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요. 시끄러웠죠?"
등 뒤에서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눈에는 웃음을 표정에는 따뜻함이 담겨있었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7년 전쯤이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시작을 했는데 정리가 잘 되지 않았다. 생각들을 풀어보고자 했는데 지속할 수 있는 힘이 없었다. 결국 멈췄다. 그리고 다시 시작을 했지만 또 멈췄다. 쓰고 멈추기를 반복하다가 시간이 이렇게나 많이 흘렀다. 항상 브런치에 나의 공간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당장은 내버려 두었지만 언젠가 글을 풀어내고 완성을 해보고 싶었다. 더 늦기 전에 브런치를 빈 방으로 방치하지 않고 비워둔 공간을 다시 채우기 시작했다. 이전에 끄적였던 쓰다만 글도 다시 들여다보고 먼지를 털어내듯이 다시 정리하고 있다.
'여기에 글을 써도 될까?' 고민의 한 가닥 중에는 나의 글이 전문 지식이나 특화된 소재의 글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왠지 이곳에 올리기에는 한참 부족해 보였다. 내가 쓰는 글들은 별로 영양가 없는 글인데 올리는 것이 맞을까 고민이 됐다. 응원을 받을 만큼 깊은 감동을 주거나, 인간극장에 나올법한 사연이 있거나, 웬만큼 알만한 유명인도 아니고, 대단한 노하우나 정보를 줄 수 없으니 말이다. 그래도 다시 시작을 했다. 다시 해보고 있다.
글을 쓰기 위해 요즘 종종 찾는 곳이 있다. 평소에 많이 시끄럽지 않은 곳이다. 글을 시작하려는데 한 무리가 내 뒤에 앉았다. 나는 태블릿에 빈 화면을 띄워놓고 키보드에서 잠시 손을 내린 뒤, 휴대폰을 톡톡 치기 시작했다. '잠시 딴짓을 해야겠구나.' 뒤에서는 다들 이런저런 사는 얘기들에 할 말이 많으신 것 같았다. 여행, 자녀들의 근황, 본인 전공, 커리어 등 아무래도 저분들의 알록달록한 대화가 글에 섞여서 중구난방이 될 것 같았기에 포기했다. 다행히 생각보다 일찍 그 무리는 자리를 떴다. '저 먼저 갈게요'라는 말에 우르르 나도 간다며 다 같이 일어난다. '아, 다행이다.' 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미안하다는 말이 들려왔다. 나는 투명인간처럼 혼자 앉아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다가온 누군가의 인기척에 놀랐다. 옆으로 돌아보니 밝게 웃는 얼굴이 보였다. 괜찮다고 나도 같이 눈웃음으로 인사를 했다. 덕분에 그 시간에 저렴한 물건을 발견해서 쇼핑을 했으니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필요한 책이 생기면 중고서적 앱에서 종종 책을 구매한다. 마침 찾고 있던 책 2권을 주문했는데 너무 저렴했다. 배송비는 별도였지만 전체 금액은 책 한 권 값도 한참 못 미쳤다. 판매자의 보내는 수고를 생각한다면 오히려 보내주는 것이 고마웠다. 주문을 해놓고 기다렸다. 판매자는 지방에 내려가서 배송이 늦을 거라고 문자가 왔다. 괜찮았다. 급하지 않았기에 기다릴 수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 책이 빨리 도착했다. 택배상자 안에는 황사마스크와 내년 달력까지 들어있었다. 고맙다는 문자를 보냈더니 정갈한 답장이 왔다.
'제 개인 사정으로 늦게 배송돼서 미안해서요.
잘 받으셨으니 다행이고요.
구매확정 부탁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책 보다 귀한 발견이었다. 그때 구매한 책은 더 이상 책꽂이에 없지만 받은 문자는 남아있다.
