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건강에 관심이 있으면서도 막상 건강검진을 하러 가는 것은 복잡한 생각이 든다.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수면 위 내시경을 신청해놓고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워낙 종종 위염을 앓았던 터라 위 내시경을 하기 위하여 기다리며 앉아있는 것이 초조했다. 긴 머리까지 흐트러져서 머리끈이 흘러내렸다. 앞서 받은 검사들로 옷을 갈아입다보니 산발이 되어었었다. 막상 머리끈을 풀고나니 난감해졌다. 손등에 꽂아놓은 주사때문에 손을 올려서 양손으로 머리를 묶는 것이 통증이 느껴졌다. '머리를 묶는 사소한 것도 양손의 여러 근육들이 같이 합을 잘 맞춰줘야 하는구나.' 병원에 앉아있으니 갑자기 내 몸뚱아리의 근육, 신경, 뼈들이 고맙게 느껴진다.
산발한 머리를 계속 모른척 놔두고 다닐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수면 내시경이 끝나고 어지러울 수 있다는 주의까지 받았는데 말이다.혼자 상상을 해본다. 엉킨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반쯤 풀린눈과 무표정한 얼굴로 어질 어질 흔들리며 걸어가는 내 뒷모습은 어떨까? 누군가 보기에는 위태롭지 않을까? 드디어 조용한 동네에 미친년이 나타났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일단 머리를 묶어야 한다.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도움의 손길을 찾았다. 딱 한분이 눈에 들어왔다. 아주머니 한분이 살짝 근심어린 표정으로 앉아계신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저 죄송한데요. 머리 좀 묶어 주실 수 있을까요"
주사기가 꽂힌 손을 들어보이며 뜬금없는 부탁을 했다.
아주머니는 별로 당황하지 않았다. 승낙을 받고 뒤돌아서 다리를 접어 앉았다. 그 분은 별다른 표정없이 나의 머리를 두손으로 잘 모아서 사사삭 묶어 주셨다. 감사의 인사를 하고 앉았던 자리로 돌아왔다. 사소하지만 신기한 경험이었다. 처음보는 사람이 머리를 묶어주는 일이 살면서 가끔이라도 일어나는 일은 아니니까.
평소에 아는 사람에게도 무엇인가를 부탁하기 어려워하는데 오히려 모르는 사람에게 부탁을 해보니 생각보다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날씨가 화창한 날, 마을 버스를 탔다. 그나마 동네에서 번화한 곳이라서 혼자'읍내'라고 부르는 지하철역 주변으로 나왔다. 낮시간이었다.아직 하교시간을 되지 않아서 버스 안은 조용했다. 피아노 재즈가 제법 어울렸다. 기사아저씨의 센스에 감탄하면서 달리는 버스안에서 따뜻한 햇볕과 바람을 맞으면서 창밖구경을 했다. 작은 여행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여행에서 느낄 법한 낯선 공기가 느껴졌다. 출발 할 때의 축축했던 기분이 뽀송하게 말라가고 있었다.
"내리실 거예요? 길가에 빠짝대드릴게요."
고개를 돌려보니 다리가 불편한 아저씨를 아주머니가 부축하면서 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저씨는 유연하게 정거장 앞 가까이 차를 정차시켰다. 아주머니는 연신 "고맙습니다." 인사를 하면서 내리셨다. 살짝 동화같은 순간이었다.
버스 기사님이 나의 하루를 여행으로 만드는 조력자같았다. 아무것도 아니었던 하루를 동화책의 한 장면으로 만드는 비 현실적인 순간이었다. 그저 누군가를 태우고 이동하는 버스일 뿐인데, 버스 승객을 여행자로 만들어주는 멋진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보면 대단하게 빛이나는 직업이 아니어도 내가 그 일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나와 타인에게 선물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런데 아쉽게도 나는 백수다.
따뜻했던 순간 중에는 완벽하게 모르는 타인들에게 찰나의 선물처럼 받은 기억들이 있다.
물론, 차가운 기억도 있다. 강남역 복잡한 골목에서 폭우가 쏟아지는 날, 나의 작은 우산안으로 손잡이를 빼았듯이 들어온 짙은 화장의 여자가 생각 난다. 순간적으로 당황해서 공간을 내어주고 그 사람의 목적지까지 데려다주었다.
매우 얄밉게도 계속 질문을 던져대는 통에 대답을 하느라 그 여자의 목적지까지 나는 이끌리며 걷고 있었다. 물론 여름 장마 폭우가 쏟아지는 골목과 사람이 뒤엉키는 복잡한 거리에서 모질게 우산 밖으로 타인을 내쫒을 수는 없었다. 그 여자는 고맙다고 연락주겠노라고 사라졌고 연락처도 받아가지 않은 그 여자의 헛말질 뒤로 나는 쫄닥 비를 맞고 젖은 빨래가 되어 서있었다. 딱 그대로 세탁기로 들어가야 하는 상태가 되었다. 물컹거리는 신발과 흠뻑 젖은 옷과 일체가 된 나는 갔던 길을 되돌아왔다.
지금 생각해도 씩씩거리게 되는 사건이다. 그래도 또 다른 타인에의해 창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일상이 여행이 되는 순간도 맛보았으니 그 때의 기억도 뽀송하게 말려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