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역국을 가스레인지에 올려놓고 큰딸에게 넘치거나 타지 않게 봐달라고 하고선 밖으로 나갔다. 딸은 학교 시험을 리포트로 대신한다고 해서 쉬는 날이었다. 나는 혹시나 딸이 놓치고 태울까 봐 물을 국그릇으로 두 번 채운정도의 물을 미역국 냄비에 더 넣고 딸에게 한 시간 뒤에 한 대접의 물을 넣으라고 일러주고 나갔다.
집에 있으면 글 쓰는 것도 손에 잡히지 않고 읽는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뭔가 집중을 못하게 어수선한 마음이 흔들어 놓아서 동화책 한 권이라도 읽어볼 생각으로 가방에 책 한 권 넣고 무작정 현관문을 열고 나선 거였다. 두 아이가 고등학생일 때는 낮에 여유가 있었는데, 큰딸이 집에 있는 날이 많아지고, 아들도 고3이라 그 힘든 마음이 나를 옥죄어오는 걸 느꼈다. 이럴 땐 산책이 최고지.
현관 바닥에는 어제 주문했던 시집 한 권이 바닥에 누워서 내가 일으켜주길 기다리는 것 같았다. 비닐을 벗기고 이 시집도 가방에 넣고 늘 가던 길로 걸었다.
따끈한 디카페인 커피를 주문했다. 쌉싸름하고 속을 달래주는 커피 한 모금이 온몸으로 퍼졌다. 시집 한 권을 읽다가 오늘도 느낀다.
'작가의 머릿속에 들어가서 시를 읽어보고 싶다!'는 것. 어떤 생각으로 자신의 마음을 이렇게 시로 엮어냈을까?
한강 작가의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를 읽고 있었다.
첫 시부터 어려웠지만, 죽 읽어 나가다가 공감되는 시를 찾았다.
괜찮아
태어나 두 달이 되었을 때
아이는 저녁마다 울었다
배고파서도 아니고 어디가
아파서도 아니고
아무 이유도 없이
해질녘부터 밤까지 꼬박 세 시간
거품 같은 아이가 꺼져버릴까 봐
나는 두 팔로 껴안고
집 안을 수없이 돌며 물었다
왜 그래.
왜 그래.
왜 그래.
내 눈물이 떨어져
아이의 눈물에 섞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말해봤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괜찮아.
괜찮아.
이제 괜찮아.
거짓말처럼
아이의 울음이 그치진 않았지만
누그러진 건 오히려
내 울음이었지만, 다만
우연의 일치였겠지만
며칠 뒤부터 아이는 저녁 울음을 멈췄다
서른 넘어야 그렇게 알았다
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울부짖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듯
짜디짠 거품 같은 눈물을 향해
괜찮아
왜 그래, 가 아니라
괜찮아.
이제 괜찮아.
시를 읽고 위로를 받는다.
어제 막내가 그랬다. 2학기가 되니까 수학이 너무 어려워졌다고 하소연을 했다. 가만 듣고만 있으면 되는데 나는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딸이 위로가 안 된다고 말해버렸다.
"그러게 수학이 왜 그렇게 어려울까? 더하기, 빼기, 곱하기만 할 줄 알면 되는데..."
이 시를 읽고 "괜찮아."가 내게 위로가 되는 것처럼, 딸에게 위로되는 말이 뭘까를 생각하게 됐다.
"막내야, 어렵지."
이 말 한마디에 안아주는 포근함이면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시 몇 편을 읽다가 동화책을 펼쳤다. 한참을 읽는데 한 시간이 지났다. 나는 큰딸에게 전화를 해서 미역국에 물을 넣었는지 물었다. 안심이 된 나는 다시 책을 읽다가 졸다가 하면서 나른한 시간을 보내다가 커피 한 모금을 마셨다. 새남이라는 아이가 손을 잠시도 가만두지 못하는 버릇 때문에 손에 연필을 쥐고 다니면서 벌어지는 판타지 동화를 읽고 있는데 큰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 미역국이 탔어!"
"내가 잘 지켜보라고 했잖아! 그동안 뭐 했니?"
"미역국이 까매서 탄 줄 몰랐어. 엄마가 물 넣으라고 해서 넣었고, 방에 와서 과제하고 있었는데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래?"
"과제해도 나와서 한 번씩 봐야지!"
"엄마가 한 번씩 보라고 하지 않았잖아! 과제하느라 집중하고 있었다고! 엄마, 미역국이 그렇게 아까워! 문자 보내지 말고 집에 와서 얘기해요!"
나는 미역국이 아까운 것보다 딸을 믿었는데 미역국이 탔다는 것에 실망했었다. 집으로 오면서 미역국처럼 새까맣게 탄 마음을 긁고 씻으며 걸었다.
"미역국이 왜 탄 걸까?"
딸과 나의 생각의 차이가 이렇게 벌어져 있다니! 나는 그래도 내가 더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역국을 끓여보지 않은 딸한테 맡긴 것도 그렇고, 맡길 때 더 세세하게 얘기해 주고 가지 못한 것도 그렇고, 딸에게 자주 전화해서 타는지 보라고 하지 않은 것도 걸렸다.
집에 와서 탄 냄비를 봤다. 바닥에 타서 눌어붙은 미역을 피해 위에 타지 않은 미역을 건져서 다른 냄비에 따뜻한 물을 타서 한 숟갈 먹어봤다. 탄 미역국 맛이었다. 입안에 넣을 때는 괜찮았지만 뒷맛이 너무 오래갔다. 나는 미역국을 모두 버렸다. '탄 미역국을 먹어보다니!' 이도 경험이다.
'괜찮아, 괜찮아! 다음에 딸에게 부탁할 땐 더 신경 쓰면 돼!'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그리고 그동안 자녀들을 키우면서 부족했던 점을 발견하게 돼서 감사한 일이기도 하다. 탄 미역국으로 자녀와의 차이를 안 것처럼 자녀들을 더 세심히 가르쳐주지 못한 것에 미안한 마음이 밀려오고 좀 더 잘하자는 다짐의 마음도 들었다.
"그래도 더 살피지?"
"나, 과제하느라 바빴어. 그리고 나, 계란프라이도 못하잖아. 라면도 못 끓이고!"
"라면도 못 끓인다고? 동생도 혼자 끓여 먹을 줄 알고, 너도 끓여 먹은 적 있잖아!"
"아, 라면 말고 계란프라이. 저번에 프라이 하다가 망쳤잖아."
"연습하면 되지, 못하진 않아! 잘 안 해봐서 그래."
"응."
"엄마가 미역국도 태우고, 실수했네. 엄마도 그럴 수 있으니까 딸도 그걸 알아주면 좋겠어. 우리 무슨 일이든 서로 더 챙기고, 관심 갖자! 앞으로 더 잘 될 거야, 그지?"
"응, 엄마!"
미역국을 태운 오늘의 경험이 감사다. 나는 탄 냄비를 깨끗이 씻고 다시 미역을 불리고 달달 볶아서 소고기를 넣고 물을 부었다. 보글보글 미역국이 끓고 있다. 점심에 못 먹었지만 저녁은 맛있는 미역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