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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hnstory Dec 15. 2024

아내가 일을 알아보겠다고 했다

경력단절 10년 차, 서른여덟의 아내의 구직선언

퇴사한 지 10일째.


난 아침 일찍 설거지를 끝내고 두 아이의 밥을 차려주고 청소를 했다. 아내가 자고 있는 침실의 문을 닫았다. 쓰레기를 버리고 커피 두 잔을 사 왔다. 아내는 아이스라테, 나는 따뜻한 카푸치노. 취향도 각각이다. 10년간 아내는 아이스라테를 마신다. 한겨울 추위에도 핫이란 없다. 일곱 살 어린 아내이기에 가능한 것인가 싶기도 하고, 그럼에도 여전히 난 겨울에는 카푸치노다. 변하지 않는 나의 취향도 아내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그렇게 10년째다. 정확히 말하면 내년 1월 중순이면 결혼 10주년이다.

사소한 다툼이 좀 큰 말다툼으로 번진 두어 번을 제외하고 우린 크게 싸운 적이 없었다. 서로 조심하는 것도 있겠고, 우리는 서로가 쓰는 언어가 다르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기에 굳이 부딪히는 상황을 만들려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스파크가 튀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선'을 넘지는 않는다. 서로를 칭찬하고 싶은 부분이다.



그런 아내가 방으로 걸어왔다.

대뜸 일을 알아보겠다고 한다. 퇴사 한 이후 뚜렷한 다음 일정에 대한 언급을 이전처럼 하지 않는 나의 모습에 당연히 불안했을 것이다. 철저한 J의 성향인 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아내는 이 주제에 대해 함구하고 있는 나 때문에 걱정이 컸을 것이다. 의도적으로 숨길 이유도 없고 그럴 수도 없는 주제이다. 다만 확정적인 것이 없는 상황에서 아무 말이나 던지고 '나만 믿어'라고 얘기하는 것은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래서 아무 말 없이 오늘을 살고 있는데, 아내는 아무 말 없이 살 수가 없는 존재였다. 애들 학원비며, 카드값이며, 생활비 등등 돈이 들어갈 일이 많은데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이 하루하루 계속된다고 느꼈을 것이다. 아무렇지 않게 아이들 공부를 가르치고 집안일을 하는 것처럼 보여도 머리가 무거웠을 것이다.



그에 비해 난, 마음이 편했다. (무책임하다 생각지 않기를, 나라고 계획이 없지는 않으니)

이제야 좀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대나무가 자랄 때도 마디가 만들어지는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그 이후 어떤 충격에도 부러지지 않을 강인함을 갖게 되는 것처럼, 나에게도 '마디의 시간'이 필요했다. 단지 쉼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 휴식이면 2주면 족하다. 나는 분명, 나로 살아갈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것을 준비할 일말의 여유 없던 일상을 직접 멈춰 세워야 했고, 빠르게 실행했을 뿐이다. 몇 번의 경험으로 이런 일에 대한 걱정은 이전에 비해 덜하다. 걱정한다고 되는 일도 아니다. 매일 내가 해야 하는 중요한 일들을 꾸준히 해나가면 된다. 감정의 동요가 있을 필요도 없고 누구와 비교할 것도 아니다. 마흔 중반에 아주 조금은 갖춰진 삶에 대한 혜안은 오늘 주어진 1,440분을 의미 있게 사용하는 법으로 나를 이끌고 있다. 그저 지금, 오늘을 나의 생각대로 지극히 충실하게 살아내는 것이다.



그럼에도 아내는 일을 알아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돈이라고 했고.



그러라고 하면 될 일인데, 결혼한 이후 '편하게' 일하지 말고 쉬라고 했던 나의 생각과 말과는 다르게, 집에만 있는 아내는 편하지만은 않았다. 어렵게 들어간 은행을 둘째 아이의 육아휴직이 끝날 때쯤 그만두었다. 4년을 연속으로 육아휴직을 했으니 여러 생각이 들었겠지만 아내는 나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어떤'일이든 하고 싶다고 한다. 교육비며 생활비에 대한 얘길 하지만, 그 끝에 걸려있던 한 마디가 아직 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내가 번 돈으로 무언가를 사보고 싶어. 오빠가 번 돈 말고.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어차피 내가 번 돈 모두 아내의 것인데, 공인인증서고 OTP카드고 모두 아내에게 있고 이메일 비밀번호까지 공유하고 있는 우리 부부가 이렇게 10년을 살아왔는데 <<내가 번 돈>>이라는 소득의 출처가 아내에게 대체 어떤 의미란 말인가.

