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솔 Feb 19. 2024

텔레비전 세대의 소회.

마라탕과 문방구 불량식품, 그 사이 텔레비전.

풍요의 시대에 사는 요즘 아이들이 참 부럽다.  


2003년부터 2008년까지

현역 초등학생이었던 나 때는 말이야.


문방구에서 파는 불량식품이 초등학생들을 키웠다. 지금이야 3천 원짜리 소금빵도 저렴하다며 사 먹지만, 그때는 500원만 넘어도 비싼 간식이었다. 원산지를 알 수 없는 500원짜리 닭껍질 튀김이나, 200원짜리 초코 쿠키, 식용 색소가 가득한 스탬프 캔디 따위가 인기였다. 문방구는 나름 시즌 메뉴도 출시했다. 여름이면 500원짜리 컵젤리를 팔았고, 겨울이면 호떡을 구워 먹을 수 있는 철판 기계를 입점시켰다.

그 당시 문방구는 뭐랄까, 초딩들의 백화점이었다. 학교 준비물뿐만 아니라 코 묻은 돈으로 사 먹을 수 있는 저렴한 간식과 눈 돌아가게 현란한 장난감까지 살 수 있으니, 당시 초딩들에겐 지금의 '여의도 더현대' 같은 느낌 아니었을까.

게다가 문방구는 늘 같은 학교 친구들로 넘실거렸다. 코인 게임기에 집중한 건우, 불량식품을 고르는 예림이, 백 원만 빌려달라고 하는 윤진이... 그 장면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정겹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삶의 수준 자체가 다르다. 


2020년대, 바야흐로 풍요의 시대다. 우리 '밀레니얼 초딩'이 '건물 사이에 강아지똥을 먹고 피어난 민들레' 같다면, 요즘 '알파 초딩'들은 '실내에서 좋은 것만 먹여 어여쁘게 키운 이름 모를 수입 식물' 같달까.

사촌 동생 시은이를 보면 아이들 삶의 수준이 올라갔다는 것이 체감된다. 요새 K-초딩은 친구들과 마라탕을 (무려) 각자 한 그릇씩 사 먹고, 후식으론 탕후루를 먹는다. 시험기간엔 메가 커피나 컴포즈 커피 같은 저가 카페에서 오레오 프라푸치노를 마시며 엘레강스하게 공부한다. 문방구에서는 불량 식품을 안 팔게 된 지 오래되었다.  

* 2013년부터 문방구의 식품 판매가 전면 금지되었다.

핸드폰은 또 어떤가! 밀레니얼 초딩들이 공짜폰으로 만족했던 것과 달리, 요새 아이들은 개인 스마트폰과 태블릿 PC로 각자 콘텐츠 소비를 즐긴다.




2000년대를 살았던 #밀레니얼초딩으로서, 요즘 #알파초딩과 가장 큰 격차를 느끼는 지점은 '가족과 보내는 여가 시간'이다.


내가 어릴 적에는 가족여행이 그리 일상적인 것이 아니었다. 요즘처럼 야놀자나 호텔스닷컴 같은 숙박 중개 앱이 없었으니, 여름 방학을 맞아 강원도 계곡에 놀러 가 텐트를 치거나, 시골집 같이 생긴 민박에서 하룻밤 자는 것이 보통이었다. 호텔은 아주 가끔 갈 수 있는 것이었다. 방학 때 콘도로 놀러 간다는 친구의 말을 듣고, 발음이 웃기다며 키득댔던 기억난다. 그 정도로 호텔이나 리조트의 개념이 낯설었다.


억수같이 비가 내리던 어느 여름밤, 가족들과 치악산에 갔다가 눈에 보이는 아무 민박집에 들어가서 방 있냐고 물어보고 하룻밤을 보냈던 기억이 있다. 아마 그 시절의 가족 여행은 더 힘들었을 것이다. 정확도가 떨어지는 네비게이션을 믿어야 하고, 스마트폰도 없으니 관광지 민박집에 직접 들러 방이 있냐고 물어봐야 했을 것이다. 맛집 후기 같은 게 어디 있었으랴, 그냥 눈에 보이는 식당 들어가서 적당한 식사를 했겠지.

국내여행도 이런데, 하물며 해외여행은 더 어려운 것이었다.


