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내와 딸

by Johnstory

아들에겐 미안하지만 난 딸 둘을 원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저 내가 그런 가정을 원했을 뿐인데, 지금 생각해 보면 딸 둘을 가진 가정의 평온함이 가장 이상적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나 같은 성향의 아들이 태어나 나와 비슷한 습성을 보이는 것을 내가 온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결혼 후 10년이 지난 지금, 4학년이 된 딸과 벌써 2학년이 되는 아들 그리고 마흔을 바라보는 아내와 산다.

매 순간이 축복이었고 행복이었냐 묻는다면 결코 그럴 수 없었다는 평균에 수렴하는 정도의 답변이 가장 합리적일 것이다. 다행인 건, 내 삶의 기쁨이 그것도 아이들과 아내와 함께하는 시간에서의 기쁨은 늘 그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차고 넘치도록 행복한 순간의 대부분은 가족이었다. 그리고, 가장 슬프고 괴로운 순간의 중심에도 가족이 있었다. 늘 웃을 수만은 없는 것이 이 생에서 인정해야 할 삶의 이치이겠지만 '슬프고도 아름다운' 시절에 주인공은 늘 타인이 아닌 나의 가족이었다.




딸은 아내를 닮았다.


생긴 것도 모자라 무뚝뚝한 성격도 닮아버렸다. 표현에 인색한 애교 없는 아내의 미니미다.

그것이 지금 나의 행복에 영향을 주느냐 묻는다면, 덤덤하게 그것은 아니라고 말하긴 어렵겠다. 남편들이 갖고 있는 환상 속의 어느 한 장면의 핵심은 결국 '아주 살갑고 따뜻하며 애교 넘치는' 아내일 수 있으니 말이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턴가 나에겐 광고 속에서나 있을 법한 이런 장면보다 지극히 평범하고 고요한 주말 아침 같은 풍경이, 내가 살면서 경험하게 될 아내와 딸과의 시간이겠다는 예상을 하게 되었다. 물론 아내의 이런 특정 성향으로 부딪혔던 적은 없다. '네가 이런 사람이라서'는 우리 부부의 다툼의 원인이 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나를 이렇게 대해달라,는 얘길 아내 또한 한 적은 없다. 물론 속은 알 길이 없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도 삼켰을 그녀이기 때문에.



딸은 아빠를 좋아한다.


그런 아이에게서 아내가 보인다. 보이는 것에 큰 관심이 없는 딸아이는 스스로 좋아하는 것, 해야 하는 것에 쉽게 몰입한다. 그리고 주변의 상황들에 대한 관심도는 현저히 낮다. 이런 것 좀 잘 챙겨라,는 잔소리는 매일의 일상이다. 11살이면 외모에도 신경을 쓰고 이런저런 것들에 예민해질 시기인데, 딸이 느린 건지 애초에 무던한 성격의 아내 유전자의 영향인 것인지 아직은 알 길이 없다. 물론 그런 성향의 딸에 대한 좋은 점들이 많이 보이긴 하나, 언젠가 나의 품을 떠나 한 가정의 아내가 된다고 했을 때 누군가는 지금의 나와 비슷한 생각들을 할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아빠를 찾는 딸의 패턴을 매우 일관적이다. 엄마보다 아빠를 찾고 이런 성격은, 둘째가 태어난 후 아내가 조리원에 있는 2주의 시간 동안 온전히 아빠와 생활한 경험에 근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당시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던 딸은 심리적으로 불안해했다. 당시 찍었던 사진들을 봐도 딸아이의 표정은 어둡다. 그도 그럴 것이 엄마와 아빠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가 그것이 1/2로 쪼개지는 상황을, 정확히는 알지 못해도 본능적으로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아빠에 대한 집착이 심해졌다. 물론 좋은 의미로서의 집착이다. 나로서는 되려 좋았다. 언제 딸아이와 붙어서 잠을 자고 안고 키득대며 손가락 발가락을 조물조물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단 말인가. 11살 된 딸아이는 아직 나와 함께 잔다. 엄마가 아닌 아빠와.




그 얘긴 다시 말해, 아내와 부대끼는 밤이 줄었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서로에 대한 감정이 불꽃이 이는 사랑에서 전 인류 공동체적인 포용으로 전환되어 가게끔 만들었다. 그것이 싫으냐 묻는다면, 꼭 그런 것은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애정하는 마음이 의리로 굳어가고 안정적인 파트너십으로 정착하는 것에 1도 불만이 없다. 오히려 난 결혼 초보다 지금의 우리가 '부부답다'라고 생각한다. 각자의 영역이 있고 그 색채와 맛이 명확하지만 함께 있을 때 설명할 수 없는 시너지가 나는 관계, 짬탕면 같은 거다. 우리 둘의 삶은, 10년 전에 세웠던 알차고 체계적인 계획에서 많이 벗어났다. 평범한 은행원 부부로 살 수 있었던 무난한 옵션을 일찌감치 버렸다. 덕분에 아내의 맘고생은 멈춘 적이 없었을 것이다. 그나마 무던한 성격의 아내는 나를 타박한 적이 없다. 한두 번씩 단전에서 올라오는 잔소리조차도 조심스럽게 던졌다. 어차피 잘되게 되어 있는데 뭘 걱정해,라는 말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나의 레퍼토리다. 그런데 그 말이 씨가 되었다. 그리고 그 씨에 믿음이라는 거름을 준 것은 아내였다. 기회를 잡아낸 것도 아내였다. 아내의 충고를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 살고 있는 이곳에 청약이 당첨되어 분양을 받은 것도, 커리어의 전환으로 퀀텀점프를 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아내의 의견이었다. 난 반대의 의견을 갖고 있었다. 그때 생각했다. 맘 편히 아내의 결정을 존중하고, 난 행동에만 초점을 맞추자고 말이다.



딸이 아내를 닮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조금씩 커져간다. 중요한 것에 집중하고 사소한 것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 아내이기에 내 인생이 바뀌고 있다. 작년 말부터 큰 맘먹고 실천하고 있는 비워내는 작업, 미니멀리즘을 통해 난 매일 나에게 더 비중을 둔 생각들을 하게 되었고 내가 생각하는 것이다 더 큰 가치가 있는 존재로서의 나를 발견하고 있다. 마음이 가벼워지고 있고 불요한 감정들을 덜어내고 있다. 감정의 동요가 확연히 줄어들고 잘 내려놓는 지혜를 어렵지만 터득해 가는 중이다. 이런 아내와 그런 아내를 닮은 딸과 인생을 함께하는 확률을 어디에 비유할 수 있을까. 그저 행운이다.





*언젠가 아들이 읽으면 서운해 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조만간 아들에 대한 얘기도 잘 풀어내야겠다. 부모로서 자식에 대한 의무감을 갖는 것 자체가 행복임을 느낀다.





keyword
이전 18화아내는 도서관에서 책을 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