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오스크와 노인세

by 털찐 냥이

"나 커피 좀 시켜줘요."

동네에 있는 카페 키오스크에서 계산을 마치고 카드와 영수증을 챙겨 들고 돌아서던 참이었다. 키가 작고 귀여운 아주머니가 빤히 쳐다보며 신용카드를 내밀었다. 푹 눌러쓴 모자 탓에 인지를 못하고 있었나 보다. 워낙 좁은 곳이라 당연히 옆에서 주문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서있다고만 생각했다. 이렇게 빤히 쳐다보고 계실 줄이야. 아주머니는 한쪽 팔에 깁스를 하고 계셨다.


"어떤 거 시켜드려요?"

"아메리카노 두 잔"

"따뜻한 거요? 드시고 가세요?"

"네 따뜻한 거. 먹고 갈 건데 가격이 같죠?"

"아니요. 드시고 가는 거랑 가져가는 거랑 달라요. 더 비싸요."

커피를 만드느라 바쁜 바리스타를 힐끗 쳐다보고 설명을 했다.


키오스크 버튼을 꾹 꾹 누르며 다시 질문을 한다.

"2잔 따뜻한 거 매장컵 맞죠?"

"5000원 계산할게요."

"아니 1500원씩 아니에요?"

"여기에서 먹는 게 더 비싸요..."

괜스레 내가 미안해진다.


"적립하세요?

"없어요."

"그럼, 제 거에 적립해도 돼요?"

"그래요."

아싸! 안 그래도 9개의 스탬프를 찍은 터였다. 아주머니 덕분에 마지막 하나를 채웠다. 별거 아니지만 이런 거를 채워가는 재미가 은근히 있다.

'공짜 커피 쿠폰이 생겼다~' 우리의 대화를 모른척 듣고 있던 카페 주인을 살짝 쳐다보고 내 전화번호로 적립을 했다. 드디어 완성된 나의 커피 스탬프! 10잔이 채워졌다. 아주머니에게 신용카드를 돌려드리고 카운터에 미리 나와서 기다리던 나의 커피를 챙겨 들었다. 이왕 친절하기로 한 거 기다렸다가 커피도 들어드릴까 했는데 아주머니의 일행이 도착했다.


요즘은 키오스크가 일상화돼서 편하다. 스마트폰으로 주문할 수 있어서 손쉽다. 굳이 타인과 대화하지 않아도 되고 상대방의 피곤하고 나쁜 감정이 나에게 전이되지 않아서 좋다. 그러나 조금 아쉬울 때도 있다.


간혹있는 따뜻한 인사를 놓치게 될 때에 그렇다.


한 번은 할머니들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했을 때였다. 동네에는 어르신일자리 창출을 위해 몇 군데 카페가 운영되고 있다. 오랜만에 가까운 지점에 들렸다. 키오스크로 음료를 주문을 하고 갖고 있던 텀블러를 내밀었다. 텀블러를 받아든 멋쟁이 할머니는 '다음에는 텀블러 할인 메뉴가 따로 있으니까 그걸로 주문해요."

"어? 어디요? 못 찾겠는데요?"

"응, 여기 이거 누르면 여기 여기"

카운터에서 나와서 가르쳐주신다.

"아~ 네. 감사합니다."

키오스크 앞에 서면 빨리 주문해야 한다는 괜한 초조함이 생긴다. 눈에 바로 보이는 대로 카페라테를 찾아서 눌렀는데 할인해 주는 탭이 따로 있었다.

텀블러 할인 100원!

벽에도 큼지막하게 붙어있는 글씨가 보인다.

'할인받기 미안한데...' 안 그래도 저렴한 커피 가격이라서 따로 할인까지 받는 게 괜스레 미안하다. 그리고 고맙다. 남의 100원이지만 아끼라고 말해주는 그 말이 따뜻하다.

얼마 전에 아는 분이 그런 말을 하셨다. 연세가 조금 있는 분이었다. '나는 요즘 키오스크로 주문하는 게 어려워. 어딜 가나 키오스크가 있어서 오히려 불편해.'

그러면서 '노인세'라는 생소한 단어를 쓰셨다. 세상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거나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내가 모르면 감수해야 하는 손해, 불편함 이런 것들의 전체적인 의미인 것 같았다. 야기를 들으면서 스트푸드점에서 손자의 손을 잡고 주문을 하던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할아버지는 지폐 한 장을 들고 키오스크 앞에서 어쩔 줄 몰라했고 손자는 아직 키오스크에 손이 닿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하나' 할아버지를 보면서 생각이 들었는데 다행히 카운터에서 주문을 받아주었다. 매니저로 보였던 직원은 빠르게 손놀림을 해주었고 남자아이는 소프트콘 아이스크림 하나를 손에 쥐어들고 기분이 좋아 보였다. 아이가 조금 더 크면 손자가 대신 주문을 해줄 테니 할아버지는 키오스크 공포에서 벗어나실 수 있겠지.


나는 한때 IT계열에서 일을 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어디 가서 말도 못 꺼낸다. 세상의 빠른 변화에 뒷짐 지고 물러서있었더니 휘리릭하면서 몇 배의 가속화가 일어났다. 심지어 UX 개념이 생기기 전부터 관심이 있어서 공부를 하겠다고 찾아다닌 적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초면인 키오스크를 만나면 그 앞에 서서 손놀림이 허공을 헤맨다. 하...


언젠가 노인세를 걱정해야 하는 시기가 나에게도 올 텐데... 벌써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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