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시절을 지나왔음을 기억한다.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던 봄의 시간은
내게도 있었다.
한 사람의 마음에 롤러코스터를 탄 듯
천국과 지옥을 오가고
친구들과의 얕은 우정을 의리로 포장하여
거리를 겁 없이 활보하던
그런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가족의 존재보다
또래 아이들의 존재가 내게
더 큰 의미가 되던 시절이었다.
상처가 되는 말 한마디와
마음을 얻기 위해 고심하던 말 한마디의
무게가 같았던 그 시절,
집보다 바깥의 생활이 편하고 익숙했던 그 시절.
노래의 멜로디보다 가사를 살펴보고
그 주인공이 되어보기도 했다.
수천번 돌려 듣던 테이프가 늘어지면
라디오에서 그 노래가 나오길 기다리다
녹음버튼을 눌렀다.
혹시라도 잘못 맞춘 타이밍에 섞여 들어간
DJ의 목소리에 짜증을 내고 한숨을 쉬던
그런 밤도 있었다.
나이가 스물이 되었으니 첫 알바를 마치고 받은
얼마 되지 않은 월급으로
묵직하게 느껴지던 14K 금목걸이를 샀다.
그 정도의 액세서리 정도는
목에 걸쳐줘야 마음이 편했다.
그 시간과 돈이 아까운 줄 모르고
나의 내면과 마음이 아닌,
형식과 외면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았다.
무용했던 그 시절의
볼품없는 행동들의 무가치를,
그때는 알지 못했다.
나의 사십 대와 오십 대가
상상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서른이 되면 마치
세상의 모든 이치와
삶의 희로애락을 깨달은
무르익은 존재가 될 것 같다는
섣부른 착각과 두려움,
그리고 막연한 설렘만을 갖고 살았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생각은
나만 하는 것이 아니니
당연하다고 여겼다.
늦은 새벽,
술에 취해 귀가하는 나를 혼내는
부모님의 반복된 잔소리가 싫었다.
내가 받는 용돈과 학비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보통에서 멀어진 여유조차
감사함으로 느끼지 못하던 청춘이었다.
후회가 되어도 다시 살 수 없는 청춘이었다.
후회 없는 삶이 성공한 삶이라는
홍정욱 대표의 말을
저항 없이 받아들이게 되었을 때,
나의 청춘은 과거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이제야 비로소
인생을 제대로 살아볼 수 있을 것 같다는
건방진 생각이 아주 조금씩 드는 데에만
삶의 반 가깝게 온터라
몸이 무겁고 숨이 찬다.
시작보다
끝을 생각해야 할 때가 많아짐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계속 뭔가를 시작하게 되는 난,
못내 지난 시간들이 아쉽다.
만나는 이들을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수가 있고
외부에서 누군가와 함께하는 시간보다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술잔보다 찻잔을 드는 시간이 많아짐에
비로소 나의 청춘을 떠올려본다.
그렇게 살아온 그때의 내가 안타깝고
안쓰러우며 가끔은 대견하다.
이토록 살아냈으니,
그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으니.
나의 가족을 꾸리는 삶을 살아내고 있음은
나의 청춘 덕이었다.
보잘것없고 초라했던 청춘이라 생각한
그 시절 덕분에
나다운 오늘을 살 수 있었다.
청춘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지나온 시간의
'그저 행복하고 아름다웠던 한때'로 받아들이게 된 지금,
아주 조금은
어제보다 더 어른이 된 것 같은
여전히 철들지 않은 흡족함이 있다.
새싹이 돋아나는 푸른 봄은
변함없이 나를 찾아오고
나는 그 계절에
감탄하고 감사하는 나날을 누린다.
청춘이기에 허용되던
가벼운 바람의 봄을 이제는 만질 수 없지만
찬바람이 일던 늦가을과
한파가 몰아치던 겨울을 지나
비로소 이 봄이 내게 왔음에
조용히 웃을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내게 청춘은 무엇이었나 묻는 나에게
이제 나는, 차를 우려내는 기다림을
그 두근거림과 허무함을
가끔은 새로운 기대감을
알게 해 주었던 시간이라 답한다.
그때의 청춘이 오늘의 나를 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