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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hnstory Dec 08. 2024

10년을 함께할 수 있는 것

누구와, 무엇과 나의 시간과 공간을 함께해야 하는가

묵은 책과 물건들을 정리 중이다.



조건은 하나, 앞으로 10년을 함께 하고 싶은, 함께 할 수 있는, 함께 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이다. 미니멀리즘에서 출발한 나의 생각은 '내일'과 연결되어 있었고 이는 단순히 '지금 내게 행복을 주는 것'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오늘의 의미와 내일의 가치를 잇는 작업인 것이다. 지나 온 시간 동안의 추억들이 내려앉은 물건들을 정리하는 것은 쉽지 않다. 곤도 마리에가 말한 '설레지 않으면' 정리의 대상에 포함시키는 것도 쉽지는 않다. 형광펜, 볼펜, 메모 등 많은 흔적이 남아있는 책들을 훑어보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손웅정 님의 <<나는 읽고 쓰고 버린다>>를 보고 흉내라고 내보고 싶었는데, 쉽지 않았다. 한동안 머릿속에만 정리에 대한 생각이 맴돌다, 퇴사를 기점으로 많은 것들을 내려놓기로 마음먹고 아내의 도움을 받아 하나둘 정리를 시작하는 데까지 3개월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12월이 가기 전에 이 모든 정리들을 마무리하려 하는데, 이때 책에 남겨둔 나의 생각과 메모들은 따로 기록하여 블로그를 통해 공유하려 한다. 한창 맥시멀리스트가 되려는 두 아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깨달음을 주는 생각들이 잘 전달되었으면 좋겠다. 무엇이든 10년을 편하게 값지게 의미 있게 함께할 수 있는 무언가가 나의 시간과 공간을 채우는 결정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십 년이 지나도 지금 갖고 있는 이 책이, 물건이 계속해서 읽히고 쓰임을 다할 수 있을 만큼 나에게 큰 의미를 가지는 대상인 건지는 몇 가지 기준에 의해 정리해 볼 수 있다.



1. 필요한 것인가?

2. 소유하길 원하는 것인가?

3. 소유함으로 내게 편의성, 실익, 안정감을 주는 것인가?

4. 10년 전에도 많이 읽혔고, 현재에도 배움이 있고, 10년 후에도 변하지 않을 가치에 대해 배움을 줄 수 있는가?

5. 최근 1년 내에 얼마나 관심 있게 본 주제인가?

6. 최근 6개월 내에 얼마나 자주 함께했던 물건인가?

7. 해당 책(또는 물건)을 처분하여 생기는 공간의 이점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이득이 큰 것인가?



필요한 것은 갖고 있으면 된다. 공간 활용을 위해 처분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면 이미 그것은 필요의 관점에 있는 대상은 아닐 것이다. 없다고 생각했을 때 상당한 불편이 따르거나 일상의 무리 없는 진행이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경우가 '필요한 것'에 속한다. 나의 경우 해당되는 예는 이런 것이다. 맥북과 아이패드를 다 갖고 있는데, 아이패드를 처분한다고 했을 때 어떤 불편함이 따르는가? 사실 없다. 업무로 필요했던 시기가 5년 정도 있긴 했으나, 현재는 아니다. 이런 경우 정리대상에 포함된다.

또한 글을 쓰는데 듀얼 모니터가 반드시 필요한가? 그렇지 않다. 물론 있으면 디스플레이의 확장으로 인해 여러 작업들을 동시에 할 수 있겠으나 나의 몰입을 방해하는 요인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 오히려 한 가지 작업을 할 때는 하나에만 몰입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고 이는 생산성과 연결된다. 현재 모니터로 사용 중인 13년 전 구입한 일체형 PC는 처분이 가능하다는 결론이다.

한 겨울 롱패딩도 있다. 최근 한 블로그 작가님의 미니멀리즘과 관련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8벌의 의류만 갖고 계시다는. 한 겨울에도 코트를 입으시는데 갖고 있는 여러 옷을 껴입는 방법을 택하셨다.

지난날들을 생각해 보니, 조금씩 추위를 타는 나이 탓에 한 겨울에도 쪄 죽을 수 있는 롱패딩을 구입한 이후로 만족도가 높아지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게 없으면 난 나가지도 못할 상황이었나? 있는 옷들을 껴입어서 해결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보면... 그렇다. 그게 가능했다. 그럼에도 소비했고 소유했다. 그리고 이제는 소유를 내려놓으려 하고 있다.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이 되려 삶의 질을 높이기도 한다.



걸어서 한 시간 정도의 거리는 양재천을 걷는다거나, 노트북 없이 4B연필 한 자루와 노트패드 하나만 들고 도서관에서 책과 생각들을 정리한다거나, 헬스장에서 기구를 이용한 웨이트 트레이닝 대신 청계산 매봉을 다녀온다거나. 아날로그에 가까운 삶일 수도 있다. 최근 달리면서 잘 활용했던 GPS 워치도 처분하겠다 마음먹고 카시오 f91w 모델을 사용하고 있는데 세상 가볍고 편할 수가 없다. 무엇보다 시도 때도 없이 울리던 워치의 진동으로 집중이 어렵다거나 몰입이 깨지는 경험을 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방해금지모드로 시계만 확인하게끔 설정할 수도 있다. 한 단계 더 들어가 보자면, 심박수부터 나의 운동패턴 등 여러 가지를 체크하는데, 이를 보면서 불필요한 걱정들이 생겼다. 하루라도 운동을 쉬게 되면 하락하는 피트니스 레벨 그래프를 보며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다. 물론 나의 성장에 도움을 주는 적정 수준의 스트레스는 긍정적인 자극이 되기도 하지만, 그러한 동기부여를 기계를 통해 받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점차 일상이 단순해짐을 느낀다.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심플하게 그렇게 나는 살아가고 싶다. 10년을 함께할 수 있는 사람과 책과 물건들과 가볍고 간소하고 가끔은 일상에서의 불편을 감수하는 그런 인생을 살아가고 싶다. 그리고 생겨나는 여유와 공간의 틈을, 사람과 사회에 기여하는 일로 채워가려 한다. 채워가는 것이든 비워내는 것이든 자연스러워야 한다. 편안해야 하고 나의 것이라는 직감도 따라와야 한다. 그래야 오래간다. 보여주기 위해 애썼던 지난 시간들을 인정하고 이제 내가 중심이 되는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



방 안에서, 집 안에서 내 시선이 머무르는 그곳에 편안함이 깃들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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