요즘엔 애들도 호캉스를 안다. 앱으로 저렴하고 좋은 숙소를 예약할 수 있어진 오늘날, 여행은 쉬운 것이 되었다. 해외여행도 핫딜로 비행기 티켓을 구한다면 저렴하게 다녀올 수 있다. 글로벌 여행 앱도 어찌나 잘 되어 있는지. 어쩔 땐 동남아 여행이 국내 여행보다 더 저렴할 때도 있다. 그렇다 보니 이젠 가족끼리 해외여행 한번 다녀오는 게 흔한 일이 되었다.


비단 가족여행뿐이겠는가. 키즈카페, 아쿠아리움, 놀이동산, 각종 전시회 등...

예전보다 손쉽고 저렴하게 버라이어티 한 패밀리 타임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정보와 기술의 발전으로, 가족끼리 주말에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확장되었음을 느낀다.


2000년대 낭만을 담은 뉴스 장면 캡처


밀레니얼 초딩이었던 나의 어릴 적, 가족들과 보내는 가장 보편적이고 행복한 여가 시간은 바로 텔레비전 시청이었다. 18평짜리 우리 집에는 무려 40인치 TV가 있었다. 2000년대였으니까 획기적으로 큰 브라운관이었다.

아버지는 거실의 절반을 차지하는 큰 TV로 늘 가족 영화관을 열었다. 사실 별건 없었다. TV에 HDMI선으로 데스크톱을 연결한 뒤 다운로드 받은 영화를 재생하는 식이었다. 온 집의 불을 다 끄고 가족들이 옹기종기 TV 앞에 모여 앉는다. 흔한 주전부리도 없다. (어쩌면 당연하다. 배달앱도 없었으니까.) 각자 편한 방식으로 거실에 앉아 영화에 집중한다.


아버지는 유료 포인트를 구매해 영화를 다운받았다. (당시엔 저작권 상식이 부족해서, 그게 불법인 줄 몰랐다. 반성한다.) 운 좋게 개봉한 지 얼마 안 된 영화도 보기도 하고, 어머니 아버지가 젊은 시절 영화관에서 봤던 옛날 영화를 보기도 했다.


우리 가족은 소파에 앉아 타이타닉호에 탑승했다가, 미국 서부 시대 총질을 구경하고, 고담시티에 갔다가, 호그와트에 들렀다가, 우주에서 히치하이킹을 하고, 미국의 거대한 옥수수밭에 나타난 미스터리 서클을 만났다.


알파세대 초딩이 가족여행으로 베트남에 간 것에 비하면 허름한 시간일지도 모른다. 가족끼리 생경한 경험을 함께하는 것만큼 재밌는 건 없을 테니까.

그럼에도 우리는 영화를 통해 세상을 구경했고, 네 명이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구글링으로 찾은 우리 집 TV와 가장 유사한 모델. 2000년대에 구매한 프로젝션 TV였다.


딸들이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가족 영화관이 열리는 빈도는 줄어들었다.

덩치가 커진 동생과 나는 더 이상 좁은 거실에서 편하게 영화를 볼 수 없었다. 취향도 생겨 버렸다. 친구와 문자를 하고 싶었고, 따로 보고 싶은 영상이 있었다. (예를 들어 동방신기 무대 영상)

TV는 한동안 아버지만을 관객으로 두다가, 2015년을 기점으로 우리 집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영화 한 편이 만들어줬던 가족과의 유대감, 그리고 이야깃거리를 기억한다. 텔레비전은 우리 가족의 비행기였고 놀이기구였고 호캉스였다.




네 가족에서 세 가족이 된 뒤, 종종 가족 영화관을 재오픈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얼마 전에 엄마, 동생과 모여 Netflix의 ‘종말에 대처하는 캐럴의 자세’라는 30분짜리 애니메이션을 틀었다. 그런데 10분도 안 되어 각자 폰을 들여다 보는 바람에 가족 영화관 상영은 싱겁게 끝이 났다. (망할 도파민...)


가족들과 영화 한 편을 끝까지 본 지도 오래됐다. 이제는 영화관에 가야지만 가족 영화관이 된다. 영화 티켓은 또 왜 그리 비싸졌는지...


내가 가정을 이룰 때쯤엔 무엇이 TV의 역할을 해줄 수 있을까.

그때쯤이면 각자 애플 비전 같은 웨어러블 기기를 착용하고 각자 방에 갇혀 혼자 킬킬대고 있으려나.

역시 내 아이에게는 중학교 입학 때까지 스마트폰을 사주지 말아야겠다고, 다시 한번 결심한다.






주간 에세이 {이솔 올림}

인스타도 놀려오세요

@solusism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