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에서 생긴 일 1
여행 전, 모로코 하면 떠오르던 건 사하라 사막이었다.
아프리카, 그리고 사막.
두 단어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내 머릿속의 모로코는 붉은 모래와 낙타로 이뤄진 풍경이었다. 부끄럽지만,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그들의 수도가 마라케시인 줄도 알지 못했다.
마라케시를 가게 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나는 '진짜 사막'을 가고 싶었고, 나에게 그 진짜 사막이란 사하라 사막이었다. 사하라 사막을 갈 수 있는 쉬운 방법 중 하나가 모로코에서 가는 것이었으므로 나는 무작정 마라케시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그렇다. 나는 마라케시에 대한 사전 지식이 전무했다. 막연히 아프리카 어딘가의 도시겠거니 하는 생각이 전부였다. 그래서 히잡을 두른 사람들을 마주했을 때.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모로코는 아프리카보다 오히려 중동에 더 가까운 나라였다. 사람들의 생김새나 피부색도 중동과 더 가까웠으며 그들의 국교 역시 이슬람교였다.
어쩌면 조금은 예상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마라케시를 가기 전 찾아본 블로그마다 '살을 너무 드러내는 옷을 입지 마시오'이라는 주의사항이 빠짐없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엔 그저 그렇구나 하고 넘겼던 주의사항들이 그곳에 도착하자 마침내 피부로 와닿기 시작했다.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마라케시의 중심부로 향할수록 거리는 점점 혼잡해졌다. 그리고 동시에 약간의 두려움이 몰려왔다.
사람들의 생김새가 나와 너무 달랐다. 물론 유럽인들 역시 나와는 전혀 다른 생김새이지만, 호주에서 보낸 지난 3년간의 시간 덕에 그들의 얼굴은 더 이상 낯설지 않았다. 그러나 모로코인들은 아니었다. 나는 그들을 미디어에서도 거의 본 적이 없었다. 간간히 미디어에서 보이는 중동의 모습은 대부분 테러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스스로 인종에 대한 고정관념이 없는 편이라고 생각했건만, 딱히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아마 그들의 눈에도 내 생김새는 독특해 보였을 것이다. 물론 거리에는 아시안 관광객이 몇 있긴 했지만 대부분의 관광객은 유럽인이었다. 그들은 모두 최소 둘 이상씩 짝을 지어 다녔으며, 대다수는 가족단위였다.
그리고 나. 혼자 모로코 여행을 간 아시안 여성. 나는 그 어느 카테고리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몇몇 사람들은 나를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이럴 때일수록 내가 이곳이 처음인 사람처럼 보이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대충 구글 지도를 확인해 숙소까지 가는 거리를 머리에 욱여넣은 후 앞만 보며 당당히 걷기 시작했다. 내가 모로코에 가져간 것은 배낭 하나였으니, 잘만 하면 내가 이곳에 도착한 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은 새파란 여행객이라는 사실은 들키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마라케시에서 지도를 보지 않기란 너무나 힘들었다. 마라케시의 중심부인 메디나는 미로와 같았다.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들은 서로 엉켜있었고, 그 옆으로 쭉 늘어선 상점들은 관광객을 한 명이라도 더 상점에 끌어들이고자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낯선 향신료 냄새와 아랍어. 그리고 누구를 향하는 것인지 모를 강한 억양의 영어와 프랑스어가 뒤섞여 혼란스러웠다.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었고, 하나둘 상점 앞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빨리 숙소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가방 끈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내가 숙소를 빨리 찾아야겠다고 생각한 이유에는 비행기 출발 전에 읽은 숙소 관련 리뷰가 있다.
리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저렴한 가격과 친절한 스테프들. 배낭여행자들에게 알맞은 곳이지만, 위치를 찾기 매우 어렵습니다. 구글 맵을 믿지 마십시오.'
평소 길 찾는 것에 자신이 있던 나였지만 그 자신감의 8할은 구글 지도에 있었다. 더군다나 꼬불꼬불하고 이국적인 메디나 거리에서 길 찾기라니. 나는 점점 자신감을 잃어갔다.
메디나를 헤맨 지 20분, 구글 지도는 숙소가 2분 거리에 있다며 길을 안내했다.
