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니아 전쟁의 파장이 만만치 않다. 우크라의 NATO 가입을 저지시키고 남부 러시아 흑해의 주도권을 확고히 하려는 푸틴의 노골적인 침략도발에 세계가 분노하고 있다. ‘UN의 러시아 철군 결의안’에 대해 압도적 찬성 채택은 물론 좀처럼 이런 분쟁에 개입하지 않던 중립국인 스위스, 스웨덴도 러시아 제재와 우크라이나 지원에 동참했다.
더 눈여겨 보이는 것은 달라진 독일의 모습이다. NATO의 핵심 국가였으나 비교적 온건한 대소, 대중 전략을 유지해오던 국가였었다. 양차 대전의 발발국이었다는 점과 독일 통일,소련연방 해체 등의 여건을 고려했을 것이고,유태인 학살에 대한 책임의식도 있었을 것이다. 경제규모에 비해 적은 규모의 군사력을 유지하고 분쟁 개입을 자제하던 독일이었지만 이번에 달라졌다.
러시아의 침공이 유럽의 역사적 전환점이 됐었다고 선언하며 군사력 강화를 위해 GDP 2% 이상으로 국방비 증가를 천명한 2월 27일 슐츠 총리의 국회연설에 의원들은 기립 박수로 동의했다. 화염병으로 맞서는 우크라이나를 향해 핵무기 운운하며 공격하는 푸틴의 무모한 도발이 잠자던 독일의 전투본능을 끌어낸 것이다.
올바른 판단이 아니었나 생각하면서도 그래도 찜찜한 면이 있음이 솔직한 심정이다. 지난 역사가 그것을 말한다. 독일은 보불전쟁 이후 유럽의 최강 군사대국으로 등장한 이래 2차 세계대전까지 유럽의 전장에서 주역이었다는 점과 이를 뒷받침하는 독일군의 뛰어난 전략전술과 용병술이 상기된다. 특히 악역이 더 많았기에...
1차 세계대전은 독일이 신흥 제국주의 국가로써 기득권 국가인 영국과 프랑스에 도전한 형국으로 프랑스를 선공하며 전쟁을 일으켰다. 지정학적으로 불리한 여건에서도 프랑스를 격파하고 무력한 소련군을 탄넨베르그에서 세계 전사상 불멸의 승리를 거두었다. 전쟁은 확대되어 영국은 물론 마국까지 개입하게 되어 독일은 중과부적으로 결국 항복을 하였다.
2차 세계대전은 1차 대전 패배에 따른 국민 불만을 이용한 히틀러의 선동과 주변국들의 안일무사가 불러온 전쟁이다. 앞뒤에 적을 둔 독일은 어려운 양면 전쟁을 시작했으나 전격전이라는 뛰어난 군사전략을 구사해 프랑스와 소련을 유린하고 영국을 무너뜨릴 정도였으나 미국의 참전으로 또다시 패배했다.
이 두 전쟁에서 독일은 대전략 차원에서는 실패하였으나 뛰어난 용병술과 군사전략, 특히 전격전으로 상징하는 기계화 전술, 후티어 공격 전술,임무형 전술 같은 전략전술과 일반 참모 제도,동원 제도 같은 군사제도는 불멸의 작품으로 오늘날 현대의 군에도 그대로 적용될 정도다.
또한 민주주의가 정착된 독일에서 쉽지는 않겠지만 제2의 히틀러 같은 인물이 등장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히틀러는 국민 심리와 절차적 합법성을 교묘히 이용하여 권력을 공고히 했고, 게르만 민족의 부흥이란 캠페인으로 지금의 푸틴처럼 체코와 폴란드를 병합하며 세계를 전쟁으로 몰아간 것이다.
합법적인 자도자 들도 위기 앞에 그에게 주어진 권력이 어떻게 변할지 본인조차도 잘 모른다. 대중들은 괴벨스 한 명에게 인도되어 전쟁의 구렁텅이로 빠질 수도 있다. 이제 잠재 군사강국 독일에게 ‘잠재’란 모자가 벗겨진다. 이들의 능력이 세계평화를 위해 선용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