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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미 Apr 29. 2020

'아하!' 일상은
시적인 순간으로 넘쳐난다

영화 <패터슨(2016)> 리뷰

*본 리뷰에는 영화의 주요 내용과 개인적인 관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짐 자무 감독<패터슨(2016)>은 패터슨 시에 사는 패터슨 씨의 일주일을 담은 영화다. 그는 버스 드라이버다. 매일 같은 시간(6시 10분에서 30분 사이)에 일어나 시리얼을 먹고 회사에 출근한다. 배차 직원과 간단한 안부 인사를 주고받고는 23번 버스를 운전해 승객들을 실어 나른다. 점심은 아내가 싸 준 빵을 먹고, 저녁은 퇴근 후 집에서 아내와 함께 먹는다. 식사를 마치면 항상 개를 산책시키고 동네 바에 들러 맥주를 한잔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한다.



여기까지가 반복되는 그의 일과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하나가 빠졌다. 바로 ‘시’를 쓰는 일이다. 


그는 틈틈이 그의 비밀 노트에 시를 적는다. 차고에서 버스를 출발시키기 직전 운전석에 앉아서, 점심을 먹기 위해 벤치에 앉아 폭포를 바라보며, 지하실의 작은 공간에 놓인 책상 앞에서 그는 시를 쓴다. 일상을 담은 화면 위로 그가 적어 내려가는 시가 오버랩된다. ‘패터슨 시에 사는 패터슨 씨’는 시를 쓰는 버스 드라이버인 것이다. 그가 즐겨 읽는 패터슨 출신의 위대한 시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처럼 말이다. 그는 시를 쓰는 의사였다. 



패터슨의 일상은 영화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쌍둥이처럼 하루하루가 닮아있다. 일주일이 큰 사건이랄 것도 소란이랄 것도 없이 잔잔하게 흘러간다. 아마도 가장 큰 사건은 버스의 전기장치가 고장 나 멈춘 것일 테고(차량이 불길에 사로잡히거나 죽을 뻔한 위험은 아니었다), 가장 요란한 소란은 바에서 자살 소동을 벌인 남자를 패터슨이 제압한 것일 테다(영웅적인 행동이었지만 장난감 총이었다).      


<패터슨>에 등장하는 쌍둥이들


특별한 일이 없으니 전혀 시적이지 않다고 여길 수 있지만, 그렇다고 아무 일도 없는 것은 아니다. 일상의 리듬 속에서 조금씩 변주되는 소소한 일들이 존재한다. 자세히 보면 쌍둥이에게서도 다른 점을 찾을 수 있는 것처럼, 그의 버스에 오른 승객들이 다르고 아내의 요리 레시피가 다르고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가 다르다. 


어쩌면 이 영화는 ‘시적인 순간’이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극적인 것이 아니라, 반복되는 유사함 속에서 미세한 변화를 감지하는 순간이라고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평범한 일상 속의 작은 발견, 작은 감탄, 작은 깨달음의 순간이 바로 시가 탄생하는 ‘아하!’의 순간이라고 말이다.      



때론 텅 빈 페이지가
가장 많은 가능성을 선사하죠.      


패터슨이 자신의 비밀 노트가 갈가리 찢어져 낙담해 있을 때, 우연히 만난 일본 시인은 그에게 빈 노트를 선물하며 이렇게 말한다. 


평범함은 때때로 비상함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중요한 건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빨래방에서 매일같이 랩을 연습하는 사람, 자기 자신을 이기기 위해 체스 경기를 하는 사람, 나만의 스타일을 완성하기 위해 흑백의 패턴을 반복해서 그리는 사람.  영화 <패터슨>은 주목하는 사람이 없어도 오늘도 묵묵히 자신의 열정에 몰두하는 이들에게 보내는 무한한 응원과 찬사의 시(詩)다.     


그렇게 다시 월요일, 시 쓰는 버스 드라이버의 한 주가 시작되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영화 <패터슨>의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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