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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로 Oct 14. 2020

<미드소마 감독판>(2019)

아리 에스터

잘 짜인 공포영화로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할지 모른다. 아름답고 평화롭고 친절한 공동체 혹은 사회 속에서 서서히 드러나는 악마적인 힘을 소재로 한 영화는 그렇게 새로운 것은 아니다. <미드소마>를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이 폐쇄적인 공동체의 문화가 영화 속 두 명의 외지인이 자신의 인류학 논문 주제로 삼으려고 할 만큼 평범하지 않다는 점이다.


감독 아리 에스터가 이 영화를 읽는 또 하나의 방법을 힌트처럼 남겨놓은 것이 있다. 외지인 일행 중 한 명이 읽고 있는 책 <비밀스러운 나치 언어 우타크>이다. 이것이 스웨덴 북쪽의 숨겨진 공동체에서 사용하는 언어와 관련이 있다고 나온다. 이 공동체에서 사용하는 여러 표식은 나치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표식 자체가 비슷하다는 뜻이 아니다. 자신들만의 특정한 표식으로 공동체의 순혈주의를 끊임없이 강조하는 것이 유사하다는 것이다.


이 공동체는 아름답다. 자연 친화적이고, 구성원 전체가 자신의 역할을 동등하게 수행하고, 늘 노래와 춤이 넘실거린다. 꽃과 나무 그리고 공동체를 둘러싼 산이 그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이 영화를 공포 영화로 만드는 그 엽기적인 태양 숭배 문화를 일단 제쳐놓고 본다면 자연의 순환에 호응하여 72세에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것마저도 아름다움을 해치지는 않는다. 물론 그 죽음이 말로 표현하지 못할 만큼 충격적이긴 하지만 말이다.


이 공동체에는 두 가지의 순수함이 있다. 삶과 자연을 일치시키는 순수성과 일반적인 폐쇄적 공동체가 가지는 그들만의 순수함이 있다. 이 두 가지가 이들의 순혈주의를 구성한다. 공동체성이 강화될수록 개체성은 형해화된다. 개인은 공동체 속에 파묻혀버린다. 90년마다 9명의 사람을 태양신에게 바치는 원시적 축제는 사실 인류 문명의 초기에 늘 함께 해온 문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외지인을 끌어모아 재물로 바치는 이들의 끔찍한 행태는 이 공동체에 "숨겨진 악마적인 이면"이 아니다. 그것은 이 공동체의 본모습이며 이 공동체 자체이다. 아름다움과 이 공동체의 괴기스러운 문화는 하나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순혈주의, 자연에 순응하고 자연과 하나가 되어 살아가는 순수성은 그 자체가 이미 공포를 내면화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 공동체의 언어가 나치의 언어와 관련이 있고 특정한 표식으로 공동체의 일체감을 강화하는 것은 이러한 순혈주의의 본모습을 폭로하기 위한 도구이다.


기억해야 할 것은 이러한 (순수성을 강조하는) 순혈주의는 현실의 사회 속에 여러 가지 형태로 숨 쉬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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