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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산균 Nov 09. 2017

숨을 곳이 필요해

Liu Bolin_Invisible Man

겨울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파리에서 주말시간을 잘 보낼 수 있는 곳은 단연 퐁피두 센터이다. 지금 퐁피두의 어린이들을 위한 아틀리에에서는 리우 볼린의 작업이 하나의 놀이터처럼 펼쳐져있다. 놀이터이기는 하나, 리우볼린의 카모플라쥬 작업체험장과 같은곳이다. 물론 아이들은 그게 누군지 전혀 관심없다.


공간 안쪽 벽에는 일종의 지도와 같은 안내문이 붙어있다. 천으로 만든 각양각색의 옷이 바구니에 담겨있는데, 그 옷을 입고 어느 벽과 바닥에 서야 위장을 할 수 있는지 표시해 놓았다



공기를 넣은 커다란 코끼리 모양의 동굴 안으로 들어가면 천장에서 쏘는 프로젝터로 바닥에 다양한 사진이 나온다. 상점의 진열대, 자연의 모습, 국기들 등등 리우 볼린이 했던 작업들을 찍은 사진이다.






74년생 중국 예술가 리우 볼린은 전세계적으로 열광적인 주목과 찬사를 받고 있다. 굳이 그의 나이와 국적을 밝혀야 하는 이유는 그가 작업을 시작한 특별한 주제의식 때문이다. 그가 카모플라쥬(위장) 작업을 시작했던 2005년은 도시화로 인한 정부의 무분별한 철거가 이어졌고, 시장경제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2000만명이 실직을 당하기도 한 해였다. 정부에 대한 항의의 의미로 시작한 그의 작업은 급격한 사회변화 속에 혼란스러운 중국인들의 상황을 대변해준다.


이에 앞서, 80년대의  제5세대라 불리는 일련의 작가들은 정부의 검열과 감시로 인해 자유로운 생각과 표현을 몰살당한 채, 그를 피하기 위한 자신만의 독특한 방법과 형식적 실험으로 중국 뉴웨이브라는 성취를 이루어냈다. 위에민준과 같이 자조적인 웃음을 띤 똑같은 사람들의 모습, 장 샤오강의 장례식과 죽음의 이미지들은 급격한 변화를 겪는 중국인으로서의 흔들리는 정체성에 대한 성찰이었다. 분명 90년대와 2000년대의 중국작가들은 존재론적 물음에 직면하고 있었던 듯하다. 그리고 15년여 뒤. 이제 아트신에서 장샤오강이나 위에민준은 과거의 중국 예술이 되어버렸다. 아마도 그들이 좀 더 본질적인 문제의식, 더 많은 이들이 공감할 만한 주제들도 옮겨가지 못했거나, 형식적인 변화나 실험에 성공하지 못해 보는 이들에게 피로감을 주었기 때문이리라.


리우볼린은 중국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시작된 문제의식을 인간의 본질적 상황과 세계의 다양한 이슈들로 옮기는데 성공했다.  도시에서 사라지다 시리즈에서 볼 수 있듯, 911이후의 미국, 지구 온난화로 인해 해수면이 상승해 몇십년 뒤면 사라질 베니스, 이미 폐허가 되어 없어져버린 과거의 영광 폼페이, 그리고 파리를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그의 작업은 매우 아날로그적인 손색칠(!)을 통해 완성되며, 긴 준비작업을 거친다. 감쪽같이 잘 숨어야하는데, 이 완벽주의 기획자 덕분에 10시간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미지 출처: 파리 유러피안 사진관 MEP/https://www.mep-fr.org/event/liu-bolin-ghost-stories/)



분장,

할로윈을 맞이해 흉악스런 괴물분장을 했다고 치자. 나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단지 나의 화장과 의상이 바뀌었을 뿐인데, 나는 지나가는 이들을 두려움 속에 빠뜨릴 만한 능력자가 된 듯 행동한다. 분장은 나의 결점을 숨기는데 매우 용이한 도구이다.

 

위장,

그러나 리우 볼린이 하는 작업은 분장이 아니다. 위장이다. 위장은 단지 나를 숨기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위장을 통해 우리는 적을 발견한다. 군인들의 의상이 흙과 수풀이 가득한 전장에서 자신의 몸을 숨기는 동시에 적의 동태를 발견하기 위한 것이듯이. 그리하여 리우볼린은 국가라는 거대한 적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고, 암을 유발하는 물질이 가득 든 슈퍼마켓의 식품들을 고발하고, 환경문제는 물론 사라져가는 과거에 대해 고민해볼 것을 촉구한다.


그의 비판은 새로운 슬로건을 만들거나 강렬한 이미지를 창조하는 방법-이제까지의 프로파간다가 해 왔던-이 아닌, 자신이 비난하고 있는 그 적 속으로 몰래 숨어들어가는 것이다. 그 안에서 자신을 숨긴 채 살아가야만 하는 고통스런 누군가에 대한 제의이자, 당신이 보고있는 장면이 살아있는 '생명'을 포함하고 있음을 재차 확인시킨다. 처음에는 숨은 그림을 찾아내는 놀이로 가볍게 시작하겠지만, 그가 내미는 장면들은 결코 가볍지 않다.


삶의 투쟁이라는 경험이 견고한 테크닉과 깊은 사색에 녹아들어야 진정한 예술이라고 말했던 그의 최근 작업은 명품브랜드들과의 콜라보로 이어지고 있다. 유명해진 작가의 당연한 수순으로 읽어야 할지, 아니면 그 안에서 새로운 그 만의 의미와 주제를 찾아낼 수 있을 지는 조금 더 지켜보아야 할 것 같다.


당당하게 앞으로 나가 싸우기엔 너무 거대했던 적에 대항해 소심하게 위장해 싸우던 그들은

이제 소비라는 적 혹은 동반자와 함께 편안하게 살아가는 도시인들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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