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에 무던한 인간의 에피소드
{EP.5}
역시 내 예상이 맞아떨어졌다. 25만 원짜리 성수동 월세방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충격적이었던 모양이다. 화장실이 밖에 있었다는 월세방의 비밀을 밝힌 에세이 한편만으로 조회수 17만 회를 기록했으며, 며칠간 DAUM 메인화면에 떠있었다. 하루 4만 조회수를 찍기도 했다. 기대보다 많은 관심을 받았으니 변명의 시간을 갖고자 한다. 화장실이 집 밖에 있어도 괜찮았던 나름의 세 가지 이유가 있다.
나는 화장실에 그다지 민감하지 않은 사람이다. 모든 일은 본질이 중요하는 INTP으로서 화장실의 본질인 ‘볼일’만 볼 수 있다면 그걸로 오케이다. 시멘트로 만들어진 납작한 변기에 앉아 볼일을 본 뒤 바가지로 직접 물을 내려야 했던 미얀마의 공중변소도 겪어봤고, 함양 산골짜기에 위치한 증조할머니네 푸세식 화장실도 겪어봤다. 어떤 유명 가수는 절대 집이 아닌 곳에서는 화장실을 쓰지 않는다고 하던데, 나는 이런 부분에서 예민하지 않다. 내가 화장실에 무던한 인간이란 걸 깨닫게 한 몇 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하겠다.
대학교 2학년 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떠났다. 여름방학을 맞아 대학 동기 언니와 비행기 티켓이 저렴한 평일을 노려 무려 왕복 20만 원에 떠난 대만 여행이었다. 비행기 값을 저렴하게 하느라 무려 7박 8일 일정이 되었다. 문제는 숙소였다. 7박이나 묵자니 저렴한 숙소가 필요했다. 우리가 묵고자 했던 대만의 명동이라고 불리는 시먼딩 지역의 호텔은 비싼 편이어서 최대한 저렴한 호텔을 물색했다. 내가 카톡으로 보낸 가성비 호텔을 보고 친구는 말했다. ‘난… 화장실이 제일 중요해…’ 충격받았다. 내가 숙소를 고르는 데 있어서 화장실은 전혀 고려 사항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저 존재하기만 하면 OK였다. 화장실은 그냥 싸고 씻을 수 있음 되는 거 아니던가? 물론 그 친구가 엄청난 호화 화장실을 바란 건 아니다. 일정 수준의 넓이와 퀄리티를 가진 화장실을 바랐을 뿐이다. 아마 이때 처음 내가 다른 사람보다 화장실에 그닥 민감한 사람이 아니란 걸 자각하게 된 것 같다.
23살 땐 동남아 배낭여행을 떠났는데, 미얀마와 캄보디아를 거쳐 마지막으로 들른 태국에서 별 기대 없이 갔던 빠이(PAI)라는 지역에 한 달 동안 눌어붙은 적이 있다. 빠이는 치앙마이에서 미니 벤 버스를 타고 갈 수 있는 여행지인데, 배낭여행자들의 늪으로 유명하다. (아주 간략히 말하자면 빠이 특유의 여유로움과 히피스러움 때문) 그 사실을 알았지만, 긴 배낭여행에 지쳤던 나는 며칠만 구경하고 서울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글쎄 한 달 동안 눌러앉아버렸다. 'My Home'이라는 뜻을 가진 '반마이삭'이란 게스트하우스에서 지내면서, 스쿠터를 타고 하릴없이 돌아다니는 빠이에서의 삶을 사랑하게 되었고 또 게하의 호스트를 (인간적으로) 좋아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여하튼 지금 생각하면 아름다운 추억인데 지금 와서 다시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면 거기 화장실도 심상치 않았다. 야외에 있었기 때문이다. 정원을 낀 ㅁ 모양의 태국식 목조주택이었던 반마이삭은 큰 방 두 개를 도미토리로 운영했다. 하나는 여자남자 공용, 또 하나는 여성 전용이었다. 나는 주욱 공용 도미토리에서 묵었다. 총 10명이 묵을 수 있는 이 호스텔의 인원을 충당하기 위해 화장실과 샤워실은 당연히 집 밖 야외에 추가적으로 있어야만 했다. 집이 둘러싸고 있는 정원으로 나가보면 시멘트로 지어진 다소 무너질 것 같은 화장실 겸 샤워실이 네다섯 개 있었다. 크기가 매우 좁아 샤워하다 보면 변기에 채일 때도 있었지만 불편하다는 생각도 불만도 전혀 없었다. 그냥 너무 당연한 거였다.