요 근래 속상한 일이 생겼다. 누군가 나에게 급한 부탁을 했다. 많이 친한 사이가 아닌데 나에게까지 연락을 해오니 급해 보였다. 당장 내일 오전에 와달라고 했다. 도와주고 싶었다. 고민을 별로 하지 않고 흔쾌히 들어주었다. 사실 나는 그 부탁을 들어주는 것이 수고로웠다. 굳이 그 일이 나에게 필요한 것도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대부분 거절을 한 데에는 이유가 있는 부탁이었다. 그런데 당일이 되니 막상 상대방은 오히려 '내가 너에게 이런 좋은 기회를 주는 거'라는 태도를 보였다. 나는 당일날 무척 피곤하고 불편했는데 상대방의 당당한 태도에 할 말을 잃었다. 결국 안 좋은 결과가 생겼다. 나는 당일날 기분이 상한 것뿐만 아니라 후유증으로 며칠 고생을 해야 했다. 상대방은 끝까지 진심으로 도와준 것을 고마워하거나 그로 인해 내가 불편을 겪게 되는 것에 대해 미안해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의 진짜 모습을 알아가야 하는 데에는 대가가 따르는 것 같다. 표면적인 모습으로는 소위 쿨한 성격의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진짜로 쿨 한 사람이 아니었다.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게 본인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날 이미 보여준 행동으로 사실은 고마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서 실망했는데 , 문제가 생기니 어쩔 수 없이 수많은 말들 끝에 미안함을 겨우 덧붙였다.
멀리서 본 쿨한 모습은 사실은 쿨해 보이는 것뿐이었다.
속이 상한 마음이 고름처럼 커져가고 있는데 터트릴 방법이 없다. 꼭 짜서 소독하고 새 살이 돋는 연고를 발라주고 싶은데 내 손이 닿지 않아서 나를 괴롭게 한다. '괜히 도와줬구나'거절하지 못한 내가 속상했다. 미안한 척하는 모습을 보니 다시는 친한 사람이 아니면 배려를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방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면 자존심이 상하는 걸까?
사람들은 의외로 미안하다는 말을 자존심과 연관 짓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말을 내뱉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걸까?
방금 전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평소에는 잘 받지 않지만 낮에 통화를 하려다가 하지 못한 사람이 있어서 혹시나 싶어 받았다.
"여보세요?"
"OOO 아니에요? 목소리가 아닌 거 같은데? 너무 젊은데 아닌 거 같은데 할머니가 아닌데" 상대방은 혼자 계속 중얼거리다가 말을 멈췄다.
"제 이름 맞는데 누구세요?"
본인의 이름을 말했지만 도대체 누구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상대방은 심한 사투리를 쓰고 있었다. 억양이 너무 강했다. 누구에게 내 전화번호를 받았는지 이름을 알아듣는 데에도 한참 실랑이를 벌였다.
'신종 보이스피싱인가?'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는 본인이 잘못 걸었다. 중간에서 누가 전화번호를 잘못 알려준 거 같다며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높은 톤의 목소리는 점점 칼같이 날카로워져서 화를 냈다. 기가 막혔다. 왜 나에게 화를 낼까? 보이스피싱이 아니라서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 걸까? 밖에는 어제 32도로 올랐던 여름의 뜨거움을 한 풀 식혀주는 비가 내리고 있다. 차분하고 조용한 금요일 저녁이다. 그런데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나의 평화로움을 한 번에 날려버렸다. 미안함이 없다. 아마도 상대방은 전화를 잘못 걸어놓고 본인이 당황을 한 것 같다. 그렇지만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할 자신이 없어서 '잘못 걸었으니 끊을게요. 잘못 걸었다고요!'라고 화를 뱉어버린 것 같았다.
일렬의 사건들로 누구나 타인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 말도 할 수 있는 사람만이 하는것이다. 요번 주는 계속 미안하다는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마주치고 있다. 한 주가 끝이 나고 있다. 제발 다음 주는 평화롭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