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막내딸이 “고양이 카페, 고양이 카페…….” 하고 노래를 불러댔는데, 우리 동네에는 없어서 못 간다고 예전부터 얘기해 놓은 상태였다. 방학이라 집에서 TV 보는 시간과 게임하는 시간이 많아져 나는 일부러 산책하자고 자주 부추겼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싫어, 엄마 혼자 가! 나 쉬고 싶어.” “맨날 쉬는데 또 셔?”
개학이 며칠 안 남았다고 투덜대는 딸은 공부 안 하는 방학이 더 좋단다. 나는 아이들이 학교 가는 게 재미있고, 그리운 때가 왔으면 좋겠다. 나도 어릴 때 학교 가는 게 싫긴 했다. 소극적인 나는 공부하는 것도, 친구들 사귀기도 쉽진 않아서였다. 초등학교 시절이 왜 그리 더디게 가던지. 나의 어린 시절과 딸은 차이가 있지만 학교에 가기 싫은 마음은 같은 것 같다. 나는 딸의 마음을 알면서도 한편으론 공감을 못 해줬다.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면 좀 내 시간이 생겨서 자녀들이 개학하는 날을 손꼽고 있으니 말이다.
“컵라면 사줄게. 같이 마트라도 다녀오자!” “싫어! 누가 컵라면 사 달랬어!” 간식으로 컵라면이라면 무조건 따라 올 딸이 오늘은 달랐다. 딸의 볼 주머니에서 계속 투정이 새어 나왔다. 나는 딸에게 몇 번 더 같이 가자고 얘기했다. 투덜거리는 딸이 무거운 발걸음으로 따라나섰지만, 마트로 가는 길에 내내 볼멘소리 했다. “핸드폰도 안 바꿔주고, 매일 책이나 읽으라 하고, 고양이 카페도 안 보내주고…….”
나도 투정 부리는 딸에 기분이 상했다. “고양이 카페? 그 얘긴 끝난 얘기야. 근처에 카페가 없어서 못 간다고 했잖아!” “아니야, 언제 고양이 카페에 가자고 엄마가 약속했다고. 기억 못 해?” 딸도 나도 헷갈렸다. 하도 조르니까 같이 가자고 한 것 같기도 하고 알쏭달쏭하게 됐다. 난 동네에는 카페가 없고, 있는 곳은 다른 구에 있어서 멀어 못 간다고 확실히 얘기한 것 같은데, 딸은 아니라고 했다. 내가 어디든 가자고 했단다. 메모해 놓은 데도 없어서 난감했다.
대형마트에 도착한 우리는 같이 카트기를 밀고 마트로 들어갔다. 입구를 벗어나 삼 미터쯤 둘러볼 때였다. 딸이 카트기에 힘을 주면서 방향을 오른쪽으로 틀었다. 나는 순간 몸이 휘청거리며 딸려 갔다. 기분이 나빠진 나는 딸이 가는 방향으로 카트기를 밀며 손을 떼고, 딸이 앞으로 카트기에 밀려갔다. 나는 딸의 반대편으로 갔고 딸도 화가 났는지 뒤도 안 돌아보고 자기 방향으로 갔다. ‘분명, 라면 코너로 갔을 거야. 틀림없이.’ 나의 추측은 빗나가지 않았다. 카트기에는 컵라면 하나가 달랑 들어있었다.
“전화했었는데 왜 안 받아! 나, 그냥 집에 갈래!” 혼자 장을 보고 딸을 찾아갔는데, 딸은 삐쳐있었다. 핸드폰을 무음으로 해놔서 딸의 전화를 받지 못했던 것뿐인데, 나는 자초지종을 말하면 딸이 안 들어줄 것 같기도 하고 기분도 아직 안 풀려서 새침하게 말했다. “그래, 그럼.” 딸과 나는 “고양이 카페”에 갈지, 못 갈지를 두고 친구처럼 다투고 있었다. 오기 싫어하는 딸을 데려오는 게 아니었다. “고양이 카페”에 가는 얘기를 딸이 이해할 수 있게 어떤 결론이 나던 마무리 짓고 왔어야 했는데, 후회됐다. 고양이를 보면 사족을 못 쓰는 딸의 마음도 알아주고.
내게 다가온 딸은, 카트기를 그 자리에 놓고 가버렸다. 나는 집으로 가는 딸을 따라가지 않고, 마저 장을 보고 네 정거장 거리의 집을 걸어서 갔다. 딸도 혼자 걸어갔을 걸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다. 아까는 딸이 좀 미웠다. 나는 장을 보는 거니까 살 게 많아 무거울 건데, 딸은 딸랑 컵라면 한 개 사면서 같이 잡고 있던 카트기 방향을 순간 자기 쪽으로 틀어버린 게 못마땅했다. 그리고 딸의 투정이 점점 화를 부추겨서 나도 모르게 그런 행동이 나왔던 거다. ‘딸이 내 마음을 몰랐을 텐데…….’ 나는 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투정 부리던 딸의 마음을 받아주지 못했다는 것이, 방학 동안 쉬고 싶다던 딸의 마음이 고양이 카페에 가고 싶다는 건데 그걸 몰랐던 것이 후회됐다. 쉬고 싶다는 게 놀러 가고 싶은 마음인데…. 나는 집으로 오는 길에 잠시 장 본 가방을 인도에 내려놓고 고양이 카페를 검색했다. 가장 가까운 카페가 신촌에 있었다. 나는 딸에게 얘기할 생각에 양손은 무거웠지만 발걸음은 가벼웠다. 혼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죽순처럼 돋아난 화가 언제 다 뽑혔는지 가물가물했다.
“고양이 카페가 신촌에 있더라!” 나는 집으로 돌아와서 거실 소파에 앉아있는 시큰둥한 딸에게 첫마디를 떼었다. “언제 갈 건데?” “이번 주 일요일.” “이틀 남았네!” 딸은 샴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는 둥, 카페 갈 걸 생각하니 잠이 안 올 것 같다는 둥 고양이 꿈을 꾼 얘기도 해주었다. 나는 딸의 말이 걸리지 않고 신선하게 사르르 가슴으로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