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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아닌, 그저 보통의

by Johnstory

같은 시간, 어김없이 침대에 누워 눈을 감는다.



지나 온 오늘을 거꾸로 되짚어가며 하루를 생각해 보지만 모든 것들이 선명하지는 않다. 무언가를 했으나 했다는 기억조차 없는 일들이 태반. 평범했을 지난 날들, 어제 그리고 오늘 모두 같은 선 위에 약간의 높낮이만 다를 뿐 유독 특별하다고 짚이는 일은 없다. 아주 잘 산 하루는, 나의 지난날 가운데 나의 감정과 마음 그리고 직관에 충실하고 성실하게 살아낸 아주 보통의 시간들의 합이라는 것을 나는 알지 못했기에 평범한 시간들을 분리수거해 왔다. 영양가 없는 과거라 회상하며. 언젠가 마주할 희망적인 순간들만이 이따금씩 나를 조금 더 무모하고 감상적으로 만들 뿐이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 것은 막연한 희망이 아닌, 특별할 것 없다고 여기며 매일을 희미하고도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낸 하루들의 합이었던 것이다. 아무것도 아니어서 기억에도 남아있지 않은 그런 시간들 말이다. 그 시간들의 미세한 근육들이 하루를 버텨내는 지구력이 되어 주었고 그런 하루가 쌓여가며 내 삶에 아주 괜찮은 순간들을 만들어주었다. 무채색의 평범함이 아니었으면 알아채지 못했을 반짝이는 순간들은 더욱 빛났다. 아주 짧게 스쳐 지나가는 순간에도 그 빛은 환하게 내 인생의 어떤 순간을 비춰주고 있었다.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했던, 그저 평범한 나를 말이다.




1년 전 내가 있던 그곳에서의 아쉬움은 내게 더 적합한, 그러니까 좀 더 나다운 모습을 끄집어낼 수 있는 어딘가가 분명 존재할 것이라는 근거 없이 막연한 희망에 의해 씻겨 내려갔다. 나 자신의 문제가 아닌, 나의 성향이나 역량의 문제가 아닌 단지 타이밍의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술 한잔에 일갈을 날리던 베프의 한마디에 '아무것도 아닌, 그저 보통의' 존재였던 내가 보였다. 어느 드라마의 대사처럼, '너 뭐 되냐'던 그 한마디에.




무미건조한 시간들을 나만의 호흡으로 꾸준히 그것도 아주 성실하게 살아내야 아주 가끔 반짝일 수 있는 것이 내가 바라는 그곳이 어디라도 이끌어줄 수 있는 바로 그 역량임을 많은 순간 잊고 살았다. 어쩌다 하늘의 운이 나의 곁을 지켜준 순간에도 감사함보다 나의 그릇이 상대적으로 우월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더 무게를 두었다. 어차피 나는 잘될 놈이라는 자신감은 많은 경우 오만이 되었고 겸손함을 잃어갔다. 그러다 보니 내면을 들여다볼 시간에,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고 있던 것이다. 놀라운 것은 그러한 하루를 살아도 보통의 시간들은 늘 내 인생의 서랍에 켜켜이 쌓여갔다. 언제든 꺼내보고 또 언제든 돌려놓으며 추억하고 힘이 되고 위로가 될 수 있게끔 말이다. 의도한 적 없던 무언가가 나를 지탱하는 힘이 되어준 셈이다.

새벽공기를 마시며 달리고 찬물로 샤워를 하고 명상을 하고 독서를 하며 글을 쓰고, 또 아이들과 시답잖은 장난을 치고 아내와 달달한 케이크 한 조각에 커피를 마시며 보낸 시간들의 합이 영혼의 잔고를 불려주었다. 그만큼 든든하고 믿을만한 구석이 되어 준 보통의 시간들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의 웃는 얼굴이 통창으로 들어오는 일출을 맞아 빛이 났다. 짧은 순간 나의 30년 후를 만났다. 놓치기보다 발견해 내는 삶은 일상의 소중함을 받아들이면서 시작된다. 그저 보통의 시간들의 가치를 영혼과 마음이 늘 기억해 내며 사는 나의 인생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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