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목이 아파.”
“병원에 가봐.”
“싫어, 귀찮아! 엄마, 아프면 학교 안 가도 되지?”
중학생 딸은 병원에 갈 마음이 없었다.
엄마는 속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이틀이 지나, 감기가 심해진 딸은
학교에 가지 못했다.
“병원에 가자!”
“안 가도 된다니까!”
엄마는 모래의사에게 받은 유리병을 열었다.
답답하고 상한 속은 꾹꾹 눌렀다.
유리병 안에선 검은 모래가 차오르고 있었다.
이는 화를 빼내기 위한 고통의 과정이었다.
“내가 뭐랬어! 빨리 병원에 가라고 했지. 왜 병을 키워?
넌, 들어야 하는 말도 안 듣니?”
유리병 안의 모래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딩동!”
현관 초인종이 울렸지만
엄마는 누가 온 건지 신경 쓰지 않았다.
아들이 문을 열러 나간 사이에도
엄마와 딸의 말다툼은 계속되고 있었다.
“엄마, 나빠!”
“뭐, 내가 나빠? 어떻게 네가 그럴 수 있어?”
엄마는 화가 치밀어서 손을 들었다.
딸을 한 대 치려는 순간,
유리병 안의 검은 모래 속에서
작은 뱀이 튀어나왔다.
뱀은 엄마의 머리 위로 올라가려 했지만,
누군가의 손아귀에 붙잡히고 말았다.
모래의사였다.
현관문을 열어준 아들도 옆에 서 있었다.
모래의사의 손아귀에 있는 뱀이
갈라진 혀를 내밀며 말했다.
“계속해! 계속 화내라고!”
“내가 얼마나 병원에 가라고 했는 줄 알아?
넌 듣지 않지!
귀찮아, 귀찮아! 하면서.
갔으면 빨리 나았을 텐데,
일부러 병을 키운 거 아니야?
가족들도 병에 걸리면 어떡해?
학교에 안 가려고 그러는 거지!
아프면 누가 돌보니?
지난달에도 아파서 힘들었잖아!
학교도 일주일이나 빠지고 학원도….”
엄마는 맞는 말만 쏟아냈고,
뱀은 엄마의 말에 힘을 받아
점점 커지고 있었다.
“엄만, 내가 아픈데 위로는 안 해주고
뭐라고만 하지!
아파서 쉬고 싶었단 말이야!”
서러움에 딸의 목소리가 떨렸다.
엄마는 붉고 일그러진 얼굴을 느끼며
멈칫했다.
“뭘 해! 딸이 나쁘다고 했잖아! 딸이 밉지 않아?
한 대 쳐! 치라고!”
뱀은 혀를 날름거리며
숨 가쁘게 말했다.
모래의사는 안간힘을 내며
뱀을 붙잡고 있었다.
“당신이 한 말을 되새겨 보세요.
그리고 딸의 말도요.
딸이 밉기만 한 가요?”
모래의사는 엄마에게 물었다.
뱀은 너무 커져
의사의 두 손아귀에서 빠져나가기
직전이었다.
“당신의 말에 뭐가 빠졌나요?”
모래의사가 힘겨워하며
애원하듯 말했다.
엄마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 사랑이요, 사랑이 빠졌어요.
내가 아팠을 때 딸은 식사를 챙겨줬어요.
물도 갖다 주고 그리고...”
커다랗던 뱀은 지렁이처럼 작아지더니,
유리병 속 검은 모래로 돌아갔다.
검은 모래는 파란 물처럼 변해
증발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