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으로 되고 싶었다. 그렇게 살고 싶었고, 그러면 지금의 모든 근심걱정들이 사라질 것만 같았다.
이 또한 마케팅과 브랜딩의 기술에 소비자가 되어버린 나 스스로를 머지않아 깨닫게 되었고 유의미한 학습이 되었다. 퇴사한 이후 며칠 동안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새벽에 일어나 두 시간가량은 온전히 나의 것이다. 시간은 러닝, 한 시간은 독서 혹은 글쓰기. 이후에는 아이들이 학교 가기 전까지 설거지를 하고 등교 이후엔 청소기를 돌린다. 이사 온 이후로 청소기를 돌려야 할 면적이 늘어난 데에 대한 뿌듯함과 감사함이 있다.
오전 09시 30분부터 나의 시간이 돌아온다.
다시 책을 읽고 정리하고 글을 쓴다. 필요한 책이 있을 때는 근처 도서관 두 군데에 들러 대여를 하기도 하고, 그 자리에서 두어 시간 바로 읽고 오기도 한다. 사업소득 내지는 기타 소득이 전무한 상태이지만, 이런 생활을 유지하며 매달 내가 받던 급여 이상을 벌게 된다면 매우 높은 삶의 질이 유지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가슴이 설레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은 좀 다르다. 대체로 교육 플랫폼 혹은 자체 홈페이지에서 디지털 노마드와 관련하여 판매되는 강의나 PDF Book은 저자의 경험을 판다. 무슨 얘기인고하니 그 안에는 '시간'의 요소가 매우 많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비자는 콘텐츠와 현상만을 본다. '하루 30분만 투자', '월 천만 원 소득'과 같은 표현에 꽂힌다. 물론 현재 강사 혹은 작가의 상황이 그에 부합된다 하더라도, 이제 시작하는 이들의 입장에선 많은 노력과 시간의 비용을 들여야 한다. 물론 그러한 강의와 책을 구입하는 비용과 더불어서 말이다.
단기간에 수익을 낸 수강생들의 후기와 평점이 중요하다 보니 이를 조건으로 프로모션 혹은 이벤트가 걸린다. 현재 얼마에 판매되고 있는 '~공략집', '~비법노트'를 준다고 하니 이런 정보들을 꼼꼼히 살펴보던 잠재고객들도 지갑을 연다. 왜? 현재 제공되는 가격은 곧 오를 예정이니까.
관심이 있는 분야가 있어서 최근 강의 하나와 PDF Book 두 권을 결제했고 아주 열심히 보고 따라 하는 중이다. 워크북으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고 제작에도 매우 공을 들였으며 세심하게 배려한 작가의 애티튜드가 곳곳에서 느껴진다. 아쉬운 점은 누구든 이대로만 따라 하면 모두 월천, 월이천을 벌 수 있는 디지털노마드의 삶을 살 수 있다고 착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학교 다닐 때도 그랬다. 노량진의 어느 학원의 수학 단과 강사 누구누구의 수업을 들으면 고득점을 올릴 수 있고, 서초동의 모 사탐학원에서 새벽까지 이어지는 열강을 어렵사리 들어야 만점에 가까워진다고 했다. 그 자체가 거짓이라 생각하진 않지만 출발점이 다르고 환경과 수준이 다른 학생들의 미래 성과가 일반화될 수는 없는 것이기에 운이 따른 소수를 제외하곤 모두 실패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디지털노마드는 어떠한가
몇 가지 필요한 기술의 습득을 위해 강의를 듣고 책을 보면서도 난 한 가지를 생각했다.
단순히 돈을 버는 방법 중 한 가지로 디지털노마드가 된다고 생각하면 절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투입할 수밖에 없고, SNS애서 보이는 여유로운 생활을 즐기는 모습을 상상했다면 이내 포기하는 이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이다. 이 지점을 잘 넘어가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한데, 하나는 내가 어떤 가치를 전달하는 브랜드가 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콘셉트와 최소 1년은 꾸준히 집중하고 몰입해서 결과물을 매일 쉬지 않고 만들어내려는 노력이다. 그러면 2년 차부터는 뭔가 달라짐이 있을 수 있다.
노트북 하나로 전 세계를 누비며 일을 하는 모습을 동경하는 이들이 많을 수 있다. 더군다나 취업이 어려운 상황에 있는 2030 세대들이 바라보게 되는 이런 여유 있는 모습은 동경을 넘어 질투를 유발하며 상대적 박탈감마저 느끼게 한다. 여러 형태의 디지털노마드가 있을 수 있다. 최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분야를 제외하고, 한 영역에서 오랜 시간 일을 하며 터득하고 배운 기술과 교훈으로 누군가의 삶과 특정한 조직의 성장에 기여하는 역할을 하는 컨설턴트로 디지털노매드 생활을 할 수도 있다. 또한 작가가 되어 글을 쓰고 글을 팔고 또 강의를 팔 수도 있다. 역시 중요한 것은 퍼스널 브랜딩이다. 나는 무엇을 하는 사람이고, 어떤 가치를 전달하고 싶으며, 어떤 비전과 미션을 세상에 드러낼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 이후에 블로그를 하든 1인 사업을 하든 해야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나아갈 동력이 생긴다.
성공한 이들의 스토리를 듣고 벤치마킹 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들이 했던 실패를 비껴갈 수 있고 그들의 성공 방정식에 나의 색깔을 입힐 수도 있다. 이러한 스토리가 도움이 되는 이유는 분명하다. 서사가 있기 때문이다. 어떤 어려움이 있었고, 어떤 환경에서 어떤 시도가 있었는지, 그 과정에서의 좌절은 또 무엇이었는지가 수백 페이지에 걸쳐 기술되어 있다.
그런데 최근의 비법노트와 같은 기술적인 내용을 다룬 책에서는 그런 내용들이 전무하거나 매우 빈약하다. 구체적으로 지금의 단계에 이르기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 동안, 단계적으로 어떤 시도를 했고 성취를 했으며 실패를 경험했는지에 대한 구체적 예시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리고 결괏값만이 부각된 홍보로 판매가 이루어지니 이에 대한 불만들이 쏟아지는 것이다. 소비자도 이런 생각들을 스스로 해야 하고, 판매자 입장에서는 전후의 내용에 서사가 담겨 있다면 보다 큰 신뢰와 인지도를 얻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본다.
거품은 언젠가 빠지게 되고 진실은 크게 부각될 수밖에 없다.
단기간에 원하는 소득을 만들어냈다고 해도 중요한 것은 그것을 지속시키는 것이다. 건강하게 오래가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 원하는 길, 그리고 그 길 위에 서있는 자신의 모습에 대한 진중한 고찰이 필요하다. 너도나도 디지털노마드를 외칠 때 길고 오래가는 브랜딩에 좀 더 시간을 들여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