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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이란전쟁 16화

[이란전쟁] 엑슨모빌 사장을 국무장관에 앉혔던 이유?

- 임명 이유와 해임 이유 모두 '푸틴'이다.

by 김창익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 직후인 2016년 12월13일 렉스 틸러슨 당시 엑슨모빌 CEO를 국무장관으로 지명했다.

트럼프푸틴.png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극을 견제하기 위해 전통적인 라이벌, 러시아와의 전략적 동거를 추진하고 있다. 우방은 아니어도 강력한 적대 관계는 청산하겠다는 것이다.


당시 64세(52년생)였던 틸러슨은 텍사스주에서 자랐고, 1975년 엑스모빌에 입사해 2006년 CEO가 된 입지전적 인물이다.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월급쟁이 신화다. 그는 공화당 지지성향이긴 하지만 공직경험은 전무하다.


그는 미국 내 대표적 친러시아 인사다. 엑스모빌 CEO로 러시아 국영 석유회사 로스네트프 등과 다양한 합작사업을 벌렸다. 2012년엔 러시아 정부로부터 우정훈장을 받기도 했다.


러시아와의 합작사업 때문에 틸러슨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추진한 서방의 러시아에 대한 제재 정책에도 반대 입장을 취했었다.


이런 성향으로 그는 지명된 후 미국내 유력 보수 언론의 집중 포화를 받았다. 뉴욕타임즈는 "결함있는 인선"이라고 했고, 워싱턴포스트도 "유능하지만 러시아와의 관계는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했다.


다른 일들과 마찬가지로 보수언론의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고 트럼프는 그의 임명을 강행했다.


트럼프는 틸러슨을 국무장관으로 지면하면서 "렉스 틸러슨은 아메리칸 드림의 전형이다. 수준(league)이 다른 인물이다. 우리가 잘 지내지 못했던 많은 세계 지도자와 친하다"고 했다. 트럼프가 왜 틸러슨을 임명했는지를 보여주는 핵심 대목은 '많은 세계 지도자와 친하다'이다. '우리가 잘 지내지 못했던'도 상당히 중요한 수식어다.


그동안 잘 지내지 못했으나, 대통령 취임 후 관계를 개선하고 싶은 인물을 고려해 틸러슨을 국무장관으로 기용하겠다는 속내다. 트럼프 대통령이 틸러슨의 중재로 관계개선을 꾀하고 싶었던 인물을 누구일까.


콘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장관, 로버츠 게이츠 전 국방장관이 틸러슨을 추천했다고 한다. '석유는 정치다'란 게 정유업계 정설이다. 틸러슨은 예멘과 이라크, 러시아 등 전쟁, 내전과 테러, 암투와 권모술수가 횡행하는 곳에서 거래를 성공적으로 성사시키며 CEO에 오른 인물이다. 공직 경험이 없지만 이런 이력이 높이 평가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려은 당선인 시절 틸러슨을 두번 면담했다고 한다. 당시 틸러슨은 트럼프에게 상당히 좋은 인상을 줬다고 한다.


틸러슨의 최대 강점은 러시아 인맥이다. 옐친 전 대통령과도 가깝고, 푸틴 대통령과도 20년 이상된 절친이다. 틸러슨 본인도 모교 텍사스 오스틴 강연에서 "푸틴과 가깝다"고 했다.


존 햄리 전략국제문제연구소장은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을 빼면 틸러슨 만큼 푸틴 대통령을 잘 아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이고르 세친 로즈네트프 사장과도 막역한 사이다. 세친 사장은 러시아 권력 서열 2위다.


틸러슨의 러시아 인맥은 90년대 후반에 만들어졌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틸러슨이 1999년 엑슨모빌 러시아 담당 사장 당시 지지부진하던 170억달러 규모의 사할린 원유 채굴 사업을 성사시키며 푸틴의 주목을 받았다.


2011년 러시아 북극해 자원개발 건이 진행되면서 틸러슨이 부각됐다. 틸러슨은 러시아 북극 유전 가치를 3000억달러로 평가했다. 막대한 규모다. 이후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2014년 미국의 러시아 제재가 시작되면서 관련 사업이 중단됐다. 엑슨모빌은 다른 회사들이 러시아 엑소더스에 나설 때 석유 사업을 지속했다. 틸러슨과 세친의 관계 덕분이다.

틸러슨푸틴.jpg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과 절친인 틸러슨이 자신과 푸틴간의 중매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 틸러슨은 이같은 트럼프의 기대를 저버렸다.


규율과 통제를 중시하는 스타일도 푸틴의 눈에 틸러슨이 든 이유로 꼽힌다. 그는 2011년 이라크 쿠르드 지역 유전 개발 당시 국무부를 무시하고 독자 협상을 벌이는 등 때로는 저돌적인 면도 보였다.


