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시어머니께서 전화를 하셨다. 시댁이 부산이라 아이들 방학 여행을 송도해수욕장으로 잡고 숙소도 예약했는데, 어머님이 코로나에 걸리셨단다. 글피가 출발일인데 그래도 가자는 자녀들과 절대 못 간다는 부모와의 신경전이 팽팽했다.
큰딸은 내려가는 김에 친구들과의 모임을 부산으로 정해버렸는데 아쉽지만 취소를 했고, 아들도 부산에 내려가고 싶은 마음과 할머니가 주시는 용돈을 은근히 바란 것 같다.
막내가 바닷가에 가고 싶다고 봄부터 노래를 불렀기에 어디든 바다가 있는 곳으로 가야 했다. 서울 근교 해수욕장을 검색하던 중 방아머리 해수욕장이 눈에 들어왔다.
숙소를 알아보니까 부담되는 가격의 펜션이 몇 곳 남았고 나머지 숙소들은 거의 매진이 됐다. 할 수 없이 해수욕장과 조금 떨어진 15분 거리에 있는 숙소를 선택해 겨우 예약을 해놨다. 숙소 예약으로 자녀들과의 신경전은 쉽게 끝나는 법이 없다. 자녀마다 설득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못 가게 돼서 아쉬운 마음과 투정을 받아내야 하는데 나도 사람이라 한계에 도달하기 일보직전이 된다. 큰딸에게 먼저 얘기했더니 친구들과 부산에서 모이기로 했는데 취소가 돼서 아예 가족 여행에 따라가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해수욕장에 대한 얘기, 숙소 인근에 갯벌이 있다는 얘기, 분위기 있는 카페가 있다는 얘기로 딸의 마음을 달래주었다. 딸은 못 이긴 척 가겠다고 했다.
나는 값 없이 가족에게 설득하려고 브리핑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여행 가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는데, 정작 가고 싶은 가족을 위해 나서야 하다니!
학원에서 온 막내에게 부산에 못 가게 됐다고 말했다.
“할머니 때문에 우리가 부산에 못 가야 해!”
큰딸과 똑같은 얘기를 했다.
“할머니 때문이라니? 코로나에 걸리셔서 어쩔 수 없게 된 거지!”
“할머니댁에 못 가도 우리끼리 가서 놀고 오면 되잖아!”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할머니가 아픈데 부산에 가서 우리 가족만 놀고 오는 건 예의가 아닌 거야!”
아이들은 이해를 못 했다. 할머니가 아픈 것과 우리 가족이 여행을 못 간다는 것은 다르다는 것이다. 아이들과 부모와의 생각의 차이는 접점이 없었다!
밤에 학원에서 온 아들에게 부산에 못 간다고 얘기했는데 흘려듣는 것 같았다. 다음 날, 아들이 아침을 먹고 있을 때 얘기하니 막내와 똑같은 말을 했다. 그리고 숙소 취소했냐고 물었다.
“당연하지!”
“친구들에게 다 얘기해 놨는데.”
“어쩔 수 없지.”
“그러려면 뭣하러 가요! 경기도 인근 바닷가는 언제든 갈 수 있는데!”
더 하고 싶은 말은 있었지만 아들을 설득하는 건 만만치 않다는 걸 알기에 입을 다물고 아들이 학원에 가기를 기다렸다. 아침을 먹은 아들은 속상한 마음으로 나갔다. 아마 밖에서 정리하는 시간을 갖고 올 거라는 생각을 하면 내 마음도 편하다. 남편도 아들처럼 아무 데도 안 가겠다고 했는데 막내 얘기를 하며 몇 번의 설득 끝에 대부도로 가겠다고 했다.
‘칭칭 대도 모두 갈 거면서!’
여행지가 바뀌었고 숙소도 정했으면 서로 마음 편하게 더 이상 왈가왈부 안 했으면 좋겠는데, 미련 때문에 입속에서 맴도는 말이 엄마 귀에 못이 박힌다. 돌부처가 되야겠다! 내가 아이들 옆에 있다간 돌로 맞는 기분이 들 것 같다. 나는 다시 기도하는 마음으로 긍정 이를 모셔와야 한다.
아이들에 남편까지 구슬려야 하지만 설득을 할 수 있는 사람도, 여행을 갈 수 있게 요리하는 사람도 나뿐이 없다고 생각하니까 스스로에게 위안이 됐다.
‘속상하고 아쉬운 마음을 나에게라도 얘기해 주니 남편이나 아이들이 고맙지.’
나는 남편과 20년을 살면서 싫다고 하면 설득을 할 수 없다고 느끼고 포기한 적이 대부분이었는데 이번에도 남편이 “나 빼고 아이들과 수영장이나 다녀와!”
라고 했었는데, 막내 생각해서 몇 번을 설득한 끝에 남편도 승낙을 했다. 이번 “여행지 변수 사건”으로 아이들을 통해서 남편의 마음을 조금 더 알게 된 것 같다. 남편이 “절대 안 돼!” 하면 안 되는 걸로 알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알았다.
‘남편도 갈 건데 아이들처럼 칭칭 된 거로 생각하자! 안된다고 말하는 건 된다는 것이 50%라는 걸 기억하자!’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가족의 마음이 ‘대부도’로 가는 것으로 하나 되니까 우여곡절은 있어도 의미가 있었다.
막내가 아빠에게 전화해서 어떤 숙소로 정했고, 아빠는 괜찮은지 물었다. 무조건 “오케이”였다. 막내의 전화로 훈훈하게 된 여행지, 가족의 평화가 다시 찾아왔다.
여행지에서는 또 어떤 갈등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미션이 부여될까?
대부도에 가서나 알 수 있는 일이다! 미리 걱정하지 말자! 인생은 갈등을 해결하라고 주어지는 생 같다.
"오 마이 갓!"
처음에 예약한 펜션을 큰딸이 마음에 안 든다고 다른 곳으로 변경했고 막내에게 변경한 펜션을 보여줬는데, 마음에 안 든단다. 첫 번째 펜션 예약을 취소한 것은 전액 위약금을 물게 됐다! 할인이 많이 된 곳이라 취소 불가한 것인데 몰랐다. 나는 순간 머리가 하얘져서 변경한 최종 펜션에도 나도 모르게 손가락이 움직여 취소하고 말았다. 취소한 펜션의 위약금을 합치면 수영장 딸린 넓은 펜션 예약이 가능한데..... 정말 아끼다가 똥이 된 샘이다. 펜션의 위약금만 내고 여행을 못 갈 판이었다. 나는 부랴부랴 막내가 고른 펜션의 판매처에 연락해 신규 예약하고 취소한 위약금을 내 통장으로 넣어주는 것으로 해서 겨우 처리했다. 정말 정신없는 20분이 흘렀다!
잃은 돈은 헌금했다고 생각하고 잊어버려야겠다. 좋은 경험 했다고. 다음엔 절대 이런 일이 없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