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리협약, 이란 핵협정 재가동하면 유가는 오른다?
이번 미국 대선에서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승리할 경우 엑슨모빌 주가는 어떻게 될까? 넓게 말하면 대선 향방에 따른 유가 전망이 될 것이다.
유가는 다차방정식이다. 정치와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본질적으로는 수급에 영향을 받지만, 금리와 환율, 조세정책 등 모든 경제적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집권당, 특히 백악관의 성향이 이같은 요소들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진보 민주당은 '그린 뉴딜'에 방점을 찍고 있다. 고어 전 부통령을 정점으로 클린턴 행정부 당시부터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그린 뉴딜은 전통적 석유산업을 전기를 중심으로 한 친환경 에너지로 대체하는 게 골자다. 트럼가 4년 전 전통적 석유 산업을 중심으로 제조업을 되살려 위대한 미국을 재건하겠다는 것과는 반대다.
이번 대선은 이같은 트럼프의 경제 정책에 대한 심판의 자리다. 트럼프는 제조업 부흥을 위해 법인세를 낮추는 등 부자감세를 단행했다. 금리를 낮춰 달러 약세를 유도했다. 수출기업에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줬다. 수조 달러에 달하는 재정지출도 단행했다. 그럼에도 불구, 미국의 GDP 성장률은 목표했던 3%대엔 올라서지 못했다. 2%대 성장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면 대단한 성과다. 러스트 벨트 지지자들은 일부 트럼프에게 등을 돌렸지만 여전히 트럼프 지지층이다.
바이든이 승리를 확신한 직후 실제 가장 먼저 한 일이 파리협약 재가입 선언이다.
그린 뉴딜을 통해 2조 달러 정도를 투자하면, 새로운 산업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경기부양의 마중물이 생길 것이란 기대다.
파리협약은 물론 석유산업에 호재는 아니다. 협약 자체가 온실가스, 즉 탄소배출량을 줄이자는 것이다.
하지만 파리협약으로 대변되는 그린 뉴딜이 에너지 소비에서 석유가 차지하는 비중을 낮추는 데는 효과가 있지만 석유의 절대 수요는 줄어들지 않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가장 큰 이유는 인구, 특히 석유를 소비하는 글로벌 중산층의 인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석유 패권전쟁'을 쓴 최지웅은 엑슨모빌 CEO 대런 우즈의 말을 인용해 2040년까지 인구 증가로 석유 수요가 지금보다 20% 가량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석유는 대표적인 가격 비탄력적 원자재다. 가격이 급등락해도 수요량에는 별 영향이 없다는 얘기다. 실제 과거 유가 추이를 보면 배럴당 100달러까지 치솟았던 2011년도 배럴당 40달러까지 떨어졌던 2016년도 석유 수요는 지속적으로 우상향했다.
그린 뉴딜과 석유 수요간에 상관관계가 적은 것은 그린 뉴딜은 발전 원료를 석탄에서 태양광과 풍력으로 바꾸는 데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석유는 50% 이상이 자동차, 항공유로 쓰이고 나머지는 산업용이 대부분이다. 발전 원료는 석탄이 절대 비중을 차지한다.
보다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이슈는 오바마가 완성하고 트럼프가 해체했던 이란 핵합의를 재개하는 것이다. 이란 핵합의는 이란이 핵을 동결하는 대가로 경제 봉쇄를 해제했던 미국-이란 간 일종의 빅딜이었다. 바이든이 핵합의를 재개하면 트럼프가 강화했던 경제봉쇄를 푼다는 의미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세계 3위 산유국인 이란이 석유수출을 재개하면 이론적으론 공급 폭탄이 될 수 있다.
지정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바이든이 이란 핵합의 재개 움직임이 중동의 불안을 키울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트럼프가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짜놓은 중동의 동맹 구도 때문이다.
트럼프 중재로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연합, 예멘 등 수니파 중동 국가가 올해 아브라함 협정을 맺었다. 수니파 중동국가들이 이스라엘의 정통성을 인정하는 것으로 사실상 평화 동맹을 맺은 것이다. 이스라엘 입장에선 팔레스타인을 견제하는 효과가 있어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다는 분석이이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연합 등 수니파 맹주들이 줄줄이 팔레스타인에 등을 돌린 셈이어서, 수니파 팔레스타인과 시아파 이란은 교묘하게 왕따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바이든이 이란과 핵협정을 재개하려고 할 경우 이스라엘-수니파벨트가 이를 묵인하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미국이 이란을 직접 자극하지 않아도, 이란의 위상이 강화되는 것을 주변국들이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기자가 이 글을 쓰고 난 뒤인 11월27일(현지시간) 낮 이란 수도 테헤란 인근 소도시 아브사르드에서 이란 핵개발을 주도해 온 핵과학자 모센 파크리자데(54)가 정체 모를 총기난사에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란 정부는 즉시 이를 이스라엘 소행으로 간주하고 복수를 다짐했다. 이란 최고 지도자 하메네이는 28일 "가해자를 처벌하라"고 외쳤다. 이스라엘을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주요 외신들은 일제히 이스라엘의 소행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이로써 중동은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이 됐다. 하메네이가 즉시 복수를 외친 건 이슬람 율법인 키사스 때문이다. 기독교는 왼쪽 뺨을 맞으면 오른 쪽을 내말라고 하지만 이슬람은 정반대다. 왼쪽 뺨을 맞으면 반드시 똑같이 응징을 해야 한다.
