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래너리 오코너의 <좋은 사람은 드물다>를 읽고
본 독후감에는 책의 내용 일부와 개인적인 관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소설의 시작은 유쾌 발랄한 가족 소동극 같았다. 왁자지껄하게 여행을 떠났다가 중간에 길을 이탈하여 엉뚱한 곳에 도달하는 좌충우돌 여행기. 할머니를 포함해 가족 구성원이 하나같이 조금 밉상이긴 했어도(수다스러운 할머니, 권위적이고 인정머리 없는 아버지, 순종적이고 존재감 없는 어머니, 그리고 세상 건방진 아이들) 이렇게까지 비극적인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차 사고에 이어 탈옥수와의 우연한 마주침이 가족의 몰살로 귀결되는 전개라니…. 그러고 보니 작가가 플래너리 오코너다. 미국 ‘남부 고딕’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그로테스크의 천재’라고도 불리는 인물. 다시 살펴보니 소설의 제목도 의미심장하다. <좋은 사람은 드물다>(A Good Man Is Hard to Find).
플래너리 오코너의 단편집(현대문학, 2014)에는 서른한 편의 소설이 실려있다. 서른한 가지 맛을 홍보하는 아이스크림 가게나 하루키의 비스킷 통처럼 다양한 맛의 소설들이 한 권에 담겨 있지만, 안타깝게도 달콤하거나 고소한 맛을 기대할 수 없다. 오히려 해리포터에 나오는 젤리빈을 닮았다. 말랑말랑하게 시작한 각양각색의 이야기가 귀지 맛이나 썩은 달걀 맛 같은 충격적인 뒷맛을 남긴다. 그런데 의외로 다음엔 어떤 뒤통수치는 맛이 나올지 궁금해서 읽기를 멈출 수가 없다. 약간 ‘폭탄 돌리기’ 같기도 하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양손에 들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읽는 책.
단편 <좋은 사람은 드물다>에서의 폭탄은 두 부적응자(Misfit)의 만남에서 폭발한다. 탈옥수는 “내가 저지른 잘못하고 내가 받은 벌하고 계산을 맞출 수가 없”(p.182)어 스스로 부적응자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말한다. 할머니는 자신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변화한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숙녀’나 ‘가문’ 타령을 하며 ‘좋았던 옛날’(p.170)만 찾는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범죄자와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할머니가 두서없이 긴 대화를 나누다 결국 자폭하고 마는 이야기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할머니는 범죄자를 설득하는 자신의 말에 도취하여 그의 삶을 멋대로 추측하고(“당신은 좋은 사람이에요. 당신은 평민의 피가 흐르는 사람 같지 않아요. 품위 있는 가문 출신이 틀림없어요!”(p.176)) 종교를 들먹이며 그를 구원하려 든다(“기도하세요. 기도를...”(p.179)). 그리고 목숨을 부지하겠다며 성모마리아라도 된 것처럼 “너도 내 아기들 중 하나야. 내 새끼들 중 하나!”(p.183)라는 말을 뱉는다. 이전엔 오지랖 수준이었던 할머니의 수다가 오만과 기만, 허위의식 범벅이 되어 범죄자의 화를 돋운다. 할머니는 자신이 아는 세상이 전부인 줄 아는 얄팍한 정신으로 인해 참혹한 죽음을 맞는다.
한편 범죄자는 처음엔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이해를 바랐는지 모르지만, 할머니와 대화를 하면 할수록 답답함과 분노가 쌓인 듯하다. 예수님이라고 자신과 다를 게 없는데 왜 자기만 범죄자의 죗값을 치러야 하는지 부당하다고 느낀다. 할머니가 ‘내 새끼’ 운운하며 친밀함을 가장하는 제스처를 취한 게 심지에 불을 붙였다. 그는 순간 화를 이기지 못하고 할머니에게 총 세 방을 쏜다. ‘나쁜 짓만큼 재미난 게 없’(p,183)다던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살인 후에 “인생에 진짜 즐거움은 없어.”(p.184)라며 말을 바꾼다. 냉소와 허무가 폭발 후에 남은 검은 재처럼 어둡게 내려앉으며 소설은 마무리된다.
두 인물의 폭주와 뜻밖의 결말을 목격한 독자는 황당하다. 할머니(를 비롯한 그녀의 가족)가 비록 ‘좋은 사람’은 아닌 것처럼 그려졌어도 죽을 만큼의 죄를 짓지는 않은 것 같은데, 범죄자가 자신의 말처럼 ‘세상에서 가장 나쁜 놈’은 아닌지 몰라도 저렇게 활개를 치고 다니면 안 될 것 같은데…. 어쩐지 황망하고 찝찝하다. 그런데 이후에 소설의 제목처럼 좋은 사람은 정말로 드문가,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인가, 좋고 나쁨의 기준은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하다 보면, 그다음에 오는 충격은 거의 PTSD 급이다. 그렇다면 나는 부적응자(Misfit)가 아니라고, 폭탄이 아니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나에게도 사회와 불화하고 시대에 역행하는 면이 있지 않은가? 누구나 위선적이고 어리석은 모습이 있지 않은가? 나도 그리고 어쩌면 우리 모두도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인식이 서늘하다 못해 공포스럽다. 그러니까 이 단편의 맛은 나와 세상의 민낯을 보았다는 씁쓸함이다. 세상에 부적응자는 많고 좋은 사람은 드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