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하원을 맡아주시는 부모님과 저녁 6시에는 바통 터치를 해야 했다. 8시부터 5시까지 근무하는 스케줄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8시까지 출근하려면 늦어도 7시에는 수업을 시작해야 한다. 나는 평소에 9시 반이면 자니까, 7시 수업에 충분히 올 수 있을 것 같았다.
혹시 선생님이 못 일어나지는 않을까 살짝 걱정되었다. 1대 1 강습 10회를 결제하기 전에 선생님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할 수 있다며, 이번 기회에 아침 기상 습관을 잡아보겠다고 말했다. ‘이번 기회에’라고 말한 것에서 눈치를 챘어야 했을까. 예전에는 그렇게 일찍 일어나지 않는데, 생활 패턴을 바꾸어 보겠다는 의미가 아닌가.
역시 사람은 잘 바뀌지 않았다. 특히 아침 기상 시간 같은 것들은. 시작할 때는 주 2회 수업을 받으니 5주면 강습이 끝날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선생님이 아침에 잘 일어나지 못하면서, 자꾸 수업이 파투 났다. 일정은 점점 늦춰졌다. 열 번 중 여섯 번 수업을 받았고, 아직 네 번이 남았다.
“죄송해요…이미 도착하셨죠? 어쩌죠…”
1대1 레슨을 잡은 날이면 수업 시작 20분 전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그때쯤 선생님에게 전화가 오면 그날 강습은 파투였다. 필라테스 센터에 오고 있다면 굳이 나에게 전화할 필요가 없으니까. 일주일에 두 번씩 레슨을 받겠다는 야심 찬 계획은 금세 무너졌다. 일주일에 하루도 운동을 못하는 날도 있었다.
다섯 번째로 수업이 파투 났을 때, 필라테스를 그만둘까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솟았다. 그룹 레슨을 받을까 고민해 봤지만, 7시 수업은 최소 인원이 채워지지 않아 취소되는 경우가 많았다. 점심시간에 열리는 그룹 레슨은 2주 전에 핸드폰을 손에 들고 대기하다가 자정이 되자마자 신청하지 않으면 예약이 불가능했다.
“저 레슨 그만 하고 환불받을게요.”
퇴근하면 집에서 나를 반기는 아이들 얼굴이 떠올랐다.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간 첫째와 두 살 터울인 둘째는 만 보를 걸어도 지치지 않는다. 어찌나 에너지가 넘치는지 마치 펄떡이는 물고기들 같다. 반면 나는 나이가 들수록 급격하게 체력이 떨어졌다. 아이들과 더 잘 놀아주기 위해서! 2022년 5월부터 필라테스를 시작했다. 이제 필라테스는 그만두었지만, 그렇다고 운동을 그만둘 수는 없었다.
문득 독서 모임에서 만난 지인의 말이 스치고 지나갔다.
”제가 이십 대에는 엄청 약골이었어요. 살아보려고 시작한 거였거든요. 그러다 보니 어느새 8년 차가 됐어요.”
지인은 유치원을 다니는 아이의 엄마이다. 육아와 가사 노동을 하고, 1년에 200권 가량 책을 읽고, 여러 독서 모임에 참여하고 있으며, 자영업 두 가지를 병행한다.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어 쓰면서도 에너지가 넘친다.
혹시 나도 크로스핏을 열심히 하면, 지인처럼 에너지가 많아질 수 있는 걸까? 크로스핏 이라는 단어가 눈앞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느낌이었다. 지도를 검색해 보니 마침 회사 출근길에 크로스핏 센터가 있었다. 시간표에 6시 반에 시작하는 수업이 있었다. 필라테스처럼 자꾸 취소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어 고객센터에 문의했다.
“당연하죠. 6시 반 타임 항상 열립니다.”
‘항상’ 열린다고? 크로스핏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꾸준히 아침에 할 수 있는 운동이라니 합격! 나는 참으로 순진하게도 크로스핏이 어떤 운동인지 한 번 찾아보지도 않은 채, 회사 근처 센터에 무료 체험을 신청했다.
☑️ 크로스핏은 어떤 운동인가요?
- 크로스 트레이닝과 피트니스를 합쳐서 만든 말이에요. 유산소와 근력 등 여러 종목을 섞어서 짧은 시간에 높은 강도로 운동하는 방법을 말해요. 다양한 근육을 골고루 발달시키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 원래는 2000년 미국의 그렉 글래스맨이 만든 ‘크로스핏’이라는 브랜드였는데요. 지금은 (마치 포스트잇처럼) 운동법을 가리키는 말로 대중화되었습니다.
- 박스 box : 크로스핏 운동하는 장소(센터). 초창기에 창고 같은 곳에서 크로스핏을 해서 이렇게 불리게 되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