석유기업 CEO 출신답게 자유무역을 옹호한다. 그는 2007년 외교청문회에서 "미국의 석유안보는 자유무역을 통해 더 확보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대로 자유무역과 석유 사업은 뗄레야 뗄 수가 없는 관계다. 간단히 말해 석유달러 시스템 자체가 자유무역의 토대위에서 자란 나무다. 단순히 엑슨모빌의 매출이 아니가 틸러슨이 이런 인식 아래서 위와 같은 말을 했다면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는 틸러슨이 트럼프를 '멍청이'라고 부른 이유중 하나일 것이다.


틸러슨은 1억5천만달러(약 1800억원)에 달하는 엑슨모빌 스톡옵션을 갖고 있다. 엑슨모빌 주가가 급등하면 틸러슨은 옵션 행사로 어마어마한 이익을 얻게 된다. 틸러슨 지명을 반대했던 인사들은 이 때문에 틸러슨이 러시아 제재를 풀어 북극해 유전개발을 지속할 것으로 내다봤었다.


트럼프 입장에선 자신과 사사건건 대립하고 멍청이란 조롱을 퍼부은 틸러슨이 스톡옵션 행사로 막대한 부를 거머쥐길 바라지 않을 수도 있다. 틸러슨은 공화당 지지자로 2003년 공화당 선거운동에 44만달러를 기부하고,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에게는 정치 헌금을 냈었다. 하지만 트럼프에겐 돈을 한 푼도 쓰지 않았다.





다음은 월스트리트저널이 트럼프와 틸러슨간의 갈등을 시간순으로 정리한 것이다.


▶2017년 2월 1일: 미 상원,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지명자 인준. 인준 청문회에서 틸러슨 장관은 러시아에 대한 강경입장 등 트럼프 대통령과 반대되는 견해 밝혀
▶2017년 5월 24일: 존 J.설리반 국무부 부장관 취임 선서. 트럼프 대통령, 2016년 대선기간 자신에게 비판적이었다는 이유로 틸러슨 장관이 국무부 부장관으로 추천한 엘리엇 아브람스 임명 거부
▶2017년 4월 28일: 틸러슨 장관, 트럼프 행정부가 3월 제시한 예산안에 따라 국무부 예산 23% 삭감 및 국무부 직원 2300명 해고
▶2017년 6월 2일: 트럼프 대통령이 파리기후변화협약 탈퇴 및 협약 수정 협상 시작 계획 밝히자 틸러슨 장관,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등과 함께 협약 탈퇴 반대
▶2017년 6월 6일: 트럼프 대통령, 트위터에 테러리즘 지원 의혹이 있는 카타르와의 분쟁에서 사우디아라비아 및 다른 중동 국가들 지지. 전날 틸러슨 장관이 양측 모두 테러 자금지원을 단속하고 긴장을 완화할 것을 촉구한 것과는 대조적
▶2017년 7월 18일: 미 정부, 이란이 핵합의를 준수하고 있지만 협정 폐기 여부는 불확실하다는 점을 의회에 전달했다고 밝혀. 틸러슨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란이 핵합의를 준수하고 있다는 점을 재보증할 것을 촉구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
▶2017년 7월 25일: 트럼프 대통령, WSJ와 인터뷰에서 이란 핵합의 관련 "그들(이란)이 (핵합의를) 준수하고 있다고 말하는건 아주 쉽지만 잘못된 일"이라며 이란이 핵합의를 준수하고 있지 않다고 비판
▶2017년 7월 26일: 틸러슨 장관, 백악관과의 정책충돌로 인해 사임설이 나돌자 "어디도 안간다"며 일축. 그는 대통령이 허락하는 한 직을 유지할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해
▶2017년 8월 2일: 트럼프 대통령, 의회의 압도적 지지에 밀려 대러시아 제재법안에 서명하면서 법안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고 비판. 특히 대통령이 러시아 제재 완화나 정책 변경을 할 수 없도록 완전히 차단하는 규정은 반헌법적이라고 주장. 틸러슨 장관 역시 이 법안이 러시와의 관계 재구축 노력을 방해할 것이라고 비난
▶2017년 8월 27일: 틸러슨 장관,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국무부는 자유, 그리고 모든 사람이 평등한 대우를 받도록 하는데 헌신한다"며 "누구도 미국 국민의 가치, 또는 미국 정부와 기관이 그러한 가치들을 증진하고 수호하기 위해 헌신하고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고 강조. 진행자가 백인우월주의자들의 버지니아주 샬러츠빌 폭력시위에 대해 양비론을 펴며 옹호한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해 "그렇다면 대통령의 가치는?"이라고 묻자 틸러슨은 구체적인 답변을 하지 않고 "대통령은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것"이라며 대통령과 거리 둬
▶2017년 9월 30일: 틸러슨 장관, 미국이 북한과 직접 접촉하고 있으며 북한의 대화 의지 살펴보고 있다고 말해
▶2017년 10월 1일: 트럼프 대통령,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협상을 추구할 가치가 없다며 "우리 훌륭한 틸러슨 국무장관에게 '리틀 로켓맨(김정은 위원장)'과 협상하려는데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말했다"며 공개 면박
▶2017년 10월 4일: 틸러슨 장관, 재차 사임설 부인하면서도 자신이 트럼프 대통령을 '멍청이(moron)'이라고 불렀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서는 부정 안해. 나중에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가짜뉴스'라고 주장
▶2018년 3월 8일: 틸러슨 장관, 에티오피아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북미 대화 관련 "북한과의 직접 대화라는 관점에서 볼 때 협상까지는 먼 길이 남아 있다"며 "첫번째 단계는 '대화에 관한 대화'를 하는 것"이라고 말해. 그러나 5시간 후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의 초청에 응하면서 '틸러슨 소외설' 대두
▶2018년 3월 12일: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 영국에서 발생한 러시아 출신 이중 스파이 부녀에 대한 신경가스 공격 배후에 러시아가 있다고 비난. 이에 대해 백악관은 "우리의 동맹국인 영국을 지지한다"면서도 "아직 영국이 그 문제에 대한 세부사항을 조사중이라고 생각한다"며 러시아에 대한 직접 비판 삼가. 반면 틸러슨 장관은 "러시아가 또다시 그같은 행동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는데 분노한다"고 비난
▶2018년 3월 13일: 트럼프 대통령, 트위터로 틸러슨 해임 발표.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들과 만나 이란 핵합의 등에서 "생각이 달랐다"며 "우리는 이에 대해 오랜시간 얘기했지만 의견이 달랐다"고 설명.


