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배동 우면산 추억의 소환
삶은 계란을 먹을 때마다 떠오르는 기분 좋은 기억이 있습니다. 20년을 살았던 방배3동 인근 우면산에 당시(90년대 초) 삶은 계란을 팔던 곳이 산 중턱에 있었습니다. 매주 혹은 시간이 날 때마다 등산(사실 우면산은 등산을 하는 정도는 아니고 가벼운 하이킹의 수준이었음)을 좋아하셨는데, 늘 저를 데리고 다니셨어요. 그런 아버지에 비해 전 움직임을 꺼렸던 정적인 소년이었습니다.
그런 저의 마음을 흔들어놓는 아버지의 한 마디, ’ 삶은 계란 먹으러 우면산 가자 ‘
포장마차와 같은 외관에 덩그러니 홀로 있던 그곳에는, 지금 돌이켜볼 때 옛 추억을 생각나게 하는 일자 모양의 나무 의자가 비치되어 있었고 믹스커피를 팔았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와 추운 초겨울 그곳에 들어앉아 삶은 계란을 까먹던 기억은 제게 큰 의미가 된 모양입니다.
퇴근 후 막걸리 한잔하고 온 남편을 위해 계란을 삶아 둔 아내가, 이제 당시 제 옆자리에서 함께 계란을 먹던 아버지와의 물리적 거리보다 가까운 존재가 되었지만 쩍쩍 말끔하게 갈라지는 삶은 계란의 껍질을 바라보며 당시의 시간을 추억해 봅니다.
우면산 초입 백숙가게에 대한 추억도 떠오릅니다. 주말이면 아버지 친구 가족분들과 함께 만나 백숙을 먹기도 했습니다. 당시엔 백숙이 왜 그렇게 싫었던 건지 먹는 둥 마는 둥. 그래도 또래였던 아이들과 근처에서 개구리를 잡고 도마뱀도 잡으며 보내던 시간은 늘 즐거웠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백숙가게가 없어졌다는 소식에 무척이나 아쉬웠어요.
우면산을 돌아 예술의 전당 쪽으로 내려오면 매주 일요일 아침 허여멀건 순두부를 파는 트럭이 있었습니다. 남아있는 기억으로 운영시간이 오전 9시였던가 싶어요. 이걸 먹기 위해 주말 아침엔 빨리 일어나서 우면산으로 향해야 했습니다. 아버지와 함께요. 육개장사발면 그릇보다 큰 플라스틱 그릇에 넘치듯 담겼던 순두부 그리고 감칠맛 돌게 하던 간장양념. 지금도 그 맛이 혀끝에 남아있습니다. 아버지와 트럭 주변에 서서 후후 불어가며 먹던 그날의 순두부를, 이제 초등학생이 된 아들에게는 알려줄 수 없단 사실이 무척이나 아쉽습니다. 갑자기 궁금해졌는데, 그때 아버지는 저를 데리고 일요일 아침 8시에 순두부를 드시면서 어떤 생각들을 하셨을까요
코 끝이 찡해지는 아침입니다.
떠올릴 수 있는 옛 추억이 있음에, 그 덕에 더 감사한 오늘의 아침을 맞이할 수 있음에, 이번 주말엔 좀 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다짐을 할 수 있음에 또 한 번 감사한 마음으로 출근길 지하철에 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