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대신할 수 없는 물질들
소유하고 싶은 물건은 늘 존재한다.
나나 네 엄마나 매한가지다. 하지만 갖고 싶은 모든 것들을 구매하지 않으며, 가격의 높고 낮음과 상관없이 대상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 꼭 생각한다. 소비를 통해 내게 그리고 우리 가족 모두에게 전해지는 만족감은, 소비를 결정함에 있어 중요한 기준 가운데 하나이다. 아쉬운 점은 필요성과 가치와 의미는 충만하나 모두 가질 수 없음을 엄마와 난 너무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가질 수 있다 하여도 구매를 포기하는 경우도 생기기도 한다.
빈번하게 이커머스 플랫폼에서 물건을 구매하다 보니, 늘 장바구니엔 50여 가지 물건들이 담겨 있다. 꽤나 오랜 시간 그 상태였으나 구매의 행위를 하지 않고 종종 들어가 보며 확인하는 눈요기로 만족하게 되는 물건들도 있다. 그것으로 100% 만족하는 것은 아니나, 우리는 꽤나 신중하다. 가격에 대한 비교를 시작하기 전에 우리의 상황과 소비 전후의 마음을 고려한다.
매월 100만 원이 넘는 교육비를 포함한 우리 가족의 생활비, 매달 300만 원이 넘는 정기적금과 미국주식의 적립식 투자, 다양한 종류의 보장성 보험 등 외벌이 가정치고 꽤 많은 지출과 투자를 하고 있다. 한 기업의 임원이기에 적지 않은 수준의 수입이 있지만 엄마와 난 은행원 출신답게 오랜 시간 꼼꼼히 따져 본 후 지갑을 연다. (너희들이 언젠가 이 지출의 규모를 알고, 너희들이 결코 알아서 크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해하길 바란다.)
그마저도 부부간 합의에 이르렀으나 구매의 결정과 마음을 접게 되는 경우도 있다. 막상 사려하는데 마음이 불편해질 때가 있기 때문이다. 내키지 않는 거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처음의 생각과는 달라진다. 그땐 생각을 하게 된다.
애초에 이게 정말 우리의 필요로 구입을 고민하게 된 것인지, 아니면 주위의 시선과 환경에 의함이었는지. 혹은 필요를 의도적으로 생산하여 작위적인 의미를 부여하게 된 것은 아닌지.
너희들이 종종 '아빠, 왜 우리는 차가 없어?'라고 할 때마다 미안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여행 갈 때마다 할아버지 차를 빌려 쓰고 가져다 두고를 반복하며 십 년이 흘렀다. 솔직히 말하자면, 집과 다르게 차는 나의 관심의 범주에 속하는 물건은 아니었고 지금도 그렇다. 굳이 산다면 오래 탈 수 있는 차를 구입하겠지만, 아빠는 여전히 걷는 것이 좋고 당장 차가 없어서 불편한 것은 매주 어딘가에 외출하는 계획을 보다 적극적으로 실천할 수 없다는 정도이다. 쉽게 말해 우리의 패턴상 차가 반드시 필요한 물건은 아니라는 것이다.
너희 엄마도(사실, 속 마음은 잘 모르겠다) 이에 대해 적극적인 구매 주장을 하고 있지 않기에 어쩌면 우리 식구는 한동안 차 없이도 무난히 살아가겠구나 싶기도 하다. 물론 이런 상황이 그렇게 오래갈 것 같지는 않다. 적어도 3-5년 안에는 우리 가족에게도 효율적인 이동수단이 필요할 것이라고 예상되기 때문이다.
관심 있는 물건들을 보게 되면 마음이 혹한다. 더불어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에도 공감하는 바이고.
따라서 애초에 관심의 범위를 제한적으로 두는 것도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주위에서 뭐라 말해도 내가 그 대상에 대해서 잘 모른다면, 내적 외적 반응속도는 둔해질 수밖에 없다. 경우에 따라 내가 마음에 둔 무엇일 경우, 나에게 충만한 기분을 느끼게 해 줄 것인지도 고민해 보면 좋겠다. 그래서 아빠는 그런 고민 끝에 꽤나 저렴하고 합리적인 소비를 했다고 하더라도, 구매를 취소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심미성, 실용성, 효율성 등 모든 영역에서 꽤나 유익하고 필요한 소비였으나 후에 가치 있는 소비가 아니었음을 깨닫는 것이다. 이렇듯 나름 고민의 과정을 거쳐 구매한 것인데, 마음이 불편하다면 ‘가치 있는 소비’라고 보기 어렵다.
8만 원 남짓하는 클래식한 다이버 워치를 두 달간 고민하고 어렵사리 구매한 뒤, 스스로를 칭찬했다. 나의 마음이 풍요로워졌으므로.
물리적 공간을 채우는 소비가 아닌, 마음을 풍족케 하는 소비를 할 줄 아는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하길 바란다. 때로는 자신이 누리고 있는 것 그 자체로 감사하며 소비행위 대신 생산활동에 집중하는 것이 너희들을 더욱 빛나게 할 것이다.
그런 삶 가운데, 소비를 통해 얻는 것은 늘 너희들의 풍족한 마음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