위 내용에서 주목할 만한 대목은 트럼프가 트윗으로 틸러슨 해임을 통보한 것은 틸러슨이 영국에서 발생한 스파이 살해사건이 배후로 러시아 정부를 지목한 직후다. 트럼프가 러시아를 배후로 지목하는 데 신중했던 것과는 달리 틸러슨은 러시아를, 사실상 절친 푸틴을 맹비난했다.


유라시아 대륙에서 트럼프는 전임자들과는 다른 방법으로 세력을 유지하려 했다. 핵심은 반미 세력의 중심축인 중국과 이란을 지정학적 동맹관계를 최대한 이용해 사실상 봉쇄하는 것이다. 전통적 동맹인 일본을 강화하고,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실리 외교를 추구하는 인도를 온전히 미국편으로 끌어들이는 게 태평양 쪽 봉쇄 전략의 핵심이다. 중국이 남중국해를 통해 태평양의 지배력을 확대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는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전임자들이 러시아를 전통적인 중국의 우방으로 생각해, 사실상 한묶음으로 다룬 것과는 다른 전략을 트럼프는 갖고 있다.


러시아가 우방은 되지 못하더라도, 강력한 적대관계를 만들어선 안된다는 게 트럼프 생각이다. 냉랭한 친분관계를 형성하겠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줄기차게 푸틴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이유다. 중국 입장에선 가장 강력한 우군이 미국을 적대시하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공포다.


이같은 트럼프의 속내를 일반은 알지 못했다. 푸틴과 모디 인도 총리,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 등에게 말도 안되는 제스쳐를 보내는 트럼프가 일반의 눈엔 정신 나간 지도자 정도로 보였을 수도 있다.


트럼프게게 국무장관은 오른팔이다. 틸러슨은 자신의 이런 속내를 간파하고, 일반의 비판과 조롱속에서 대 러시아 전략을 밀어부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했다. 트럼프의 눈에 틸러슨의 러시아 인맥은 강력한 자산으로 비춰졌을 것이다. 하지만 틸러슨은 푸틴에게 전략적으로 다가서려는 트럼프에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


틸러스은 수시로 트럼프의 지시가 불법적인 것들을 포함하고 있다고 했다. 아마도 이 중엔 대 러시아 정책들이 다수 포함돼 있을 것이다. 푸틴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불법적 지시를 트럼프에게 했다는 의미다. 규율과 통제를 중시했던 틸러슨은 트럼프의 이같은 지시를 따르기 힘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와 틸러슨의 관게를 맺어준 것도 트럼프가 틸러슨을 끊어낸 것도 결국 푸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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