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공동명의
비트코인 상승장이 임박했다는 판단이 서자 마음이 급해졌다. 문제는 총알이 없다는 것이었다. 골문 앞까지 뛰어왔는데 카페 사업에 여윳돈을 모두 쏟아부은 뒤여서 막상 최종 목표치였던 비트코인 투자 기회를 놓칠 수 있는 상황이 됐다.
비트코인 상승 예상치를 30만 달러, 약 4억 원 정도로 설정했다. 2023년 10월18일 현재 가격의 10배 정도다. 기간은 2026년 말, 향후 3년이다. 1억 원을 넣어두면 10억 원이 되고, 3억 원을 투자하면 30억 원이 될 것이란 계산이다.
사업은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비트코인 투자는 거래소에서 구입만 하면 잠을 자는 동안에도 자동으로 돈을 벌어준다. 노후 대비로는 충분한 돈이다.
최악의 경우를 생각해봤다. 비트코인 가격이 지금의 절반이 되거나 혹은 그 이하로 뚝 떨어지는 경우다. 1억 원이 5천만 원이 되고. 3억 원이 1억5천만 원이 되는 것이다. 비트코인 투자자가 일시에 비트코인은 신기루였다고 생각해 약속이나 한 듯 한날한시에 던져버리는 상황이 올수도 있을까. 그런 경우는 이젠 생각할 필요가 없다. 3억 원 정도의 투자라면 반토막이 난다고 해도 감당할 만 하다는 판단을 했다.
역시 문제는 지갑에 돈이 없다는 점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수 밖에 없었다. 담보가 필요했다. 금융쪽에서 일하는 대학친구들에게 혹시나 해 전화를 걸어보았다. 혹시 내가 몰랐던 기상천외한 조달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육류 담보 대부업을 하는 친구에게 물어봐도 결국 관건은 담보였다. 비트코인이 자산이 된 첨단 디지털 금융시대에 살면서도 결국 자영업자가 돈을 융통할 방법은 아파트 담보 대출 밖에 없었다. 돈이 좀 있다고 생각되는 친구들과 친지들의 얼굴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나라면 비트코인에 투자한다는 목적을 듣고 선뜻 3억 원을 빌려줄 것 같지는 않았다. 괜히 서로 불편한 대화만 오갈 게 뻔했다.
나는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설득에 도전하기로 했다. 현재 살고 있는 서판교 아파트의 공동명의자인 아내에게 담보대출을 받으러 은행에 동행하자는 얘기를 꺼내기로 결심했다. 21년 간 살면서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 것이 불가능한 일이란 것을.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2026년에 땅을 치고 후회할 게 뻔했다. 51년을 살면서 후회할 일을 이미 너무 많이 한 터였다. 후회가 총량제라면 이미 총량을 두배는 넘고도 남았다. 앞으로 남은 삶이 30년 정도라면, 이젠 좀더 행복한 시간으로 채우고 싶다.
나는 결국 넘지 못할 벽을 향해 전력으로 뛰었다.
이혼해.
2023년 가을이 선뜻 창밖에 온 어느날 밤. 와인 한병을 식탁에 꺼내놓고 3억 원을 담보대출로 받아 비트코인에 투자하겠다는 얘기를 미괄식으로 하기 시작했다. 두괄식으로 이런 얘기를 선뜻 이해할 사람은 아내가 아니어도 적어도 대한민국에는 없었다. 돌아가신 테레사 수녀님에게 남편이 있었다고 해도 아마 이혼하자는 말이 나왔을 것이다.
설명을 좀 더 들어봐. 이건 우리가 죽기전에 다시 없을 기회야.
집은 건드리지 말자고 했지. 아내는 와인을 원샷으로 비웠다.
알지. 하지만 방법이 없어. 절반은 내 권리잖아. 내 의견대로 할 수 있는거잖아.
정 그러면 이혼하고 비트코인 투자하면 되겠네. 재산분할 받아서 투자해. 나랑 같이 사는 한 절대 그런 일을 없어.
역시 철벽이었다. 그렇다고 밧줄로 묶어서 강제로 끌고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강력한 반대는 확신에 균열을 내고 그 사이로 회의적인 생각들이 슬며시 들어오기 마련이다.
또 떨어지면 어떡하냐는 말에 나는 거의 매일 코피를 흘리며 재수하고도 서울대 신문학과를 쓰지 못했다. IMF 외환위기 직후 강남 아파트 값이 추풍낙엽처럼 떨어졌을 때 도곡동 주공아파트를 7천만원 융자만 얻으면 살 수 있었는데 빚까지 얻어 꼭 집을 사야하냐는 시골 아버지 말을 듣고 계약서를 쓰러가다 발길을 돌렸었다. 심지어 서울로 대학보냈더니 헛바람만 들었다는 얘기까지 들었다. 레버리지란 단어를 모를 때에도 몸소 실천하려던 혜안이 오히려 죄책감의 원인이 됐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당시에 가졌던 확신이 적중했다는 게 여러번 증명된 후에도 결정적인 일이 있을 때마다 나는 쉬운쪽을 택했던 것 같다. 그 결과는 아직 편안한 노후에 자신이 없는 카페 프렌차이즈 사장이다.
내 생각을 고집하고 살았더라면 나는 지금쯤 서울대를 나와 한강변 아파트에 사는 세속적인 기준으로는 꽤나 성공한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란 생각을 자주했다. 부질없는 일이란 걸 알면서도 후회란 많은 시간을 갉아먹었다.
2026년에도 내가 좀더 고집을 피웠더라면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면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을 듯 했다. 목적지로 향하는 길이 외길이라면 일단 그 길로 가는 수 밖에 없었다.
이혼하자.
나는 그 길로 일단 가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