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혼하자
'이혼하자.'
결혼생활 22년 동안 아내에게 종종 들어온 말이다. 신혼 초 신용대출 3천만 원을 받아 주식에 투자했을 때 아내는 처음 이혼하자는 말을 꺼냈었다. 첫째 딸 아이가 4살이 되던 해의 크리스마스 이브에 아버지로부터 아들을 낳지 않는 건 칠거지악이란 소리를 들었을 때, 분당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내는 울면서 이혼을 하자고 했었다. 사상 최악의 폭설이 내리던 날이었는데 아내는 차창 밖의 눈보다 훨씬 더 많은 눈물을 흘렸었다.
내가 먼저 이혼을 언급한 건 처음이었다. 그만큼 아내에겐 충격이 컸을 것이다. 아내는 한참 만에 고개를 끄덕인다. 담담히 상황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표정이었다. 아니면 이혼이 꼭 그렇게 나쁘지 만은 아닌 것이라는 생각을 해왔던 것 같기도 하다. 끊어버릴 결정적인 용기가 없어 가느다란 실오라기를 부여잡고 있었는데 고맙게도 내가 그 것을 끊겠다고 나선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생각해도 아내가 기대했던 결혼생활은 아니었다.
이유나 한번 들어보자.
말했잖아.
이해가 안가서 그래.
비트코인 투자를 하려고 그래.
내 나이는 51세. 경제신문에서 25년간 기자로 일했다. 2022년 무인카페 브랜드를 런칭하면서 사업을 시작했다. 코로나 때 유가가 배럴당 10달러 선으로 곤두박질 쳤을 때 펜데믹이 끝나고 경제가 정상화되면 유가가 치솟을 것으로 판단하고 엑슨모빌에 여윳돈을 올인했다, 내 기준으로는 적잖은 돈을 벌었다.
비트코인 투자에 관심을 가졌던 건 당시보다 수년 전이었다. 코스닥 상장사 CEO 3000명이 회원인 코리아 서밋 3000이란 단체가 비트코인 투자를 확산시키기 위해 글로벌 순회 포럼을 진행하고 있을 때였다. 그 단체의 수장인 박봉규 회장의 소개로 언론 파트너로서 취재를 했었고 당시 블록체인과 비트코인에 대해 공부를 시작했다.
처음엔 비트코인을 백안시했다. 공부와는 벽을 쌓고 지냈지만 명색이 경제학도였고 경제지 기자로 나름 경제전문가인데, 비트코인은 화폐가 지녀야할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결정적으로 금과 같은 근원자산이 없었다. 돈이란 원래 금 보관증서를 유통시킨 데서 비롯됐다. 금을 금고에 넣어두고 그 보관증서를 주고 받았던 것이다. 언제든 가져가면 영국 정부가 금으로 바꿔주니 대영제국 시절 전세계가 파운드화로 무역을 한 것이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그 왕좌를 영국으로부터 뺏은 다음 상황이 달라지긴 했지만 전통적으로 화폐는 금고에 근원자산을 쌓아두어야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게 경제학자들의 생각이다.
유시민 작가가 토론 프로그램에서 나와 같은 논리로 비트코인 비관론자를 자임했던 때였다. 유시민 같은 논객과 같은 생각을 했다는 게 뿌듯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바보였다.
내 생각이 180도 바뀐 건 2020년 말이다. 비크코인 3억 원까지 오를 것이란 미국 시티뱅크의 보고서가 유출돼 화제가 됐다. ‘비트코인, 21세기 금인가’란 제목의 보고서였다. 언론과 일반은 3억 원이란 가격 목표치에 열광했지만 나의 눈은 금이란 단어에 꽂혔다. 비트코인이 달러가 아니라 금을 대체하는 것이라면 그동안 이해할 수 없던 모든 현상이 설명이 됐다. 비트코인은 디지털 화폐가 아니라 디지털 골드였던 것이다.
보고서를 낸 주체가 시티뱅크란 것도 중요한 대목이다. 시티뱅크는 미국 중앙은행, 즉 FRB의 대주주다. 화폐전쟁을 통해 알려진 대로 FRB는 시티뱅크를 비롯한 여러 은행이 대주주인 주식회사로 달러를 발행해 미국 정부로부터 국채를 매입해 수익을 얻는 업체다. 달러가 비즈니스 모델이란 건 FRB 입장에서 비트코인은 제거 대상이란 의미다. 그런 업체의 대주주가 비트코인이 코인당 2000만 원 대이던 당시 그 열 배인 3억 원까지 오를 것이란 보고서를 낸 건 항복선언과 다름이 없었다. 파도를 더 이상 막지 못할 바엔 그 파도에 올라타자란 전략이었던 셈이다.
당시 금의 시가총액은 10조 달러정도였다. 비트코인은 2100만개로 제한되기 때문에 비트코인이 금의 시가총액만 되도 코인당 얼추 50만 달러, 당시 환율로 코인당 6억 원 정도였다. 그 절반만 잡아도 3억 원이니, 시티뱅크 보고서의 목표치는 보수적인 추정치라고 생각했다.
엑슨모빌 투자가 목표치에 달하면 비트코인으로 갈아타자는 게 내가 설정한 투자의 로드맵이었고, 가장 낙관적인 목표금액은 50억 원이었다.
엑슨모빌 주가가 주당 30달러 선일 때 매집을 시작했다. 카카오와 삼성전자 우량주 투자로 조금 번 돈을 미국의 금리인상 소식을 듣고 모두 팔아 엑슨모빌을 샀다. 2022년 봄 엑슨모빌 주가가 80달러를 넘어서며 100달러 돌파가 예상됐다. 펜데믹으로 미국을 필두로 전세계 정부가 돈을 너무 많이 푼 것이 기폭제가 됐다. 당시 각국 정부가 푼 돈은 글로벌 연간 GDP의 20%에 달했다. 단순계산하면 물가가 20%가 올라야 하는데, 석유 같은 필수 원자재는 비싸도 사야하기 때문에 인플레이션 시기가 되면 가격이 폭등한다. 엑슨모빌 매도 시점을 주당 120달러로 잡고 있던 나는 주당 평균 88달러에 엑슨모빌을 전부 팔았다.
당시 부업으로 무인카페 가맹점을 두개 운영했었는데 비교적 수익이 좋아 무인카페 사업에 뛰어들기로 결심했다. 엑슨모빌 주가의 흐름이 순조로워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사업을 시작하자는 계획이었다.
아내는 사업을 위해 집을 담보로 집히겠다는 계획에 손사레를 쳤다. 당시에도 이혼이란 단어가 아내의 입에서 나왔던 것 같다. 나는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주식을 팔기로 했다. 사업이 순조롭게 되면 비트코인을 매입할 투자금액을 충분히 벌 수 있을 것이란 계산에서였다.
신문사 부국장 자리를 그만두고 돈세이돈이란 브랜드로 분당에서 무인카페 사업을 시작했다. 1년 직영점 운영요건을 충족하고, 2023년 가맹점을 받기 시작해 10월 현재 9개의 점포가 돈세이돈이란 브랜드로 운영중이다. 몇 개는 자기 간판을 달고 돈세이돈의 원두를 공급받고 있다.
그런 사이 비트코인의 대상승장이 임박했다. 물론 그 것은 전적으로 내 판단이다. 내가 2025년까지 비트코인의 상승장을 낙관하는 이유는 엉뚱하지만 일런 머스크 때문이다. 일런 머스크가 그리는 큰 그림이 비트코인의 상승을 가속화할 것으로 확신하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