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 한 통, 당근 한 봉지.
오늘의 쿠팡주문 품목이다. 직업병으로 손목터널증후군이 생겼는데 시간이 오래 지나도 완치되지 않는다. 잠잠해졌다가 종종 통증이 재발한다. 동네 슈퍼에서 아무리 마음에 쏙 드는 수박을 발견해도 들고 올 수 없다. 굴려서 데려와야 한다. 아쉽게 못 데려온 수박이 자꾸 생각이 났는데 때마침 쿠팡에서 할인하는 수박이 눈에 들어왔다. 잘 됐다. 사야지. 결제를 해놓고 아침이 되어 문을 열었다. 반갑다. 무서운 배송 속도! 그런데 미안하다. 수박이 이렇게 크고 무거울 거라고 머릿속 저울이 제대로 저울 질을 못했다. 8kg를 주문한 거 같은데 9kg 미만이라는 스티커와 함께 돌덩이가 왔다. '8kg가 넘으면 이렇게 크고 무겁구나...' 박스가 찢어져있다. 너무 무거워서 들다가 찢어진듯한다. 다행히 내장재가 튼튼한 뽁뽁이라서 깨지지 않고 와줬다.
'새벽에 이거 들고 오느라 힘들었겠다. 당근이 든 가방도 따로 들어야 했을 텐데, 너무 무거운 걸 시켰구나.'
얼마 전에 쌀 한 포대를 꼭 안고 계단을 올라오던 아저씨가 생각났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가 그냥 올라오신 것 같았다. 본인 쌀인 줄 알았는데 복도 끝 집 문 앞에 놓여있었다.
택배 오는 날, 나는 종종 간식을 문 앞에 챙겨놓는다. 특히 한여름에는 음료수를 시원하게 유지하기 위해 얼음팩을 같이 내놓는다. '어디 갔지?' 음료수를 담았던 통을 수거하려고 보니 얼음팩도 사라졌다. 더위를 식히기 위해 얼음팩도 필요하겠구나.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하루는 새우깡 4 봉지 묶음을 들고 오다가 자주 오시는 택배기사님과 경비실 앞에서 마주쳤다.
" 아저씨, 제 택배 주세요. 새우깡 하고 바꿀까요?"
"무거워서 못 들고 가요. 새우깡 좋죠. 술안주 생겼네?"
새우깡 한 봉지를 드렸는데 무척이나 즐거워하신다.
하루는 가끔 주문하던 마트의 배송기사님이 문 앞에 도착하셨다. 처음 보는 분이다.
"안녕하세요?"
"안으로 들여놔줄까요?"
"아뇨, 괜찮아요. 제가 옮길게요."
"이건 무거우니까 바로 앞에 놔줄게요."
아저씨의 친절한 마음이 같이 배송되었다.
잠시 같이 웃었다.
택배 기사님과 친하면 좋은 점이 있다. 간혹 급하게 택배를 보낼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아저씨 혹시 저희 집 배달 가는 거 운송장 나온 거 없어요? 그저께 온라인으로 신청했는데..."
"어디로 보내는데요?"
"판교로 보내야 하는데 급한 건데 연락이 없어요."
"그거 나 줘요. 내 옆에 있는 친구가 판교에 가요."
이렇게나 감사할 수가! 택배 발송을 신청해 놓고 깜깜무소식에 답답하던 차였다.
아저씨는 운송장 사진이 붙은 내 택배상자 사진을 문자로 보내주셨다. 일사천리로 처리가 되었다.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였다. "몇 살이지? 젊으니까 밤 좀 새도 되지?" 내가 해야 할 영역 밖의 일을 당연하게 던지던 상사가 있었다. 20대라고 수고로움과 힘듦을 느끼지 못하는 나이가 아니다. 당신이 하기 싫고 힘든 일이면 나도 그렇다.
분통 터지던 날이었다. 나는 좀 다른 어른이 되고 싶었다.
내가 힘들면 남들도 힘들다.
내가 수고로우면 남들도 수고를 느낀다.
그리고 내가 맛있는 것은 대체로 남들도 맛있어한다.
(더구나 열량 높은 간식은 먹을 때마다 살이 찔 것 같은 죄책감이 드니 종종 사람들과 나눠먹는 것이 좋다.)
오늘도 택배가 온다. 여러 곳에서 온다. 아차! 그냥 나왔다. 어제 초코파이 잔뜩 사놨는데 문 앞에 놓고 나올걸...
택배가 왔다는 반가운 문자. 내일은 간식을 챙겨놔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