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폴>(2019)

칸테미르 발라고프

by 로로

1991년생, 27세의 천재 감독 발라고프와 그보다 3살 적은 촬영감독, 그리고 영화에 처음 출연한 두 명의 여배우가 만들어낸 이 깜짝 놀랄만한 영화는 러시아가 보유한 문화적 자산의 깊이와 넓이를 가늠하게 해 준다. 지금도 여전히 여러 영화제에 초청받고 있는 이 영화는 1945년 폐허가 된 레닌그라드의 가을을 무대로 전쟁을 몸소 겪은 여성들의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그것을 이겨내기 위한 생명에의 애착을 다루고 있다.


201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벨라루스의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에서 영감을 받은 이 작품은 전쟁의 상처가 여러 세대를 이어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음을 전해준다. 병원의 많은 환자들 이외에는 일반적인 전쟁 직후의 영화와는 달리 전쟁 그 자체에 대한 언급이나 묘사가 그리 많지 않다. 도리어 생명이나 희망을 상징하는 녹색과 트라우마와 고통을 나타내는 빨간색이 강렬하게 부딪히며 시각을 통해 관객의 감성에 파고든다.


전쟁 중 오랜 포위 때문에 레닌그라드에 개가 한 마리도 남아있지 않아(사람들이 먹어서) 개를 한 번도 보지 못해 개 흉내를 내지 못하는 어린아이, 불빛 하나를 가운데 두고 눈과 눈이 마주치는 두 여인의 재회 장면, 전신마비로 치유 불가능한 환자를 본인의 강력한 요구에 따라 안락사시키는 장면, 희망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녹색 옷을 입고 끊임없이 돌고도는 장면, 어린아이와 놀던 중 PTSD로 인해 전신마비가 되어 아이를 질식사시키는 장면, 그 아이의 생명을 보상하기 위해 억지로 임신을 위해 섹스하는 장면,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전쟁의 참화 후에도 버젓이 저택에서 호화롭게 살고 있는 정부 관리의 집에서 벌어지는 소름 끼치는 언쟁 장면, 수도 없이 이어지는 으스스하고 심란하고 충격적이고 때론 산뜻한 장면들은 신인 감독 발라고프의 연출력에 찬사를 아끼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빈폴4.jpg
빈폴5.jpg
빈폴2.jpg
빈폴3.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내일을 위한 시간>(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