CIA 등 서방 정보당국은 이 율법을 교묘히 이용한다. 반격을 유도하기 위한 공격을 하는 것이다. 이번 테러가 이스라엘의 소행이라면 모사드의 공작이란 얘기다. 모사드가 CIA와 공조 없이 미국의 대통령이 바뀌는 상황에서 이란을 자극할 리 없다.
특히 트럼프는 지난 9월 아브라함 협정을 중재하며, 지금의 중동 역학관계를 치밀하게 만들어왔다.
이스라엘-수니파 벨트간 동맹으로 이스라엘은 중동에서 이란을 견제할 힘을 얻었다. 일등공신은 트럼프다. 바이든이 집권할 경우 이란 핵합의가 재개되면, 트럼프와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애써 만든 공든탑이 무너진다. 외신들은 이스라엘의 소행이라고 했지만, 배후는 사실상 트럼프다.
결국 바이든이 의도와는 달리 이란엔 더 위협적인 인물인 셈이다.
다른 시각도 있다. 골드만삭스는 공급 증가로 유가가 하락하면 미국 셰일 업체들이 수익을 몾맞춰 연쇄도산할 것이란 시나리오를 내놓았다. 이럴 경우 글로벌 공급량은 오히려 줄어들게 될 것이란 전망이다. 시차를 두고 유가는 급등할 것이란 얘기다.
기자는 골드만 삭스의 전망엔 동의하지 않는다. 세일업체들의 도산은 M&A를 통한 구조조정이 잇따를 것이고, 이렇게 되면 메이저 석유업체들이 오히려 시장지배력을 키우게 되는 결과를 갖고 올 뿐이지 산유량에 큰 변화는 없을 것이다. 법인이 사라질 뿐이지 매장된 석유가 증발되는 것은 아니다.
바이든이 대통령이 되면 Fed가 금리인상을 앞당길 수 있다. 민주당이 경기부양을 위해 대규모 재정지출을 할 경우 경기회복 시기가 빨라질 수 있다. 이는 물가상승 압력을 높이는 요인이다. 파월 Fed 의장이 잭슨홀 연설에서 연간 평균 2% 안팎의 물가가 유지되는 한 물가상승 압력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금리를 올리지 않겠다고 밝혔다. 시장에선 이를 두고 Fed가 2024년부터 금리 인상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모건스탠리는 2020 대선이 '푸른 물결'로 끝날 경우 1년 정도 금리 인상 시기가 빨라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실제 민주당은 상원을 장악하는 데는 실패했다.
금리인상은 달러 강세로 이어진다. 여러번 설명했지만 달러강세는 유가하락 요인이다.
파리협약 재가입 문제는 단순히 진보와 보수의 헤게모니 다툼 관점에서 볼 문제는 아니다. 트럼프가 EU 주도의 파리기후협약을 걷어 찬 것은 지지 세력인 석유기업을 위해서만은 아니다. EU가 온실가스 감축에 앞장서는 것은 후세에 깨끗한 지구를 물려주자는 좋은 명분으로 포장됐지만, 포장지를 뜯고 나면 결국엔 석유달러 시스템을 와해시키려는 패권전쟁의 맥락이 드러난다.
'온실가스 감축'과 '탄소배출권거래'는 두가지 경로로 석유달러 체제에 대한 도전이다. 간단히 온실가스 감축은 석유 수요 감소를 의미한다. 석유를 쓰려면 탄소배출권을 사야하는 데 결국 비용이 증가하는 것이다.
탄소배출권 거래 자체가 오히려 달러패권엔 더 강력한 위협이다. 탄소배출권 거래의 화폐가 무엇이냐가 관건이다. 현재 탄소배출권 거래가 가장 활발한 곳은 런던 시장이다. 이 때문에 영국이 기후협약 체제란 거인의 어깨에 올라 2차 대전 후 미국에게 넘겨준 파운드화의 엣 영예를 되찾으려 한다는 시각도 있다.
EU가 중국과 함께 디지털화폐 유통에 앞장서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디지털화폐는 지폐를 디지털로 바꾼 것일 뿐 법정 화폐 개념 자체가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궁극적으로 탄소배출권거래에 비트코인 등 비법정 디지털화폐, 즉 암호화폐가 쓰일 경우 달러패권은 심각한 위협을 받게 된다. 탄소배출권 거래 자체가 석유 수요와 정비례 관게에 있기 때문에 당장은 공생관계가 되겠지만, 석유달러 체제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
달러패권이란 비즈니스 모델로 먹고 사는 Fed가 이같은 상황을 반길 리 없다. 이 대목에서 바이든이 집권할 경우 민주당은 Fed란 의외의 복병을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