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위를 수놓았던 이직의 흔적들
퇴사한 지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어제와 오늘의 마음이 다르다.
가을과 겨울의 경계가 일찌감치 모호해졌고 11월의 폭설을 보면서 퇴사와 이직의 과정 또한 지금 자연의 모습들과 크게 다르지 않구나 싶었다.
11월에 이런 폭설을 경험했던 기억이 없다. 그러다 보니 지자체에서도 이 기간에 월동준비를 사전에 하는 것이 어려웠을 수도 있는데, 아쉬움이 컸던 것도 사실이다. 제설차와 염화칼슘을 보기 어려웠던 상황에서 출퇴근의 고통은 가중되었다. 많은 양의 눈이 녹아 살얼음이 띄워진 구덩이들을 볼 때마다 등산화를 신고 출근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이럴 땐 정장만 입고 다니던 은행원 시절보다 편리함과 실용성을 강조하는 기업을 선택한 것이 다행스럽기도 했었고. 별 것 아닌 이런 것들에 감사하다는 생각과 함께 곧 퇴사를 앞두고 있다는 생각에 이내 어두워지는 표정을 감지할 수 있었다.
퇴사와 이직의 마음은 다르다. 지금 퇴사하는 이곳도 언젠가 이직하는 처음의 마음으로 가득했던 곳인데 불과 2년 후 떠나는 마음은 전과 같지 않다. 같을 수가 없다. 어떤 이유든 이별을 선택한 두 당사자는, 퇴사라는 선택이 불가피했다 하더라도 서로 닿을 수 없는 몇 가지 이유들을 확인했을 것이니 그 과정을 겪은 당사자들이 이전과 같은 마음이길 기대하는 것은 과한 기대이다. 그렇다고 마무리를 모호하게 할 필요는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함께 일을 했던 이들은 나에 대한 평판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존재이기에 시작보다 끝맺음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 가능하다면 끝난 이후로도 매듭지어지지 못했던 일들이 있다면 상호 간에 동의할 수 있는 선까지 정리를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간이 지난 후에라도 내가 최선을 다하지 못했던 마무리로 인해 두고두고 마음이 불편한 상황을 경험하기도 한다.
같은 공간에서 다른 시간의 감정을 경험하는 아이러니는 우리의 퇴사와 이직 사이에서 누구나 경험하게 되는 일이다. 이때의 심리적 위축과 혼란은, 조직에 대한 애증의 크기와 비례한다. 그만큼 치열했고 진심이었던 직장 생활을 보낸 스스로를 인정하고 조금은 떳떳하게 그곳에서의 마지막을 잘 정리할 수 있길. 새롭게 쌓이는 눈은 지난 시간들의 상처를 덮어주고, 가끔씩 흩날리는 지난 기억들이 우리 위에 내려앉아 내가 보낸 이 공간에서의 시간들을 아름답게 만들어 줄 테니 조금만 더 감사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