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놀터 ‘아이얼의 이야기가 있는 여행’ 3번째
이른 아침부터 퍼얼펄~ 눈이 내리고 있다. 서울역 만리동으로 가는 길.. 혹시나 해서 버스 대신 전철행을 택했다. 길에서 돌연 지체되는 가능성이 적다는 이유로! 이동시간은 10분 정도 더 소요되지만..
오늘은 꿈놀터에서 내가 리드하는 세 번째 기행!
애초의 행선지와는 다른 코스를 택했다. 부암동 인왕산로에 있는 초소카페 대신 만리동의 적산가옥카페 '더 하우스 1932'로.
이유는 하나! 우리의 책 나눔이 더욱 풍성한 의미가 되기 위해서이다!
특별한 공간이 주는 위력을 알기에 기왕이면 최적의 장소에서 책이야기를 풀어놓고 싶었다.
겨울밤 뜨뜻한 아랫목에 둘러앉아 군고구마 까먹으며 시린 몸을 녹이듯.. 그렇게 정감 있는 나눔의 현장이 되길 바라는 나의 고민에 9살 연하 독서동아리 동생이 제안한 특별한 감성의 레트로 카페였다.
독서모임에 모여든 이들은 확실히 달랐다. 미리 전화번호를 받아 만들어놓은 단체카톡방에서 불쑥 내민 리더의 기습제안에 5명 모두 두말없이 "예!"하고 따라주었다. 낯선 만남, 새로운 장소에 대한 긍정적 호기심으로 가득한 회원분들의 모습! 안 봐도 본 듯, 그 환한 이미지가 기분 좋게 그려졌다.
가파르고 좁은 계단을 따라 3개 층으로 구성된 카페 공간은 층마다 특유의 멋을 뿜어내고 있었다. 맨 위층이 이 적산가옥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는 다딤이방이었지만.. 우리는 6명이 독서토론할 수 있는 독립된 공간을 찾아 맨 아래층의 별실에 자리 잡았다. 이곳은 타일바닥으로 이전에 현관 마당이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곳이다.
어쨌든 우리만의 아늑한 공간에서 맘 편히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을 수 있다는 사실에 우선 안도했다. 오늘이야말로 내가 꿈꾸던 '이야기가 있는 기행'을 제대로 펼쳐볼 수 있겠다 싶어서!
오늘의 이야기는 86년생 젊은 작가 장류진의 단편소설 <탐페레 공항>으로 시작되었다. 창비에서 여행을 테마로 편집한 <여행하는 소설>에 담겨있는 7편의 단편소설 중 첫 번째 수록 작품이다. 꿈놀터에서 펼쳐지는 독서 나눔에 딱 맞는 책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 몇 차례 더 이 책으로 나눔을 하게 될 것 같다.
우선 한 사람씩 돌아가며 소설을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다. 우리의 눈과 귀가 하나로 모아지는 시간, 모두의 집중력을 높일 수 있는 출발이다. 이후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는 효과적인 나눔을 위해 미리 준비해 간 6개의 논제에 따라 격의 없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소설의 주인공 '나'와 '핀란드 노인'의 에피소드에 우리들을 투영시키는 나눔은 첫 만남인데도 불구하고 서로를 알게 되는 '열쇠'가 되어주었다. 오랫동안 수차례 만남을 가져온 지인들도 쉬이 알지 못하는 각자의 깊은 속내가 펼쳐지면서.. 가슴이 찌릿하고 코가 찡해지며 눈시울이 붉어짐을 경험할 수 있었다.
여행사에 장기 근속하면서 초기지를 발휘, 성공했던 탁월한 기획력과 그에 대한 포상.
여행기획자로서 오랫동안 일의 성취에만 매달려 실적내기에만 급급했지, 여행자들의 마음은 헤아리지 못했음에 대한 속죄의 고백.
돌아온 싱글로서 두 아이를 키워온 이야기.. 가장으로서의 부담감을 안고 각종 어려움을 뚫고 견뎌낸 자만이 느끼는 자부심.
오랫동안 오로지 직장에 충성, 열심히 일하며 살아온 자신! 이제는 내 맘껏 여행 다니며 즐기겠다고 올해 초 퇴직 후 제주도 둘레길, 산티아고 순례길을 벌써 다녀온 이야기.
어린 시절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대학진학을 포기해야 했던 일들.. 그에 대한 보상으로 뒤늦게 방송통신대학을 다니며 학업에 정진하는 기쁨을 누리는 이야기.
왕성한 지적 호기심으로 클래식음악을 섭렵하고 있는 가운데 차오르는 성취감.
대한민국 최고 엘리트 집단의 성에 갇혀 '참 자아'를 묻어두고 살아왔던 인생에 대한 회한.
여행지에서 이상형을 만났을 때의 가슴 뛰는 설렘! 그 영화 같은 낭만적 로맨스의 서사와 감정 고백..
이렇게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2시간여 계속되는 우리의 나눔은 배고픔도 잊을 정도로 감동적인 또 다른 소설이야기가 되고 있었다.
"엄마 마음의 나이는 몇 살이야?"
"난 늘 19살이야! 얼굴은 이렇게 쭈그렁방탱이가 되었어도!"
최근 90살 가까운 노모와 이러한 대화를 나누었다는 한 선생님의 말씀이 긴 여운을 주었다.
궁핍한 대학시절 '워킹 홀리데이'를 맞아 아일랜드 더블린으로 가는 도중, 경유지 핀란드 탐페레공항에서 우연히 마주친 핀란드노인의 호의와 친절이.. 젊은 청년의 가슴을 울리고, 그에게 가장 소중한 만남으로 각인되었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아직 남은 인생 가운데 지나쳤던.. 그 뭇 소중함들을 기억하고 응대할 수 있는 기회가 아직 남아있다는 지금의 현실에 안도했다.
"아.. 어쩔 뻔했어.. 만약 주인공이 전화했을 때.. 그 핀란드 노인이 이미 죽은 후였더라면.. 넘넘 가슴 아팠을 거 아니야.. ㅠㅠ"
목이 메어서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는 안선생님의 탄식에 우리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내가 제시한 마지막 논제 '나눔 6'을 제안하면서 오늘의 나눔을 마쳤다.
나눔 6 : 소중한 그 사람에게 쓰다 만 편지, 그동안 별러왔던 편지를 오늘 중 꼭!! 써보기로 하자. 이 해가 가기 전에..
카페 '더 하우스 1932'를 나와 '서울로' 고가보도를 산책하며 각자의 상념에 빠져든다.
"우리 꼭 다음에 또다시 이렇게 만나요!"
아쉬움의 인사를 뒤로하고 헤어지는 우리들..
2022년이 가기 전 한두 차례 더 이 '여행하는 소설'을 나누어보리라 다짐해 본다..
#꿈놀터 #꿈놀터탐험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