 된다. 지금 우리의 현실엔 망각의 안개를 내뿜는 케리그가 있지 않은가? 과거의 기억에 얽매이지 말고 미래를 위해 잊으라고 강요하는 그런 권력자가 있지 않은가?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파묻힌 거인 - 거대하고 어두운 진실- 이 깨어나는 순간 망각을 통해 얻은 평화는 일시적인 꿈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장편소설 <파묻힌 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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