그것이 안내한 길은 이미 복잡하던 골목에서 더 안쪽 골목으로 들어가야 하는 곳으로 심지어 상점이나 가로등 불빛하나 없이 깜깜했다. 나는 그 골목을 반쯤 들어갔다가 무언가 쎄한 느낌에 다시 나오기를 수십 번 반복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길 끝에 숙소가 있을 것 같지 않았지만 구글맵은 여전히 그 길을 가리켰다.
구글 맵을 믿지 말라고 한 리뷰가 생각나 조금 더 큰길로 돌아가보고자 했다. 하지만 큰길 쪽으로 돌아도 결국 숙소 위치로 가기 위해선 또 다른 좁디좁은 골목 사이로 들어가야만 했다. 이 골목이 맞을 거라는 확신이 없어 차마 안쪽까지 들어가지는 못하고 서성이기만 했다. 그렇게 몇 미터도 안 되는 거리의 골목을 왔다 갔다 하기를 15분. 거리에 앉아 담배를 피던 사람들은 나를 향해 뭐라 뭐라 소리치며 낄낄 웃어댔다.
나는 너무나 명백하게 혼자 길을 잃은 관광객이었다. 거리에 앉아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점점 더 매섭게 느껴졌다.
결국, 나는 무섭더라도 일단 구글 지도가 가리키는 골목으로 들어가 봐야겠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짧게 한숨을 쉬곤 핸드폰 불빛에 의존해 어두컴컴한 골목 속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렇게 긴장하며 들어간 골목 안에는 또 다른 골목이 이어져 있었다. 방금 지나온 골목은 그래도 메인거리와 가까워 거리의 불빛이 스며들어왔지만, 그 골목 안 골목은 그 마저도 닿지 않은 완전한 어둠이었다. 심지어 휴대폰 불빛을 최대 밝기로 켰는데도 바로 앞 30cm 정도만 보일 뿐, 그 이상은 볼 수 없었다.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자, 등허리 위로 소름이 쫙 끼쳤다.
나는 그대로 뒤를 돌아 나갔다. 아니 나가려 했다.
뒤를 반쯤 돌았을 까, 어둠 속에서 어떤 남자가 나를 향해 걸어오는 게 보였다. 나는 그를 보지 못한 척하며 고개를 돌린 채 앞으로 걸었다. 뒤에선 Hey! 하며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남자는 다시 나를 불렀고, 나는 들리지 않는 척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Are you going to 00 Hostel?" (너 00 호스텔에 가니?)
나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았다. 00 호스텔은 내가 예약한 숙소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에게 말을 건 남자는 모로코 사람이었다. 그는 짙은 색의 머리와 덥수룩한 수염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나와의 거리를 굳이 좁히지 않은 채 꽤 먼 거리에서 말을 이었다.
"거기 가는 애들 항상 여기서 길 잃더라고. 저쪽 길로 가면 돼."
그는 오른쪽으로 방향을 손짓하며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가 가리킨 방향은 메인 거리. 나는 그 방향을 따라 메인 거리로 나왔다.
그는 여전히 나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채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켰다. 그곳은 내가 조금 전, 들어갈지 말지 망설였던 좁은 골목이었다. 그는 골목 안으로 쭉 들어가 오른쪽으로 꺾은 뒤, 다시 조금 더 들어가면 보이는 세 개의 문 중 가운데 문을 두드리면 된다고 말했다.
나는 연신 고맙다는 말을 하며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손을 흔들며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그의 친절에 괜히 그를 경계했던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그는 나처럼 경계심이 가득한 여행객을 몇 번 본 듯 친절히 방향을 알려주면서도 끝까지 거리를 유지했다. 그와의 물리적 거리감은 오히려 나를 안심시켰고 그를 신뢰할 수 있는 사람으로 느끼게 했다.
그의 말대로 골목의 끝까지 들어가니 문이 보였다. 몇 번의 노크 끝에 숙소 문이 열렸고 나는 그렇게 한 시름 놓을 수 있었다.
낯선 도시와의 첫 만남은 긴장으로 가득했지만, 그 낯섦에 조금씩 가까워져 가는 과정은 익숙한 나라를 여행할 때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마라케시, 그리고 모로코를 알아가는 여정은 그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