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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미 Jul 20. 2020

슬플 때면,
우정에 떨리는 내 마음을 눕힌다

[시 읽기] 마르셀 프루스트 '우정'



우정    

  

    마음이 울적할 때 따뜻한 침대에 누우면 기분이 좋아진다. 머리까지 이불을 뒤집어쓴 채 더는 힘들게 애쓰지 말고, 가을바람에 떠는 나뭇가지처럼 나지막이 신음 소리를 내며 자신을 통째로 내맡기면 된다. 그런데 신기한 향기로 가득 찬 더 좋은 침대가 하나 있다. 다정하고, 속 깊고, 그 무엇도 끼어들 수 없는 우리의 우정이다. 슬프거나 냉랭해질 때면, 나는 거기에 떨리는 내 마음을 눕힌다.


    따스한 우정의 침대 안에 내 사고(思考)를 맡겨 버리고, 외부의 어떤 영향도 받지 않는다면, 더 이상 나 자신을 방어할 필요도 없어져서 마음은 이내 누그러진다. 괴로움에 울던 나는 우정이라는 기적에 의해 강력해져 무적이 된다. 동시에 모든 고통을 담을 수 있는 든든한 우정을 가졌다는 기쁨에 눈물을 흘리고 만다.  

   

- 마르셀 프루스트, <시간의 빛깔을 한 몽상> (민음사, 2019)

  



[단상]

<읽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르셀 프루스트가 쓴 초기 산문시 중 한 편이다. 


마음이 울적할 때, 내 한 몸을 눕힐 따뜻한 침대는 큰 위안이 된다. 하지만 더 큰 위로가 되는 건 ‘우정’이다. 프루스트는 ‘슬플 때면, 나는 우정에 떨리는 내 마음을 눕힌다.’라고 고백한다. 안락한 우정의 품은 외부로부터 나를 지켜주는 든든한 울타리다. 혼자서는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지다가도 우정에 기대어 실컷 울고 나면 정말 ‘기적’처럼 ‘무적’이 된 것만 같을 때가 있다.  


마르셀 프루스트, 『시간의 빛깔을 한 몽상』 (민음사,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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