전부터 아내는 씀씀이가 큰 여자는 아니었다. 아니, 쓰지 않으려 하는 사람이었다. 가끔은 그 정도가 심해 뭐라고 한 적도 있었다. (말하기 민망한 상황들이라 구체적 예시를 들기가 어렵다) 그런데 그런 아내의 모습이, 내가 결혼을 결심하게 된 중요한 이유이기도 했다. 경제관념이 매우 보수적인 여자, 우리의 자산을 살뜰하게 불려줄 수 있는 아내. 누가 싫다고 하겠는가. 더군다나 둘 다 은행원이었으니 그 방면으론 걱정이 없었다.


만삭의 몸을 이끌고 버스를 타서 인근 저축은행에 0.1%의 이율을 더 쳐주는 곳에 돈을 맡겼던 여자다. 놀랍기도 존경스럽기도 했다. 유난이라 생각지 않은 나의 마음은 늘 고마움이었다. 덕분에 지난 10년간 20억에 가까운 자산이 증가했다. 아내 덕분이다. 하지 말자고, 다음 기회를 노려보자고 했던 청약에 말도 안 되게 당첨이 되었던 것도 아내의 생각, 아내의 주장이었다. 돈에 대해선 그것도 단위가 큰돈에 대해선 나보다 대범했다. 그리고 치밀한 계산이 있었다. 4년간 보유했던 이전 회사의 주식도 최근에 전량 매도했는데, 환율의 변동을 특유의 촉으로 기가 막힌 매도 타이밍으로 만들어버렸다. 주당 17불이 넘는 소득이 있었다. 그렇게 소소한 자산증액이 이루어졌다.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적립식 해외 ETF는 내가 운용했다. 다달이 50~100만 원씩 적립하며 운용했던 ETF는 1년간  36% 정도의 수익을 남기고 정리했다. 그리고 미국증시는 하락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때때로 운이 좋았다. 돈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는 시간들을 보내왔다.

그래서 오늘의 아내는, 불안해 보인다. 이전과는 다른 나의 모습이 이질적이기에 그 불안의 크기는 풍선처럼 불어난다. 그리고 이 감정을 언제 끊어낼 수 있을지 알지 못하기에 더더욱 힘들 수 있다.

T의 아내, F의 남편.

그래서 아내는 일을 알아보겠다고 한다. 왜 난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인지 모르겠다. 그렇게라도 가계에 보탬이 되면 감사할 일 아닌가. 그렇다고 아내가 정규직의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파트타임으로 할 수 있는 정도를 찾는 것인데 그것이 걱정을 넘어 반대를 해야 하는 일인가. 물론 아니다.



그리고 난, 나의 불안과 불만의 이유를 찾아냈다.

호기롭게 '편하게' 쉬라고 했던 그때의 내 말을 '편하게' 책임질 수 없는 상황을 만든 이 자체가 싫었던 것이다. 그 안량 한 나의 자존심이 아내의 삶을 제한하고 있었다. 옳고 그름의 잣대가 나의 기준이었다. 반대할 일이 아닌데 난 여전히 불안하고, 나를 더 믿어주지 못하는 것만 같은 아내에게 불만이다. 변화무쌍한 나의 인생을 보조하는 것이 아내의 삶은 아닐 것인데, 난 늘 그저 무한한 신뢰를 보여주길 바랐던 것이다. 내가 얼마를 벌든 아내의 인생에서 스스로 벌이를 하며 하고 싶은, 갖고 싶은 것들을 하는 삶이 의미가 있을 것인데 무슨 권리로 이를 내가 막는단 말인가.




그렇게 아내는 일을 알아보겠다 말하며 내 방을 나갔다. 마음이 복잡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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