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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익 Jul 21. 2024

힘들면 유대인이 마녀로 지목된다

[작정하고 트럼프] 게르만을 다시 위대하게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트럼프의 선전선동을 보면 2차 대전 당시 히틀러에 의한 유대인 대량학살, 즉 홀로코스트가 떠오른다. ‘유대인의 역사’의 저자 폴 존슨은 홀로코스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2천 년에 걸친 기독교도와 성직자들, 평민들, 세속인들, 이방인들의 반유대주의적 증오가 히틀러에 의해 하나의 거대한 괴물로 합쳐져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엄청난 파괴력을 발휘했다.”     


홀로코스트의 원인은 크게 세가지로 요약된다. 히틀러 개인의 유대인에 대한 반감, 1차대전 패배와 대공황 당시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인한 독일인의 빈곤과 유대인의 상대적 부유, 기독교와 유대교의 대립 등이 홀로코스트란 역사적 비극을 낳았다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히틀러의 어린 시절 꿈은 화가였다. 미술학교 유대인 심사위원들의 불합격 점수를 줘서 화가의 꿈이 좌절됐다는 게 히틀러의 생각이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최하층민의 삶을 경험한 히틀러는 자본주의와 부르주아 유대인들에 대한 반감을 키웠다.      


19세기말~20세기 초, 유대인들은 핍박을 피해 동유럽과 러시아 등지에서 독일로 몰려들었다. 철혈재상 비스마크크가 독일을 통일한 후 영국에 맞서기 위해 제조업과 군사력을 키웠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경제관념이 뛰어난 유대인들이 당시 독일의 경제발전을 주도했다. 이들은 금융업과 제조업은 물론 유흥업까지 손을 대지 않은 분야가 없었다.      


1차 세계대전에서의 패배와 막대한 전후 배상금으로 독일 경제는 휘청거렸다, 마침 독감이 유럽을 강타하면서 수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런 와중에 1929년 대공황이 세계경제를 강타할 때 독일이 받은 타격은 다른 나라보다 훨씬 심각했다. 독일은 배상금을 지불하고,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마르크화 발행을 남발할 수 밖에 없었고 이는 초인플레이션이란 결과로 이어졌다. 부모는 일자리를 잃고 알코올 중독에 신음했다. 학생들은 돈이 없어 학교에 못가는 상황이 됐다. 그나마 금고 속에 모아둔 돈은 휴짓조각이나 다름없는 상황이 됐다. 집을 담보로 빌린 부채는 못갚는 상황이 됐다. 집은 고리대금 업자나 다름없는 은행에 빼앗겼다. 남자들은 매음굴에서 옮은 매독균 때문에 처참하게 죽어갔다. 처녀들은 사창가에 헐값에 팔려갔다. 울분은 쌓이고 쌓여서 거대한 탑을 이루었다.      


기독교와 유대교는 대립했다. 유대인들의 선민의식이 유럽인들에겐 꼴불견이었다. 기독교가 하느님과 예수를 동일시하는 데 반해 유대교는 예수를 많은 예언자중 하나로 간주한다. 유대인들 입장에서 구세주는 아직 그들에게 오지 않았다. 기독교인들이 삼위일체의 신으로 모시는 예수를 유대인들은 인간과 동일시한다. 유대인들의 눈에 기독교는 이방인을 신도로 받아들인 배신자다. 기독교인들의 눈에 유대인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히게 한 죄인들이다.      


이런 가운데 1933년 히틀러는 나치당 당수로 독일의 총리가 된다. 히틀러는 권력을 장악하자마자 유대인 박해를 본격화 한다.       


당시 히틀러의 캐치프레이즈는 내용을 요약하면 ‘게르만 민족을 다시 위대하게(Make German Great Again)’였다. 유전적으로 우수한 게르만 민족이 유대인이나 러시아인, 집시 등 잡종들의 피와 섞이면서 그 우수성이 훼손되고 있다는 논리였다. 이같은 논리는 게르만의 순수혈통을 지키기 위해서는 잡종들을 멸종시켜야 한다는 극단주의로 이어졌다.      


이같은 극단주의, 즉 극우주의가 1000만명의 희생자를 낳은 홀로코스트로 이어졌다. 희생자 중 600만명이 유대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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