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해야 사랑받는다'는 오랜 믿음
타인 지향의 삶을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타인과 평준화를 이룰때 나의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말한다. '추구해야할 가치는 모두가 외재적 가치뿐이다'라고 우리는 학창시절 내내 주입을 받았다. 학교성적으로 등수를 나누고 꿈을 이야기 하라고 하면 멋있어 보이고 돈과 권력이 있어 보이는 것들을 나열하기에 바빳다.
그 어린아이가 수능을 보는 고3이 되면 학교의 서열화된 등급표로 자신의 자존감의 크기를 만든다. 그리고 다시 사회에 나가면 연봉으로 등급을 나눈다. 모든것이 타인의 기대에서 벗어나지 않고 내면의 번아웃은 끊임없이 만들어진다. 우리가 타인의 기대에서 부응하는 것을 멈추고 그 경마장의 말과 같은 경쟁에서 뛰쳐 나왔을때 내면의 행복을 찾기 위해서 나온다고 외치면 모두가 열외된 사람들이라고 비웃고 조롱하기 바쁘다.
그들도 조롱의 대상이 필요하다. 그래야 비교우위를 통해서 자신의 안전함을 보장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도 곧 어느순간에 자신의 내면의 번아웃이 오기 시작한다. 비교우위의 상층이 아닌 하층으로 언제든지 정치 경제적 상황변화에 따라서 내려갈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더욱 텅빈 약자를 찾아서 여기저기 커뮤니티를 헤메면서 사냥을 시작한다. 그 사냥은 '자아해체 사냥' 이다. 내가 없이 타인에 대한 비난으로 자기의 비교우위를 느끼는 안타까운 정신이상자들이다.
타인의 기대감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내 직관과 내면의 부름에 솔직해 지는 것이다. 그것은 결코 외부의 기준이 아닌 자신의 기준에서 부르는 일종의 콜링이다. 그 콜링을 받아들이고 부르럽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한발짝 전진하다 보면 어느새 내면의 기준을 만족하고 충만한 삶을 살게 된다. 하지만 그 과정은 무척이나 외롭고 고단한가?
왜 기준의 틀에서 벗어나면 외롭고 고단해지는 것일까? 그것은 이미 사회적 자아와 본인의 자아를 구분하지 않고 물리적으로 사회적 자아에서 나왔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사회적 자아를 중심으로 자신의 내면적 자아를 평가하기 때문이다. 즉 완전한 사회적 자아와의 단절을 통해서 자신의 개인적 자아를 콜링이 부르는 곳으로 가야한다. 그것이 중년이후에 충만한 감정을 느끼고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의 공통점이다.
그 방법은 무엇일까? 내가 내 자아의 창조주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내가 가는 길이 홍해가 열리듯이 열린다고 상상하고 그일을 꾸준히 하는 것이다. 경제적 불안정성? 사회적 무시? 그것 자체가 사회적 자아에 얽매여있는 것이다. 이것을 뒤늦게 발견하는 시기가 대부분 직장 초년생들이다.
직장초년생 시절에 겪는 공황장애는 다음과 같다. 부모의 지원아래 아무생각없이 공부를 하고 대학을 갔다. 그것도 취업이 잘되는 전공으로 부모가 선택해준다. 그리고 기업의 스펙에 맞추어서 본인을 만들어낸다. 온갖 부캐의 캐릭터와 능력을 과포장하면서 취업을 한다. 그 이후에는 더이상 길이 안보인다. 어릴때는 대학을 목표로 대학에서는 취업을 목표로 했는데 막상 취업하고 나니 더이상의 목표가 안보인다.
그것은 가짜목표이기 때문이다. 한번도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해본적이 없다. 내면의 진짜 자아와 어떤 이야기를 해본적도 없다. 책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구성지어 보는 행위도 한적이 없다. 전공은 오로지 성적으로 맞추어지고 취업률로 대충 정한다. 바로 그시기에 취업을 한 시점에서 내면의 자아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 내면의 자아가 다시 물어본다. '넌 나에 대해서 한번이라도 고민해본적 있냐고?' 그때 자신은 타인의 기대에 부흥해서 살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방황한다. 성급한 퇴사를 하거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도파민을 자극하는 투자행위에 몰두하거나 체념하고 일을 한다.
'타인의 기대에서 나를 회복하고 싶다' 라는 강한 욕망이 생긴다. 그 회복이 다시 사회적 기준에 맞추어지면 우리는 애써 나온 트랙을 다시 들어가는 것이다. 그것을 하는 방법이 무엇일까?
첫째로 나는 갈라파고스에 사는 수도승이라는 맘으로 자기일을 찾는 것이다. 자신이 언제 가장 행복했는지 그것을 다시한번 찾아본다. 그리고 그것이 돈이 안되도 남들이 무시해도 가슴이 뛰는 것이면 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 성장아래에서 내적자아가 커가는 것을 보면서 충만함을 얻는다
둘째는 타인은 나를 질투한다 생각하는 것이다. 타인의 비난과 조롱을 질투로 여긴다. 내적 자아의 여정을 찾아야지만 타인의 기대에서 벗어날수 있다. 모든 행동과 사유는 내 자신의 것이고 나의 내적자아다. 타인은 그 내적 자아를 찾은 나를 질투하고 있다 생각한다.
마지막으로는 결국 우리는 맨손으로 태어나서 맨손으로 죽는 존재라는 것을 인식한다. 모든 관계는 언젠가 끊어지고 그 끊어질 관계를 통해서 현생을 낭비하지 말자고 생각하는 것이다. 오로지 나의 직관과 감정 마음이 시키는 여정을 따라가보는 것이다.
사회적 기준에서 사는 것은 언제나 무너질 모래성을 쌓는것과 같다. 그 파도는 언제 어디서 올지 모른다. 타인의 기대감에서 나를 회복하는것. 그것이 내적자아의 성장을 가질수가 있고 물질을 떠난 충만함을 이룰 수가 있다. 타인의 기대에서 회복하는 방법은 바로 내적자아의 여정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 자아의 탄생들이 성장가도의 대한민국에서 디플레 초입으로 저물어가는 대한민국의 사람으로서 겪어야할 숙명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