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기태 소설 <중력>
중력, 무중력...
직장인, 우주인...
사이, 바깥...
소설 <중력>을 읽는 동안 극한 대조를 이루는 이러한 단어와 이미지들이 수차례 교차되고 있었다.
거의 다 읽어갈 무렵 문득 <중력>을 쓴 작가가 궁금해졌다. 우주선에 올라탈 1인이 되기 위해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는 4명 - 이진우, 김태우, 김유진, 정우성의 독백 같은 이야기가 가슴에 꽂힐 때면 그들의 번뇌가 고스란히 어느 한 곳으로 흘러들어 결집되는 느낌이었다. 소설의 바깥에 있는 그 누구에게로!
"그 누구로 나선 작가는 젊지도 늙지도 않았을 거고~
이상을 꿈꾸면서도 현실에 안착하려 하며, 무작정 짐을 꾸려 익숙한 곳을 떠나 미지의 곳을 찾아 나서다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대책 없이 대책을 추구하는 방랑자일 거야~~ “
이렇게 어림짐작하게 되었다.
작가에 대한 사전 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읽었고, 떠오르는 생각들이기에 그것을 확인하고 싶어 네이버 검색을 해보았다.
"아! 역쉬~~"
권기태 작가는 50대 초반의 신문사 사회부 기자 출신이었고, 내가 사는 집 근처에 거주하고 있었다. 나처럼 페이스북을 통해 간간히 자신의 근황이나 생각을 펼쳐놓는 평범함과 특별함을 아울러 가지고 있는 자로 여겨졌다. 삶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끊임없이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 소설 속 이진우처럼!
글이란 이렇게 자신을 드러내고야 만다. 나의 예측이 맞는다면 작가를 가장 많이 대변하는 인물이 '이진우'가 아닐까 싶었다. 이진우는 익숙한 회사에서 벗어나 겨울산 갈림길에 올랐고, 시베리아 벌판의 눈보라를 맞았고, 가가린 우주센터의 바늘구멍 바로 앞에서 씨름했으며, 잠깐 동안의 성취를 '나의 것'으로 움켜쥐었다가, 이내 떨쳐 버리고 하늘의 바깥으로 돌아와 세상을 관조하고 있었다. (작가는 이러한 차례로 이야기를 구성해나갔다. )
그는 혹독한 눈보라 시련 속에서 이렇게 자신을 추슬렀다.
"용기란 계속할 힘이 아니다. 힘이 없어도 계속하는 것이다. 우레 같은 외침만 용기가 아니다. 쉬었다가 다시 해보자. 나지막이 속삭이는 것도 용기다."
또한 가가린에서의 치열한 경쟁구도 안에서 다음과 같이 번민했다.
"이 한가하고 평화로운 풍경의 껍질 한 귀퉁이 속에서 살고 죽는 싸움이 이렇게 사납게 벌어지고 있다니. 공기에는 별이 이렇게 풍부하고 고요한데도 끔찍한 살육이 꼬리를 물다니. 몸부림과 발버둥이 저리 처절하다니.." (처절한 훈련 경쟁의 극에 달 했을 때 훈련장 앞마당에서 자빠진 곤충을 놓고 각축전을 벌이는 개미의 모습을 관찰하고는 읊조리는 말이다.)
책의 중간쯤 읽어 내려갈 무렵 독서동아리 회원들과의 채팅방에서 이렇게 중간 소회를 풀어보았었다.
"<중력>은 우주인이 되려는 욕망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치열한 생존경쟁사회를 살아나가는 의지적 인간들의 이야기로 비쳐졌어요. 어쩔 수 없는 삶의 중압감(중력)에서 벗어나 무중력의 공간으로 들어가고 싶은 환상적 소망을 품은 자들이 모인 곳.. 그러나 그곳에도 여전히, 오히려 더욱 무겁게 짓누르는 경쟁사회의 중력을 다룬 책인 것 같아요."
책 전체를 마저 다 읽고 나서는 소설 속 이진우 및 동료들의 대사가 나 자신의 이야기처럼 귓가에 맴돌았다.
"나는 승자가 아니라도 좋았다. 승자보다 더 승자다운 것, 승자의 됨됨이를 지니는 것, 그래서 미더움을 주고 소박한 정을 나누는 것이 더 소중했다."
"나는 여기(가가린 우주센터) 온 것을 후회하지 않는가? 아니다. 내가 모험을 하지 않고 편안하게만 있었더라면.. 난 아직 뭘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바쁘기만 한 바보로 살았을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는 채로.. 쳇바퀴를 돌면서 가끔 푸념하고 화를 내기만 하는 채로."
"사람도 너와 나, 우리는 무게 없이는 살 수가 없고 무게가 있는 곳에는 중력이 있다. 중력은 바람과 강, 밀물을 당길 때는 공평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을 찾아갈 때는 오로지 개별적일 뿐이다. 버릴 과거는 없다. 아무도 모르니까. 피할 미래도 없다. 씨앗이 움트고 있으니까. 운명을 사랑해라. 가능성을 시험해봐라. 나아간 만큼 너의 인생이 된다. 다시 일어난 만큼 너는 강해진다. 그러니 반드시 생각해라. 이것이 끝이 아니라고. 너는 더 멀리 날아가야 한다고."
어느새 독자인 '나' 또한 훈련을 치른 우주인의 심경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공감하게 된 것이다.
참 신기하다.
'중력'
지구의 한 끝에서 치열하게 훈련받는 우주인들의 이야기는 별생각 없었던 한 여인을 움직여 저들의 사고 속으로 끌어들였다.
이게 바로 이 소설의 매력이다.
독자를 끌어당기는 힘, 또 다른 의미의 ‘중력’으로 채워진 아주 반듯한 소설이다.
*첨언: 이 책을 읽고 난 감상을 페북에 올리고 난 후, 우연히 권기태 작가와 연결되어 메신저를 주고받다 그와 페이스북 친구가 되었다. 권기태 작가는 아주 겸손하고 소설처럼 반듯한 분으로 여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