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의성 없는 성실함의 늪
회사에선 그랬다. 열심히 말고 잘하라고.
적게 일하고 높은 성과를 내는 고효율 인재가 되라는 얘긴데, 이게 가능한 상태가 되려면 시간이라는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일머리가 있고 능력이 출중한 직원들 가운데 이 정도의 역량을 가진 이들이 있긴 하나, 그들조차 열심히 일하는 것을 내려놓지 못한다. 대체 '열심히'의 기준이 무엇인가? 일평균 12~14시간을 일하는 것을 말하는 것인지 한 시간 이른 출근과 늦은 퇴근이면 족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결정적으로 어느 조직이든 성과 좋은 직원들을 불러서 '당신은 성과가 좋으니 오늘부터 2시간 일찍 퇴근하고 재충전하세요'라고 얘기하지 않는다. 되려 이 성과가 찰나의 영광으로 끝나게 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일거리가 몰리기 때문이다.
잘하는 사람은 속도가 빠르다. 그러면 무언가를 더 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중요한 일과 그렇지 못한 일들이 역량 있는 직원에게 몰리게 되고 이때부터 비효율이 나타난다. 성과가 떨어지는 이유에 대해 해명을 해야 하기도 하고, 불편한 시선들이 그 직원의 등 뒤로 꽂힌다. 이러다 보니 해야 하는 일의 적정한 수준을 본능적으로 감지하고 유지하며 적절하게 상황에 맞춘 판단을 하는 능력들이 기가 막히게 향상된다. 그렇게 평균적으로 8~10시간 정도를 직장에서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나의 뇌는 멈춘다. 잠시 열기를 식히고 출구 밖으로 나가 집까지 걷는 그 길 위에서 '이게 지금 맞는 거야?'라는 질문을 수만 번 한다. 그러다 누구든 다 이렇게 산다는 선배의 말이 떠올라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정리하고 잠에 든다. 그리고 내일이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소명이라 여기는 마음을 갖고 있는 이들을 제외하면, 모두 우리는 생존의 방식 중 하나로 직장인이 되는 선택을 했다. 매월 꼬박꼬박(어떤 이는 아닐 수도 있다) 나오는 급여의 중요성을 생각하다 보면 적정 필요소득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개인적인 선호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익숙하지 않은 모든 것들을 일방적으로 수용하고 규칙에 따라야 하는 고용계약서에서 '을'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메커니즘에 순응하지 못하거나 그럴 생각이 없는 이들은 일찌감치 자신의 길을 찾아가기도 하고, 을의 삶에서 배울 수 있는 다양한 기술들을 배우고 '갑'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아쉬운 것은 대부분의 '을'은 대안에 대한 고민과 탐색 이전에 현실에의 수용을 불가피한 것으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무언가의 깨달음이 있을 때 인생의 달력은 이미 저만치 질주하고 있음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리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열심'을 장착한 K-직장인이 되는 것이다.
누군가는 물었다.
그렇게 '을'이라도 더위와 추위를 피할 수 있는 것 아니겠냐고. 굳이 '병'이나 '정'을 자처할 이유가 있느냐고 말이다. 사회적으론 맞는 얘기겠다. 을보다도 못한 처우를 받을 확률이 높을 수 있다.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편적으로 본다면 이성적으로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나의 삶에선 당당한 '갑'이 되는 것이니 무엇이 자신에게 우선하는지는 새벽녘에 일어나 책상에 앉아 곰곰이 생각해 볼 시간을 갖는 것이 좋겠다. 하루 만에 답이 나올 수 있는 간단한 문제가 될 수도 있고, 2-3년을 매일 같이 생각해도 그 어떤 선택을 하지 못하고 같은 자리만 계속해서 맴돌 수도 있다. 그것도 아주 열심히. 가끔은 아주 잘못된 방향으로의 질주 또한 열심히 해내기도 한다. 마음이 아프고 안타깝다.
우리가 개발해 온, 그리고 부여받기도 한 능력을 열심히 발산하며 사는 삶이면 좋겠다.
누군가를 위해, 어떤 조직을 위한 열심보다 나 자신에게 열심인 하루가 성실하게 쌓여가는 인생이길 바란다. 그 어떤 아쉬움 하나 없는 생이 되긴 어렵겠으나, 해보고 싶은 많은 것들을 놓치며 살고 있음을 인지한 순간부터는 조금씩 달라지려는 시도 정도는 해보면 좋겠다. 사소한 준비와 실행의 누적이 아주 작은 성취로 이어지기도 하고, 그것은 작은 눈덩이가 되어 굴러가기 시작한다. 처음엔 힘겹다. 굴러다가 부서지고 또 부서지고 흩어진다. 하지만 이내 아주 작은 힘만 들여도 눈덩이는 쉽게 뭉쳐지고 단단해진다. 그전까지가 힘들다. 대게 그 과정에서 포기가 일어나고 나와는 맞지 않는 길이라는 생각에 불안감으로 뒤덮인다. 그리고 어제의 안락해 보이는 자리로 돌아가고 머지않아 동일한 과정을 반복한다.
가진 실체 없는 걱정과 두려움을 스스로 걷어내지 못한다면 주체성 없는 열심만 반복하는 삶이 나의 전부가 될 수 있다.
무엇이 더 무서운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