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는 여름에게, 남겨질 우리가
어떤 문장은 그저 책 속에만 머무르지 않고 우리 삶의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와 가만히 말을 건넵니다. 그렇게 우리를 가만히 멈춰 세우고, 우리가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왔던 길에서 잠시 벗어나게 만들죠. 지안프랑코 칼리가리치의 『도시의 마지막 여름』이 제게 그런 책이었습니다. 이 책의 문장들은 화려한 수식 없이 텅 빈 하늘처럼 고요했고, 그 안에서 저는 멸종된 종에 속한 한 남자의 위태로운 걸음 위로 제 그림자를 겹쳐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삶의 치열한 경주에서 기꺼이 스스로 제외된, 혹은 도저히 합류할 수 없었던 존재들이 누린 방관이 실은 삶의 진실에 다가가려는 가장 우아한 방식일 수도 있다는 잔잔한 깨달음은 덤이었고요.
지안프랑코 칼리가리치는 저널리스트이자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며 삶의 단면을 섬세하게 포착해 온 작가입니다. 그의 작품들은 어쩌면 빛보다 그림자에 더 주목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데요. 『도시의 마지막 여름 』역시 그렇습니다. 1970년대의 혼란스러운 로마를 배경으로, 야망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도 찾아볼 수 없는 서른 살의 남자 '레오 가짜라'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는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 없이 신문사에서 용돈벌이를 하며 그저 하루하루를 흘려보내죠. 그의 눈에 로마는 사랑을 갈구하는 짐승과 같았고, 치열하게 사는 이들은 하나같이 불만족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 같은 경우에는 다행히 그 치열한 경주에서 기꺼이 제외될 수 있었다'는 그의 독백에서, 누가 정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삶이라는 여정에 성공이라는 공식으로 점철된 이 사회에 순응하지 않는 그의 태도를 봅니다. 하지만 그것은 삶을 포기한 패배자의 선언이 아니었습니다. 모두가 결승점을 향해 달려갈 때 그는 그들의 모습을 관찰하며 삶은 그저 '방관자의 시선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는 것이죠. 모두가 동의하는 가치 대신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따랐을 뿐이라는 그의 담담한 고백은 오히려 거대한 흐름 앞에서 자신만의 속도를 지키려는 한 인간의 고독하고 단단한 의지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레오에게 '로마'라는 도시는 단순한 공간적 배경이 아니었습니다. '로마라는 도시는 기억을 태워 버리는 특별한 성질을 갖고 있기에', 로마는 그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기억들을 선택적으로 남기거나 지우는 주체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최고의 사랑이 아닌 어중간한 마음으로는 이곳에서 살아갈 수 없다'는 구절은, 레오가 로마에서 느꼈던 환멸과 갈망을 동시에 보여주는데요. 이는 비단 로마라는 도시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우리 역시 어떤 삶의 공간에 속하기 위해 온전히 마음을 바치거나 혹은 그곳에서 버려질 것을 각오해야만 합니다. 로마라는 짐승은 어쩌면, 우리의 삶 자체가 내포하고 있는 모순을 상징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이 책에서 가장 아픈 문장들은 '남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친구 그라지아노가 던진 '우리는 멸종된 종에 속하기 때문이지. 우린 그저 우연히 살아남은 사람들인 거야'라는 이야기처럼, 레오는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남은 음식(avanzo)'에 비유합니다. 연인 아리아나를 '다른 사람의 여자일 때만 내 것이 될 수 있다'라고 느끼는 것도, 그녀가 누군가의 잔재일 때만 자신에게 허락되는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인데요. 사랑마저도 온전한 형태로 얻지 못하고 누군가가 남기고 간 흔적 속에서만 자신의 것을 찾을 수 있는 레오의 삶은 황량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래서 문득 깨닫습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 남겨진 것, 혹은 온전히 내 것이 되지 못하는 것들 속에서 오히려 삶의 가장 진실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요. '만난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떠나온 사람들을 위한 존재'라는 문장은, 우리가 남기고 온 흔적들, 그리고 우리에게 남겨진 모든 잔재들이 사실은 지금의 우리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조각들이라는 것을 비틀어 내비칩니다. 가장 아팠던 부분에서 가장 깊은 깨달음이 피어나는 순간이었달까요.
레오가 밀라노행 기차에 오르며 '기차가 다른 방향, 그 어떤 방향으로 향해도 내게는 마찬가지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슬픔이 밀려왔다는 부분에서는, 삶의 목적지를 상실한 한 인간의 절망이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어느 곳에도 닿지 못하는 존재의 자유로움이 동시에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는 종착역에 닿기 위해 발버둥 치는 대신, 잠시 멈춰 서서 소시지 샌드위치를 먹으며 '이것만으로도 올 가치가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삶의 거대한 의미를 찾기보다, 순간의 작은 만족을 긍정하는 레오의 태도는 오히려 삶을 온전히 사랑하는 방식이었겠지요.
『도시의 마지막 여름』은 이처럼 멸종된 종의 감정들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이 오랜 시간 동안 독자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어쩌면 우리가 모두 내면에 '남은 자'의 마음을 조금씩은 품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치열한 경주에서 잠시 이탈하고 싶은 마음, 관계 속에서도 고독을 느끼는 마음, 그리고 세상의 거대한 허무함 앞에서 길을 잃는 마음. 이 모든 감정들이 칼리가리치가 그린 레오와 그라지아노에게서 우리의 그림자를 발견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모두 삶의 방관자이자 떠나온 사람들을 위한 존재이고, 누군가의 잔재로 남겨진 사랑을 껴안으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이유 없는 슬픔을 만들어내기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향한 진정한 연민을 품게 만든다는 사실.
마지막으로 레오가 생각했던 '태어나지도 못한 모든 것과 영원히 죽은 것들까지, 그 모든 것을 받아 주는 바다'에 대한 사유는, 그의 깊은 고독이 결국 세상의 모든 슬픔과의 이어짐은 아니었을지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의 작은 고독은 결코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이 품고 있는 거대한 슬픔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요.
결국 칼리가리치가 우리에게 건네는 것은 '다르게 살아도 괜찮다'는 허락이 아니라 '다르게 살 수밖에 없는 우리'에 대한 깊은 이해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레오처럼 치열한 경주에서 스스로를 제외시키는 것이 때로는 가장 용기 있는 선택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선택이 만들어내는 고독이 결코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는 걸 말이죠.
어쩌면 우리는 모두 각자의 로마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멸종되어 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멸종의 과정에서도 샌드위치 한 입의 소박한 기쁨을 놓치지 않는 것, 잔재로 남겨진 사랑이라도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 이런 작은 긍정들이 모여 우리만의 여름을 만들어내는 게 아닐까요.
『도시의 마지막 여름』을 덮으며 깨닫습니다. '마지막'은 끝난다는 슬픔이 아니라, 그 마지막까지도 여름을 품은 따스함이 있다는 것을요. 우리의 존재가 비록 남은 것들로 이루어져 있을지라도, 그 자체로 누군가에게는 한여름의 기억이 될 수 있다는 조용한 위로로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분들이
자신만의 속도로 자신만의 방향을 향해 걸어가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반역인지 알아차리길 바랍니다.
결국 우리는 모두 떠나온 사람들을 위한 존재이면서 동시에
누군가가 떠나올 수 있도록 존재하는 사람들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