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니아와 러시아의 전쟁이 점입가경이다. 모두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될 것이라는 예상에도 불구하고 우크라니아의 선방으로 러시아가 당황하고 있다.
며칠이면 끝내리라 작정을 하고 북, 동, 남부 전정면 동시 공격을 하였던 러시아는 공격이 여의치 않아지자 북부 키이우 방면의 주력군을 철수시켜 재편성을 한 뒤 동부로 이동시켰다.그곳에서 돈바스 북쪽의 돌출부를 제거해서 드니프로 강 동쪽을 장악하고 휴전협상의 주도권을 가질 목적의 2차 대공세를 하는 중이나 뜻대로 되지 않고 있다.
5월 9일 멋진 전승기념행사는 이미 물 건너간 것 같고 오히려 전면전 선언을 통해 더 부담스러운 확전으로 전환 여부를 고민하는 것 같으나 미국의 비롯한 서방국들의 우크라 지원도 본격화되어 선택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세계 2위의 군사력을 가졌다는 러시아가 왜 이렇게 고전을 하는가? 명분 없는 침략전쟁, 안일한 전쟁계획 및 나약한 전투의지, 우크라니아 젊은 지도자의 리더십과 국민 단결 등 여러 가지 이유를 생각할 수 있으나, 재미있는 이유 하나를 추가한다. 그것은 라스프티챠의 저주다.
라스프티챠는 러시아, 벨라루스, 북부 우크라니아 일대에서 봄가을에 땅이 진흙탕으로 변해 통행이 어려워지는 현상으로, 봄(3~4월)에는 해빙으로, 가을(10~11월)에는 해양성 기후로 가을비로 인해 대지가 뻘처럼 진창이 되는 것을 말한다.
2월 초 기계화부대 위주로 기습적 공격으로 우크라니아를 와해시키겠다는 러시아의 의도가 북경 동계올림픽이 발목을 잡았다. 나름 중요한 우방국인 중국의 입장을 고려해 공격 시기를 늦추어 올림픽이 끝난 뒤 2월 24일 개시했는데 중대한 오판인 것 같다.
방어준비가 덜 된 우크라니아를 계획대로 2월 초에 기습공격을 했으면 어땠을까? 탱크와 장갑차가 해빙이 덜된 야지를 누비며 기동전을 하여 우크라니아에 심리적 충격을 주면 쉽게 전쟁을 마무리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실제 공격을 시작한 2월 하순은 이미 해빙기가 시작된 것이다.
라스프티챠에 탱크나 장갑차 같은 기계화 부대들은 야지 기동을 못하고 포장도로 위주로 기동 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우크라니아 보병들은 도로만 막고 쟈브린 같은 대전차화기만 가지고도 러시아 기계화부대를 능히 막아내고 있는 것이다.
라스프티챠는 이번에 러시아 군대만 당한 것이 아니다. 나폴레옹의 군대도, 히틀러의 군대들도 모스크바로 가는 길목에서 이 진흙뻘에 빠졌었다.나폴레옹의 군대는 러시아군의 청야 전술에 말려 가을 라스프티챠에 빠져 전투력의 1/3을 상실하고 모스크바에 무혈입성했지만, 겨을 동장군에게 기습을 당해 거의 전병력을 잃고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이 모스크바 원정은 나폴레옹의 몰락을 가져오는 중요 변곡점이 되었다.
*청야전술 : 방어군 측에서 자발적으로 모든 군수물자와 식량 등을 없애버려 적군이 보급의 한계를 느끼고 지치게 만드는 전술이다.
히틀러의 군대는 무리한 공격으로 패전을 자초하였다. 폴란드를 전광화석으로 점령한 중앙 집단군은 모스크바를 목전에 두고두고 인접부대와 전선 조정,병참 등을 위해 6주간 정군하여 귀한 시간을 낭비하였다. 이윽고 공격을 재개했으나 일기가 불순하고 기온이 급강하하자 군은 철수를 건의하였으나 히틀러는 무리한 공격명령을 내렸다. 라스프티챠 속에서도 악전고투하며 11월 하순 모스크바 전방 40km까지 진출하였고 정찰병은 크렘린을 육안 관측한 거리까지 진출하였으나 갑자기 기온이 영하 40도로 급강하하였다. 동계작전 준비가 안 된 독일군은 더 싸우기 어려워졌다. 공세가 중지되었고 패전의 길로 들어섰다.
나폴레옹과 히틀러의 막강한 군대들도 이 라스프티챠와 추위 앞에 무릎을 꿀고 말았다. 한 때 소련 연방국이었던 우크라니아의 기상과 지형 특징을 간과하고 상대방을 경시해서 전승의 기회를 잃어버린 지금 푸틴의 마음은 어떨까? 푸틴이 라스프티나의 가르침을 알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교만한 침략자에게 이미 저주가 내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