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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될 때

1미터만 더 나아가는 것에 대해서

by Johnstory Mar 25.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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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안의 습관은 행동의 빈도와 강도를 스스로 낮추는 행위라는 것을 시간이 지나면서 깨닫게 되었다.



목표가 분명할수록 타이밍을 잘못 맞추는 스스로에 대한 위로 혹은 위안은 지속성을 제한하는 브레이크가 되기도 한다. 시간이 흐르고 그때 자신이 멈추게 된 시점이, 목표한 바를 성취하기 대략 1미터 전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떨까. '최선을 다했다'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던 말은 한계선까지 전력질주 해서 달려 본 자신에 대한 진심이었을까? 아니면 고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목표지점을 앞두고 스스로 포기해 버린 것일까.



 이 정도면 됐다는 말을 속으로 쉴 새 없이 되뇌던 때는, 그만하겠다는 선언을 누군가 앞에서 하기 어려운 상황이지 않았을까 생각도 하게 된다. 왜 그런 것일까. 누가 봐도 '아 쟤는 그쯤해도 되겠다'라고 인정을 할 수 있는데, 실은 그 시기를 잘 견뎌낸다면 1미터 뒤에 있을 결과물도 예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심리적인 이유이든 육체적인 이유이든 더 나아가는 것이 도저히 힘들다고 느껴질 때 우리는 포기를 하게 된다. 하지만 그 시점이 스스로 예상한 시점보다 빨리 오게 되었을 때는 너희들 스스로가 냉정하게 되짚어 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더 중요한 점은 '이 정도면 됐어'의 습관화일 것이다. 굳이 그릿(GRIT) 얘기하지 않아도 내가 진정으로 이루고 싶어 하는 일들에 대해선 설명하기 어려운 초자연적인 힘이 발휘되기도 한다. 실제로 고통스러운 상황을 겪고 있지만, 그것보다 이뤄내야 하는 목표에 무게중심이 쏠려있는 경우 통증을 못 느끼거나 별거 아닌 것으로 여기고 계속해서 나아가게 된다.



포기가 빨라지는 때는, 그러고 보면 지금하고 일이 내가 애초에 하고자 했던 것이 아닌, 타인 혹은 환경의 영향으로 당위성과 의무감을 떠안고 책임감을 느끼게 된 상황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말로 내가 만나고 싶은 이성이 눈앞에 있다고 한다면, 지금은 그 상대와 아무런 관계도 아니지만 앞으로 이어나가고 싶은 인연의 그림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상황이 지속된다고 한다면, 기다림의 정신적 피로가 크다고 하더라도 버텨볼 수 있지 않을까.



 나 자신의 가치보다 상황과 환경에 나를 끼워 맞추려는 습성은, 편안함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능에 가까운 당연한 행동이다. 그런데 이런 패턴이 반복될수록 내가 이뤄낼 수 있는 잠재적 역량을 하회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을 수 있다. 어떤 면에서는 그 정도 역시도 성취의 일부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아쉬운 생각은 지우기 어려울 것이다.

자기 만족감이 들 때,  한발 더 나아갈 수 있는 용기와 지속력이 있다면 일단 더 가보도록 하자. 많은 경우 문 뒤에 가려진 성공을 가늠하지 못한 채 체념하기도 한다. 그럴 때라는 생각이 일렁일수록 생각 없이, 그저 하던 대로, 딱 한 발만 내디뎌보자. 단 1미터만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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