24살 때는 청춘을 즐기기 위해 제주도로 떠났다. 게스트하우스 스텝으로 일하며 숙식을 제공받았다. 게하 스텝 4명과 매니저 2명, 그리고 가끔 들르는 사장님까지 대략 7명이 한집에 살았다. 건물의 1층과 2층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3층엔 스텝들이 묵는 숙소가 있었다. 방 4개와 화장실 2개가 있는 꽤 넓은 구조였다. 그런데 안방 화장실은 군데군데 타일이 깨지고 유리가 깨져있어 사용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사실상 거실 화장실 1개를 성별이 다른 7명이 함께 써야 하는 상황이었다. 텍스트로 적으니 끔찍한 상황처럼 들리지만, 그 당시엔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거기서 샤워를 하고 용변을 보고 세안을 하고 머리를 했다. 불편하다거나 지저분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제주 생활이 익숙해질 때쯤 새로운 스텝 언니가 들어왔다. 언니는 입주하자마자 화장실을 보고 경악했다. 이렇게 많은 인원이 화장실을 공유하는 것을 보고 경악한 다음엔 어떻게 이런 더럽게 쓰냐고 잔소리를 했다. 그리고 두 손을 걷어붙이고 변기부터 화장실 타일까지 청소를 했다. 그 언니가 아니었으면 몰랐을 거다. 이 화장실이 남들에겐 경악스러울 수 있다는 걸 말이다. 이때도 생각했다.
‘화장실이 화장실 역할만 하면 되지 뭐…’
물론 화장실이 집 밖에 있으면 물리적 귀찮음이 존재한다. 샤워하고 나서 발가벗고 화장실을 나설 수 없을 것이고, 밤에는 화장실을 나서기 무서울 것이다. 특히 추운 겨울엔 차가운 복도를 지나쳐 화장실 가기가 미칠 듯이 귀찮을 것이 뻔했다. 그런데 이러한 귀찮음은 월세 25만 원에 모두 상쇄되는 정도였다. 나는 돈을 아끼기 위해 번거로움을 기꺼이 감수할 수 있다. 슈퍼 두 군데를 돌아 더 저렴한 양배추를 구매하고, 가끔은 한 여름이어도 아이스에 추가되는 오백 원이 아까워서 핫 커피를 마신다. 금액이 적든 크든 돈을 아낄 때마다 쾌감을 느끼곤 하기 때문에 스스로 젊고 명랑한 구두쇠 측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첫 자취니 내 지갑으로 주거비용을 내는 것도 처음이다. 월세를 12로 곱해서 내가 이 집에 살기 위해서 1년에 얼마나 쓰게 될지 계산해 보았다. 아무리 월세가 싸도 주거비용으로 목돈이 사라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역시 월세는 싼 게 답이야'
나는 마음이 불편할 때면 항상 내가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을 하는 편이다. 그래서 내가 느끼는 감정이 타당한 것인지 부당한 것인지 판단한다. 아주 단순한 예를 들자면, 시험공부가 하기 싫어 짜증이 날 때면 ‘나는 왜 공부가 하기 싫을까?’ ➣‘공부는 누구나 하기 싫은 것이지’ ➢ ‘그럼에도 지금 나는 학생이니까 공부를 해야 해’라고 생각하는 식이다.
월세방을 계약하기 전에 생각은 이러했다.
'화장실이 밖에 있는 자취방은 좀 그래…’
‘좀 그래…’라는 말에 숨겨진 진짜 WHY를 찾으려는 시도를 해보았다. 화장실이 밖에 있으면 앞서 말한 물리적 귀찮음이 존재한다. 하지만 모든 귀찮음은 저렴한 월세로 상쇄가 가능했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 집이 ‘좀 그런가’. 숨을 참고 내 맘속 깊은 곳을 잠수해 진주 한 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솔이의 깊은 심해 속~
첫 자취방인 만큼 친구를 초대해 집들이도 해보고 싶고, 예쁘게 꾸며 여기저기 자랑하고 싶기도 한데. 부끄러웠다. 그리고 월세가 25만 원이라는 사실을 밝힌다면 친구들은 분명 어떻게 그렇게 싸냐고 물어볼 테고, 화장실이 밖에 있다고 솔직하게 말하면 나를 불우한 친구로 생각하지 않을까... 내 깊은 맘속에서 부끄러움이 빼꼼히 고개를 들었다.
결국 다른 사람을 과도하게 의식해서 느끼는 부끄러움만 뺀다면, 집 밖 화장실은 나에게는 별다른 문제가 아니었다. 앞서 말했듯 전 세계 별의별 화장실도 문제없이 사용한 '화장실 무던 인간'이다. 그리고 불편함을 감수해 돈을 아끼는 걸 좋아한다. 가끔 나의 마음이 주춤하는 이유가 ‘다른 사람의 시선’ 때문이라면, 나는 오히려 더 밀어붙이는 경향이 있다. 의도적으로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다.
'남들과 다르다는 게 걱정되지만, 내 가치관에는 맞는 집'
그렇다면 더욱이
이 집이 나와 맞는 집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감사 인사
지난 6월부터 연재 중인
[25만 원짜리 서울살이 시리즈]가 20만 뷰를 기록했고 200명의 구독자 분들이 생겼습니다!
하루종일 마음이 둥둥 떠다녔습니다. 여러모로 감사하다는 말씀 전하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부지런히 집필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_()_
솔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