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 깊은 곳>>의 수록 단편 <현의 노래>(하오징팡)를 읽고
<<고독 깊은 곳>>(하오징팡, 글항아리, 2018)은 중국 작가 하오징팡의 SF 중단편집이다. 수록작 중 <접는 도시>는 휴고상 수상작이다. 소설은 베이징의 인구 과밀과 실업률 문제를 도시 공간 분할(‘전환’을 기점으로 접히고 펼쳐지는 도시를 통해)과 생활시간 분배(계층별로 차등 분배)라는 충격적인 방법으로 해결한 미래 사회를 그리고 있다. 아이디어가 기발하고 이야기가 흥미진진해서 SF 장르 애호가라면 강력하게 추천하는 작품이다. 해당 작품에 대한 독후감은 예전에 썼기에, 이번엔 작품집의 다른 소설을 한 편 소개하고자 한다. (<접는 도시>의 독후감은 하단 링크 참고)
소설의 제목은 <현의 노래>이다. ‘SF가 음악과 접목된다면?’ 제목을 보고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를 상상해 보았지만, 이번에도 작가의 발상은 독자의 예상을 뛰어넘는다. 소설에서 외계인 강철족은 달에 거점을 세우고 인류를 공격한다. 군과 경찰 등 저항하는 자들을 무참히 살육한다. 그런데 독특하게도 과학과 예술, 역사는 신봉해서 관련자들은 우대한다. 뛰어난 과학자와 예술가들에게는 지구의 지상낙원인 샹그릴라로 이주해서 자유를 누릴 수 있게 관용을 베풀기까지 한다. 사람들은 강철족이 표방하는 것이 ‘폭력’인지 ‘문화’인지 감을 잡지 못한 채 갈팡질팡한다.
그 와중에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악기를 배우고 공연을 한다. 이 소설에서 재미있는 설정은, 평소에 삶과 유리되어 있다고 평가받는 예술이 뜻밖의 계기로 직접적인 생존 수단이 되어버린다는 아이러니다. 그러자 예술은 유례없는 각광을 받으면서도 동시에 그 의미는 퇴색된다. 생존을 위해 바이올린 켜는 법을 가르치고 배운다고 상상해 보라. 예술적 정취는 사라진 그야말로 살풍경한 광경이 그려진다.
이러한 강철족의 지배와 조건적인 자유에 의구심을 품은 음악가가 나타난다. 오케스트라 지휘자인 린 선생님은 비슷한 뜻을 지닌 일군의 음악가들을 모집해 강철족에게 저항하기로 한다. 그의 계획은 지구와 달을 잇는 나노미터 사다리 ‘하늘다리’를 악기의 현처럼 이용해 공명 현상을 일으켜 진동으로 달을 파괴하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들지만, 현실에서도 진동의 공명 현상으로 인해 무너진 다리가 있었다고 하니 그럴싸한 전략인지도 모르겠다(1940년 미국 타코마 Tacoma 대교 붕괴 사건).
문제는 현의 반대편 끝, 즉 현을 튕기는 당사자가 서 있는 땅도 파괴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린 선생님을 포함한 오케스트라단은 자신들의 희생까지 각오한 것이다. ‘최후의 도박으로 현을 연주해서 세상에 마지막 애가를 울리는 것. 자신의 생명을 버려서 자유를 쟁취하는 것. 절망에 이른 사람만 할 수 있는 최후의 저항이다.’(p.91)
이 영웅적인 항전에 주인공 췬쥔은 바이올리니스트로 초청된다. 하지만 그는 함께 할 음악가들을 모집하면서도 끊임없이 인류가 자신들이 희생하면서까지 구원할 가치가 있는지 묻는다. 대단한 신념이나 결기를 갖고 실행하는 인물이 아니라 의심하고 고뇌하는 인물이라 이야기가 더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작가는 서문에서 'SF소설을 쓰는 것은 가능성의 세계를 구상하고 그 세계의 끄트머리에 인물을 세워놓는 일이다. 그때 가장 쉽게 느끼게 되는 것은 탄생과 소외라는 감각이다.'(p.6)라고 밝혔다. 췬쥔은 세계의 끄트머리에 고독하게 선 채 고심하다 결국은 거사에 합류한다.
드디어 웅장한 오케스트라 공연과 함께 ‘하늘다리’의 현이 울린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 단편의 뒤에 나란히 실린 소설은 <화려한 한가운데>이다. 작가는 두 작품을 ‘합쳐져야 내가 의도한 상징과 의미가 나타나’(p.7)는 A면과 B면이라고 소개했다. 외계인에 맞서는 영웅담이 A면이라면, 그 이면에 숨은 진실이 B면이다. B면까지 다 읽고 나면, 인간이 싸우는 적이 과연 외계인인지 아니면 다른 인간인지, 어쩌면 자기 자신의 내면은 아니었는지 깊이 생각해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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